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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다에 사는 평범한 우연

- 김수빈, 《고요한 우연》

작성일: 2023.11.02

히든북 요약

1. 평범한 청소년의 일상을 가지고 쓴 소박한 소설.

2. 소박함 속에 담긴, 자기만의 생애를 그리고 만들어가는 야무진 꿈.

3. 자신의 세계를 가꾸며 고민하면서도 남과 어우러지는 배려.

달의 뒷면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이미 유수한 출판사가 주는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이면서, 2023년에 제정된 제1회 신구문화상의 ‘사서베스트’ 대상을 겹쳐 수상한 소설이 《고요한 우연》이다. 출판사도 출판사려니와 ‘사서베스트’의 수상은 현역 사서의 눈에 들어와 추천되고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사서베스트’의 사서 전문가 집단(추천)과 투표인단(선정)은 단지 매출이나 대출 순위만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서 특유의 매의 눈에 들었다.

그러나 소설 자체는 뜻밖에 소박하다. 예의 출판사 심사평이, “평범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힘을 내어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운을 뗀 까닭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우선 좋아 보인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와 주제가 판을 치는 요즘 아닌가. 사실은 청소년의 실제 세계와 유리되어 있을 것이 뻔한, 그럼에도 입맛을 끌기 위해 강한 조미료를 처바르는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척 마음을 끌었다.

그렇다고 재미없지 않았다. 소설의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아폴로 11호의 탑승자 이야기―,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까지 세 사람 가운데 콜린스는 달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령선의 조종사였기에 착륙선의 두 사람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그들을 기다리며 홀로 달의 궤도를 비행했다. 48분간, 그는 오롯이 혼자 달의 뒷면을 바라보았다. 소설은 ‘달의 뒷면’처럼 인생의 뒷면을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특이한 사람에게 둘러싸인 평범한 사람

소설의 화자인 이수현은 어느 날 밤 ‘베개까지 다 젖은’ 슬픈 꿈을 꾸었는데, 꿈에 만난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 수현은 스스로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눈도 그냥그냥, 코도 그냥그냥, 입도 그냥그냥.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말하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색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한 얼굴’(15면)의 소유자이다. 수현이 꿈에 본 얼굴이 뜻밖에 이우연임을 알아내면서 이야기는 폭을 넓힌다.

그 날, “밤 열 시경에 학원을 나온 그 애는 …(중략)…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증발이라도 해 버린 것처럼.” 실종된 사건이 발생한다. 중학생 때까지 화가를 꿈꾸었던 우연은 고등학생인 지금 방향을 잃어버렸다. 달의 뒷면을 그렸다는 특이한 중학생이었다. 수현은 ‘이우연도 나처럼 조금 지나칠 정도로 단조롭고 심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우연은 수현과는 달랐다.

또 다른 친구가 고요이다. 우연과 연결되는 중요한 인물이자, 말을 걸면 ‘무섭게 노려보며’, “내 앞에서 좀 꺼져 줄래?”라고 외치는 단호한 친구, 역시 그녀 또한 수현과는 좀 다르다. 고요는 그런 성격이 지나치게 발현되어 친구 사이에서 따돌림당할 정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은 고요와 우연이 있는 SNS에 몰래 가입되고, 두 사람의 이면을 자연스럽게 관찰하면서 전혀 다른 그들과 만난다. 특이한 사람 속에 둘러싸이는 평범한 사람의 형국이다.



의도하지 않은 훔쳐보기

SNS는 또 다른 세계에서 같은 사람을 다르게 만나는 기이한 체험이 가능하게 해 준다. 어른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즈음 청소년의 세계이다. 소설 《고요한 우연》은 그런 세계를 참으로 절실하게 그려준다. 이 소설이 등장인물을 과장되게 캐릭터라이징 하지 않고도 성공한 이유이다. 삶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모양새를 살피는 방법은 평범하지 않다.

수현이 만나는 마지막 사람이 정후이다. 정후는 현실 속에서 그녀의 이상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익명의 대화자로 채팅 되면서, 수현은 정후의 뒷면을 보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수현이다. 남의 뒷면을 몰래 훔쳐볼 마음은 절대 없었다. ‘손해를 보기도 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도’ 묵묵히 받아들인 수현이다. 결코 악의를 가지고 남을 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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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가 금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학시간에 배웠던 행성과 항성의 차이점이 떠올랐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인 항성과 다른 항성의 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는 행성. “그렇지만 저렇게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기도 하지.” 정후가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현이 너도 그래.”
 

185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람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가장 빛나는 금성 같다고 말해주는 정후 앞에서 수현은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실은 속이는 자인데…. 그래서 착하고 평범한 수현은 결심하는 것이다. 현실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지아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으며, “더는 속일 수 없어. 그냥 SNS를 탈퇴해 버리고 전부 모른 척해 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아니잖아. 그건 정말 나쁜 짓이잖아.”(214면)라고 고백한다. 수현이 사실을 밝히며 소설은 마무리 지어간다.

소설의 모티브를 아폴로 11호에서 따왔다 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인 고요, 바다 그리고 고양이 이름으로 지어주는 아폴로 등에 나타난다. 소설의 후반부에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콜린스는 달에 착륙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이내 그런 마음이 사라졌고, 달을 탐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동료의 귀환을 기다리는 것, 무사히 탐사를 마친 동료들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대목이다.(227면)

아폴로 우주선은 사령선과 착륙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달의 궤도에 들어서면 착륙선이 사령선에서 떨어져 나와 달에 앉는다. 착륙선은 작고 가벼워, 임무를 마치면 쉽게 떠올라 사령선을 만나러 올 수 있다. 이 간단한 원리는 달 탐사에서 ‘귀환’이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다만, 사령선을 운전하는 비행사는 달의 표면을 걸어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고요한 우연》은 세상에도 이런 사령선 비행사같이 기꺼이 양보하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독서 Guide

1. 평범한 사람 이수현의 입장을 나의 생활과 겹쳐 그 심리적 상황을 공유해 보자.

2. 나의 주변은 어떠하며,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3. 내가 지향한 미래의 세계에서 나의 꿈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설계해 보자.

책정보

고요한 우연

저자김수빈

출판사문학동네

발행일2023.02.20

ISBN9788954691154

KDC813.7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고운기 시인 한양대 교수 이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