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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 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작성일: 2023.11.02

PICK1 요약

1. 의사 엄마가 정신질환을 앓는 딸을 돌보며 겪는 우여곡절

2. 여러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는 양극성 장애의 증상과 대응

3. 신경다양성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새삼 깨닫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인간의 삶에는 이런저런 고통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버겁겠지만, 중병에 시달리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유난히 더 아플 것이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정신질환을 앓는 모습은 엄청난 괴로움을 자아낸다. 심리적 난관에 부딪혀 고투하는 자녀의 이야기를 담아낸 외국책들은 몇 가지가 번역되어 있다. 아들이 마약 중독의 깊은 늪에 빠져드는 상황을 아버지의 눈으로 읽어낸 〈뷰티풀 보이〉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두 아들에게 연달아 조현병이 생기면서 겪는 가족의 비극을 기록한〈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등이 그것이다.〈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국내의 저자가 양극성 장애를 지닌 딸에 대해 집필한 것으로, 투병과 돌봄의 처절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저자의 딸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고 10대 중반까지 씩씩했던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울과 자살 척도나 너무 높게 나왔지만, 별 탈이 없이 지내는 듯했다. 그런데 딸이 자해와 자살 시도를 반복해 왔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재수하고서도 성적이 좋지 않아 기대보다 낮은 학교에 입학한 이후 부모와의 동거를 거부하며 자취방에서 혼자 살았는데, 그런 가운데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결국 대학 2학년 때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게 된다.

이후 먹구름 가득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걸핏하면 응급실에 실려 갔고, 팔과 다리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자해가 빈번해서 집안에서 커터칼을 모두 치워야 했다. 느닷없는 폭음으로 인사불성이 되기도 하고, 공황 발작이 종종 일어나 길바닥에서 숨을 몰아쉬며 뒹구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딸이 안부 카톡의 확인을 조금만 늦게 해도 좌불안석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보호 병동에 입원시켜야 했고, 그곳 생활이 몇 개월씩 이어져 한 해의 절반을 채울 때도 많았다. 딸은 ‘뭔가 빠져나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다. 주치의는 딸이 자살하더라고 어쩔 수 없다고까지 했다. 엄마인 저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바다를 부서진 배를 타고 헤매는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여느 신체 질환 못지않은 고통

저자는 내과 전문의로서 영향력 있는 연구 업적을 쌓아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태도는 이 책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단지 자신의 경험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관련된 전문지식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알기 쉽게 풀이한다. 양극성 장애를 앓은 유명인물들도 여럿 소개되는데, 빈센트 반 고흐, 뭉크, 헤밍웨이의 손녀, 비비안 리, 마를린 몬로, 안젤리나 졸리, 커트 코베인, 지미 핸드릭스, 버지니아 울프, 윈스턴 처칠 등이 등장한다. 아울러 그 질환을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을 인용하면서 구체적 증상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채롭게 설명한다. 그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질환이 신체 질환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양극성 장애는 예전에 조울증으로 불린 질환이다. 전두엽-변연계의 연결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정서적 자극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중추와 자극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중추 사이의 불균형이 생겨난다. 그로 인해 부정적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공황이나 중독 등 다른 증세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지금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젊은이들의 정신질환을 유발하기 쉽다고 말한다. 뇌의 완성기인 청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이행기에 전두엽을 통해 과도한 정보가 쉴 새 없이 유입되면 신경 세포 연결망의 가지치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용의 취약함이 불안과 우울을 가중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미국, 일본 한국 등 많은 나라에서 20대 여성들의 정신질환 경험과 자살의 비율이 높아지고 코로나 기간에 더욱 증폭된 상황도 그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

저자의 딸은 몇몇 큰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도 투병 중이다. 의료에서 ‘완치’라는 것은 거의 없는데, 정신질환은 특히 더 그러하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약물의 도움을 받고 습관을 조절하면서 관리해야 하는 장애물이다. 저자는 그러한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돌봄의 가이드라인을 꼼꼼하게 제시한다.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지 말자. 함부로 화내지 말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자. 돈 계산을 확실히 하자. 가족을 지키자. 환자의 삶에 개입하는 경계선을 분명히 긋자.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같은 것들이다.



정상과 비정상, 그 모호한 경계

이 책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도 짚어낸다. ‘미쳤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쓰고, 몸이 아픈 것인데 인격에 문제가 있는 듯 여기고(그런 점에서 ‘정신질환’ 대신 ‘뇌질환’이라는 표현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장애 인정을 받으면 놀면서 복지 수당만 타 먹을 것이라고 치부하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현실이 환자와 가족들을 짓누른다. 정신질환자의 대다수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도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간절히 찾고 싶어 한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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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이 유전성이 강한 질환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은 아마도 그런 환자가 있는 집안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고 너무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전 시대에도 정신질환 환자는 집안의 평판에 누가 된다고 생각해서 감추기만 했다. 틀렸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도 없고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몹시 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뇌 회로의 연결 문제들 중 일상생활을 어렵게 할 정도 혹은 자신을 파괴할 정도의 심한 이상만이 수면에 떠올라 진단된다. (...) 정신질환에서의 이상과 정상의 경계는 모호하다.
 

- 277~278면

이 책은 당사자 가족으로서 날것의 경험을 풀어내면서 의사로서 냉철한 견해를 내놓는다. 저자는 가족의 사연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힘겹게 분투하는 이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들이 부모가 죽은 후에도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와 복지를 향상하는 사회 운동의 하나로 출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저자는 딸의 투병을 통해 삶의 깊이와 넓이가 늘어났다고, 사회적 약자와 공공선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폭넓은 시선을 얻을 수 있다. 소외된 이웃의 처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시선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을 모을 수 있다.

독서 Guide

1. 저자가 딸의 투병 생활을 함께 하면서 사회적 인식과 내면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것이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2. 주변에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지인이 있다면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3.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특별히 심각한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미디어는 무엇에 유념해야 할까?

책정보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저자김현아

출판사창비

발행일2023.09.01

ISBN9788936479411

KDC513.899

저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