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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게 해줄 말을 찾다가 얻은 것

- 변재원, 《장애시민 불복종》

작성일: 2023.10.12

히든북 요약

1. ‘비장애중심주의’세상을 살아가던 동세대로서의 동질감

2. 《장애시민 불복종》이 갖는 다양한 의미, 그리고 모두에게 주는 위로

3. ‘불법’을 고찰하며 비로소 얻는 민주주의의 의미

반박의 언어를 찾다가 얻게 된 통찰

이 책을 골라잡은 건 파를 썰다가 애인이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때는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출근 탑승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3월의 어느 날 저녁, “장애인도 지하철 타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지금의 시위 방식은 좀 그래. 예전에 저 시위 때문에 회사에 지각해 본 적이 있거든.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저 시위에 찬성하기 어려울걸. 그리고 취지를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일단 장애인들이 먼저 욕부터 먹잖아. 그것도 사실 안타까워.”라고 했다.

뭐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표현에 반박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분명 피해를 보는 시민이 있었고, 장애인 쪽은 요구를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이준석 전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활동가의 맞장 토론 유튜브에는 “아픈 게 벼슬이냐.”, “말이 안 통하는 노인네를 상대로 이준석 대단하다.” 같은 댓글이 수두룩했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지만 내 안엔 ‘언어’가 없었다. 그 언어를 간절히 찾고 있던 나에게 출판사의 책 소개가 가뭄에 단비 같았다. “자꾸 사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장애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투쟁으로 인한 출근길 갈등에 환멸이 난 독자라면 당장 일독을 권한다.” 하지만 몰랐다, 그간 살아온 삶에 대한 위로와 살아갈 삶의 방향까지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줄은.



엘리트 장애인의 모습에 비친 ‘나’의 모습

장애인이면 다 장애운동에 찬성하고 공감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저자 변재원은 생후 10개월 만에 의료사고로 척수장애를 얻고 심각한 교통사고까지 당해 평생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해 살 몸을 가졌음에도, 장애운동에 대해 ‘이해와 공감’은커녕 완전한 대척점에 섰던 이다. 오히려 장애인으로서 그가 알던 생존의 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길과 다르지 않았다. 좋은 데 취업하는 것 혹은 공부를 통한 입신양명, 소위 ‘엘리트’의 길만이 삶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장애란, 개인의 불운한 서사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자 전장연 활동가인 박경석과의 만남 또한 대학원생으로서 논문 소재를 얻기 위해서였다. 차별의 역사가 응축된 박경석의 답변이 당시 자신에게는 ‘논문을 예쁘게 치장해줄 커다란 공작새의 깃털 같은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변재원은 고백한다. 아니, 완벽히 대상화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두렵고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데모하는 이들은 사회의 시비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투쟁·민중·해방 같은 단어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다는 것.

그의 문장을 읽으며 자주 기시감을 느꼈다. 같은 세대로서 그가 살았던 세상은 정확히 내가 그간 살아온 세상이었고, 그의 모습에서 내가 비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극복을 성공의 요건으로 여기고, 성공을 이기심의 결과로 여기고, 이기심을 생존의 요소로 여기고, 생존을 경쟁의 합리적 근거로 여기는’ 세상. 오늘날 절대다수가 가정과 학교에서 이 이념을 주입 당하며 자라고, 사회에 나와서는 끝없는 비난·평가에 ‘우는 소리’ 하지 않고 이겨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다 그러고 산다’고 사회는 우리 귀에 속삭이고, 실제로도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로 그득해 보인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또한 그 속에서 각자도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개인일 뿐이었다. ‘장애운동’이라는 문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입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이 갖는 다양한 의미, 그리고 위로

박경석 활동가를 인터뷰했다는 작은 인연 하나로 어쩌다 장애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MZ세대에게는 모든 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민중이니 해방이니 하는 집회 현장에서 들리는 ‘무서운 용어’들에, 동료가 된 다른 장애인들이 살아온 이야기에, 처절한 외침이 아닌 아침 인사를 하듯 온화한 ‘투쟁입니다’라는 인사에, 직장 전장연에서의 소통 방식에… 크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그의 시선이 머문다. 그리고 저자는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586·운동권 세대가 주를 이루는 이 판에서,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이 시대에, 세대를 넘고 시대를 넘어 질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 자신 또한 가졌던 뿌리 깊은 편견과 오해와 싸우며 마침내 저자는 깨닫고 만다. 경쟁과 비난과 평가 없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개념을.

