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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잡다함’에서 ‘들볶이지 않기’

- 매슈 크로퍼드, 《당신의 머리 밖 세상》

작성일: 2023.10.12

히든북 요약

1.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인간의 주의력

2. 기업의 주의력 전유로 인한 개인의 몰개성화

3. 산만함에서 벗어나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지 물음

공공재와 다름없는 현대인의 주의력

현대인의 주의(attention)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저자는 주의력을 공공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공공재를 훔쳐가는 주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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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쇼핑몰 구석구석, 심지어 옥외에도 스피커를 설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발 한가로운 대학 야구 경기의 이닝 사이사이마다 눈요깃거리를 집어넣지 말라. 제발 택시 뒷좌석의 모니터를 끌 수 있게 해 달라. 술집 구석에 버드라이트 맥주 광고를 안 볼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달라. 나는 이미 술집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건물 관리인, 상업 부동산 개발업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이런 보호구역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의력 공공재 개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340면

저자는 개인적 노력으로도 주의력을 집중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기술(technology)을 넘어 정치 문제로 접근한다. 공항의 이코노미석 라운지나 버스정류장의 온갖 광고물들과 소란스러운 환경은 주의력을 흩트리게 하지만, 비즈니스석 라운지의 고요함은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이코노미석 라운지의 성격을 비즈니스석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이 좌우한다는 것에서 정치적 관점을 설명한다(24면).

인간의 주의력은 그것을 추종하는 기업(attention seekers)에 공유자원 또는 공공재로 인식되어 서로 먼저 차지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저자는 인간 주의력에 관한 관점의 변화를 정치사상사적으로 검토한다.



산만에 대척하는 몰입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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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언가에 집중하는 행위를 통해 한 개인이 세계와 적합성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주장을 확장하면, 이 책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인류학적 주제가 된다. 즉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세상에 놓여 있으며 이 ‘위치구속성(situatedness)’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나는 이 위치구속성의 세 가지 요소ー우리의 체화(embodiment), 매우 사회적인 본성(deeply social nature), 우리가 특정한 역사적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ー를 강조하고자 한다. 세 요소는 각각 이 책의 1부 ‘사물 마주하기’, 2부 ‘타인을 타인으로 대하기’, 3부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다’에 해당한다.
 

-43면

저자는 주의를 앗아가는 테크놀로지로 포화된 문화에서 우리의 내적 정신생활은 착취될 자원이 되어버린다고 하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테크놀로지 자체에서 시선을 돌려 그 디자인에 숨은 의도에 대해, 또한 우리의 삶 모든 영역에 이런 의도가 퍼져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333-334면).

정치철학자로서 버지니아 대학 고등문화학술원 선임연구원인 저자는 또한 모터사이클 애호가로서 수리점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모터사이클 수리와 정비 과정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산만한 주의와 정반대의 ‘몰입’을 최고의 경지로 설명한다. 오르간의 파이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정음사’의 일을 통해 몰입의 의미를 설명하고 주의를 산만케 하는 현실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312-322면). 저자는 이와 같은 몰입을 인간 심리상태의 최고의 경지로 여긴다.



집중력 전유 경쟁으로 인한 개인의 공중화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매우 친숙한 서울의 시내버스와 정류장에 걸린 광고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버스를 타고 갈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상업광고를 피하려고 이어폰을 끼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어도 피할 수 없다. 던킨도너츠 매장 앞에 정차하기 직전 버스의 음향 시스템에서 던킨도너츠 광고가 흘러나오고 이와 동시에 통풍구에서 방향제가 커피 향을 뿜는다. 승객이 메시지를 못 들었을까봐, ‘이번 정류장은 던킨도너츠 앞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진다. 아침 출근길에 광고를 접하고 정류장 옆에서 매장을 발견하는 순간 사람들은 커피를 원하게 된다. 이 광고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했다고 한다(13면). 이른바 ‘침투 광고(intrusive advertising)’이다(14면). 사람들은 ‘포획당한 수용자(captive audience)’가 된다(12면).

인간의 주의(attention)는 저자가 정확히 포착한 바와 같이 더는 공공재가 아니라 전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플랫폼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빅테크(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와 국내 주요 포털(네이버, 카카오 등)은 남녀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그중에서도 수면 시간을 제외한 의식적 활동 시간인 16시간 내외를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그 시간은 경합적이기 때문에 한 기업이 차지하면 다른 기업은 비켜주어야 한다. 그렇게 차지하고 나면 그 안에서 각종 광고와 소비가 이루어져 사람들에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침투하는 것이다. 저자가 데이터를 이용해 주의력을 가로채는 것을 막는 프라이버시 권리를 ‘들볶이지 않을 권리’로 대체해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25면).

인간의 주의가 유한한 자원으로서 공공재에서 전유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다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소될 수 없고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자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개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밋밋한 인간’(245-262면), ‘공유 공간이 대중매체로 뒤덮이면 우리의 주의가 전유되어 추상적 존재인 공중(public)이 구체적인 타인을 대신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개인으로 대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환경’(244면)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정치적 관점 외에 인간의 주의력에 대한 가장 사나운 포식자(predator)인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경계 없이는 해결 불가능하다. 이는 글로벌 환경에서 부의 집중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이 정신적 단작(單作)으로 인해 쪼그라들지 않을까 우려해야 했다. 기계화된 수단으로 착취하기가 더 쉬워진다.”(334면)라고 하여 플랫폼의 먹잇감이 되는 잡다함을 설명하려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플랫폼의 먹이가 되어 그 생태계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인간이 저항할 방법은 무엇일까?



산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에 거의 일주일이나 사용했다. 그 사이에 여러 일이 끼어들기도 했지만, 바로 곁에 있는 휴대폰, 그리고 노트북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접속되는 인터넷이 나의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중을 훼방하는 것은 이런 잡다함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때도 발생한다. 언제부터인지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대신, 연구실과 집의 책상 위에, 그리고 침실과 거실, 화장실에 놓인, 각기 다른 책을 조금씩 읽는 독서 습관에 길들어졌다.

이는 글쓰기 습관에도 이어진다. 단행본, 논문, 칼럼 등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지 않고, 조금씩 쓰고 때가 되면 출고하는 식의 습관을 가진 지도 꽤 되었다. 주의를 흩트리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려는 나의 독서 및 글쓰기 습관이다.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주제를 동시에 사고하기 때문이기도 하는데, 이른바 멀티 테스킹(multi-tasking)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들에게 다산은 선견지명이 담긴 말을 남겼다. 다산 연구자 박석무가 소개한 다산의 편지 글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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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一貫)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 놓은 규모와 절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하여야 득력(得力)할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박석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어망홍리(魚網鴻離)를 원용한 것이다. 구하는 물건은 얻지 못하고 엉뚱한 물건이 걸려든 것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에서 다산은 “어망홍리(魚網鴻離) 하사언(何捨焉)”, 즉 고기 잡는 그물에 기러기가 걸렸기로서니 버릴 것이냐고 반문함으로써, 글을 읽고 쓰다가 애초 의도하지 않은 데로 흘러가더라도 버리지 말고 잘 이용하라는 뜻으로 변용하였다. 사르트르는 “사람이 아는 것을 말하고, 모르는 것을 쓴다.”라고 하여, ‘말’과 ‘글’의 차이를 정확히 간파했다. 강의와 발표한 것을 논문 유의 글로 옮길 때 머리를 쥐어뜯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딴 길’로 접어들기 일쑤인데, 그것이 기러기일 수도 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beyond expectation’, 즉 ‘망외(望外)’의 소득이 생기기도 하는데, 몰입한다는 이유로 이를 쳐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서평 글을 쓰다가 나는 또 딴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아무튼 현대인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몰입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가 있다. 이를 정치적 관점, 플랫폼 관점 등에서 고찰할 수 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다산의 공부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 Guide

1. 무언가에 몰입하기 바람직한 환경을 떠올려 봅시다.

2. 기업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집중하고 싶은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3. 산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책정보

당신의 머리 밖 세상

저자매슈 크로퍼드

출판사문학동네

발행일2019.02.25

ISBN9788954655118

KDC182.1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