500여 일간 전장연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며 변화한 변재원의 생각의 경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애시민 불복종》은 단순히 장애인, 그리고 장애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에게 이 책은 자기 이해와 해방의 기록이다. ‘탐색-직면-이해-연결’의 순서로 이 책을 구성할 아이디어를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할 때 거치는 숙고의 단계’에서 착안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몸, 그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이유를 이해한 저자는 해방의 길로 나아간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으로부터, 자기 극복·자기 계발의 신화로부터, 나아가 비장애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

또한 사회적으로 이 책은 ‘연대’라는 비빌 언덕을 직접 경험하고 민주시민으로 깨어나는 어느 MZ세대의 귀한 기록이자, 그의 말과 삶 자체라는 생생한 ‘번역’으로 오늘날 가장 이해할 수 있게 쓰인 민주주의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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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은 저마다 주어진 조건에서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곧 투쟁이라 일컬었다. (중략) 편견을 내려놓고 보니 투쟁은 갈등과 싸움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를 바꿔나갈 용기를 지닌 자들의 능동적인 마음을 담아내는 표현이었다. (중략) 그들 모두 박옥순 활동가처럼 자연스레 편견없이 투쟁을 외칠 힘을 갖게 된다면, 자기 극복의 신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과 타인에게 더욱 관대해질지도 모르겠다.
 

- 132∼133면

나아가 이렇게 묻고 싶다. ‘정상’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그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을 효율성 등의 미명 아래 모두 배제해 버리는 비장애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비단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만 유효할까. 아니, 배제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구원할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장애운동을 불법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장애인이 왜 불법 운동을 합니까?” 변화한 변재원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았을까. 이에 관한 ‘두렵지 않으세요’라는 글이 단연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고 꼽고 싶다. 저자가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해달라는 섭외 요청에 망설이다가 응한 저자는 이내 뾰족한 질문지를 받고 고민에 빠진다. 지금의 장애운동은 불법이 아닌지, 왜 합법의 정도를 벗어난 운동을 하는지 등에 대한 물음들이 거기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난감한 질문에 저자는 어떻게 답했을까. 깊은 고민의 과정,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이 책에 자세히 적혀 있으니 꼭 책에서 직접 확인하길. 핵심을 살짝 엿보자면, ‘법치주의 돌아보기’다.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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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법률에 앞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법에 구속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 법체계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한 합법은 지배자가 구성한 불평등한 조화의 모습일 뿐이다.
 

- 227면

과연! 무릎을 쳤다. 법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성된 무엇이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이 다 안지 못하는 누군가의 권리가 여전히 존재하고(‘권리가 법률에 앞선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그 권리까지 안으라고 목소리 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노예제를 폐지하고, 여성이 참정권을 쥐게 하고, 식민지를 해방하고, 주5일 근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민주주의’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휠체어 바퀴를 고의로 지하철 문틈에 끼워 넣어 발차를 지연시키는 행위를 불법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저자는 지금의 합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먼저 물어야 함을 짚는다. 지금의 법의 품 안에 누구만 안겨 있고 누구는 안기지 못하는지. 태어난 환경이 달라 그 법 테두리 안에 안겨 있는 건 순전히 운이다. 그 안에 들어간 인간이 양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도 언제든 테두리 밖으로 내쳐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단순히 준법 여부로 장애운동을 가치판단 하는 게 아닌 마땅히 법의 테두리를 더 확장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고 지팡이를 짚게 되면, 장애운동 덕분에 만들어진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이 될 테니까.

책장을 덮으며, 온갖 저주와 모욕의 말을 감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장애운동 활동가들에게 응원의 기도를 보냈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래를 빚지고 있단 사실을 어떻게 애인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독서 Guide

1. 책에 기반하여 민주주의에서 불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해봅시다.

2. 비장애중심주의 개념을 설명하고, 내 곁의 사례를 찾아봅시다.

3. 파업이나 시위가 열리는 동안 그로 인한 불편의 해결 방식을 고안해 봅시다.

책정보

장애시민 불복종

저자변재원

출판사창비

발행일2023.08.04

ISBN9788936486938

KDC342.1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과(Help) 숙식을 교환하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