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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이 만연한 사회를 넘어서려면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작성일: 2023.10.05

PICK1 요약

1. 집중력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

2. 몰입을 손상시키는 환경을 예리하게 분석

3. 대안적 사회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과 제안

감시자본주의의 교묘한 술수들

요즘에는 절도나 소매치기범이 별로 없다. 신용카드가 상용화되면서 사람들이 현찰을 많이 소지하지 않은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물건을 훔칠 수도 있지만 소비 수준이 높아져서 웬만한 것에는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가 노트북을 놓아둔 채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물론 곳곳에 CCTV가 붙어 있는 것도 범죄를 어렵게 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계속 도둑맞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집중력이다. 얼핏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집중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잃어버려서 그런 것 아닌가? 누군가가 그것을 훔쳐 갈 수 있는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은 그 점을 여러 각도에서 해명한다.

엄청난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송하는 인터넷 덕분에 우리의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업무의 효율도 크게 올라간다. 하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도 적지 않다. 점점 짧아지는 집중시간, 깊이 사고하는 능력의 상실, 잊힌 몰입의 즐거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빅테크 기업과 시스템의 문제라고 저자는 고발한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알림 신호음은 일상의 침묵과 사고력을 파편화하는데, 바로 그 산만함을 연료로 삼아 거대 기업들은 인간 본성을 조종하면서 돈을 번다. 온라인에서 우리의 약점을 파악하고 개인 정보를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해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 ‘감시 자본주의’의 위력이다.



ADHD의 진짜 원인

다른 한편 혐오와 적대 감정을 선동하는 미디어 환경도 우리의 사고력을 퇴화시킨다. 분노에 보상하고 자비에 벌을 주는 알고리즘은 분열에 이끌리는 두뇌의 특성에 편승하여 점점 더 분열적인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가짜 위협을 분별하지 못하면서 쉽게 자극되는 두려움은 과도한 각성 상태를 일으켜 집중력을 훼손한다.

해결책은 없는가. 인터넷 기업들은 온라인에 오래 머물게 하는 수많은 기능이나 무한 스크롤 장치 등을 당장 없앨 수 있다. 오프라인의 만남을 촉진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발생할 수익의 감소를 그들은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생리-심리적인 환경도 거론한다. 우선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들 가운데 에너지의 급상승과 급강하를 주기적으로 유발하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많다. 원재료가 모호한 초가공 식품들은 뇌의 발달과 기능에 필요한 영양분이 결핍되어 치매와 ADHD를 유발하기 쉽다. ADHD의 경우 아이들의 생활 세계에도 중요한 원인이 있다.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고, 아이는 가족이 주는 안심과 이완이 부족하여 스스로를 달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실제로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누군가가 깊이 경청하고 지지해 주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신체활동과 집중력의 상관관계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신체 활동이다. 놀이를 박탈당한 아이들은 불안이 늘어나고 집중력이 저하된다. 놀이가 뭐길래? 어른 없이 아이들끼리 어떤 일을 벌이는 동안 창의력이 발휘된다. 놀이를 즐기려면 친구를 동참하도록 설득하고,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타인의 기분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 또한 갈등이 생길 때 협상하는 전략을 떠올려야 하고, 게임에서 졌을 때 실망과 좌절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이렇듯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집중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신체 활동을 통해 뭔가를 통달하고 자신이 능숙하다는 감각을 체득하면 주의력이 놀랍게 신장한다.

집중력의 회복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사회심리적 요건이다.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쉽게 이끌리고, 어떤 정책이 실패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기후위기나 불평등처럼 중대한 과제를 제대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상황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그 모두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집중력은 식물과 같은 것

그런 의미에서 집중력의 해방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너무 적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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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이 집중하는 능력이 식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집중력이 잘 자라서 잠재력을 온전히 피워내려면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성인에게는 몰입이 필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유의미한 활동을 찾고, 자기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생각이 배회할 공간을 마련하고, 신체 활동을 하고, 잘 자고, 뇌가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 오랫동안 우리는 자신의 집중력을 당연시했다. 마치 집중력이 가장 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선인장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집중력이 선인장보다는 난초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안다. 난초는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말라죽을 것이다.
 

- 420면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외딴곳으로 가서 온라인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생활했는데, 그 경험에 묻어나는 여러 감정이 곳곳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집중력이라는 주제를 폭넓게 다루기 위해 관련된 학자나 현장의 실무자들 170여 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하여 내용을 정리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가 예리한 질문으로 파헤치는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역사에서 일어난 굵직한 진보, 그 결과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삶의 조건들이 지난한 투쟁의 소산임을 상기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어떤 권력이나 생각도 맞서 싸우지 못할 만큼 거대하지는 않다.” 이 한마디에서 용기와 희망의 옷자락을 만져보게 된다.

독서 Guide

1. 자신의 집중력을 훼손시키는 중요한 원인들을 세 가지 꼽아보자.

2. 한국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을 해방시키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3. 노동 시간을 단축하면 주의력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까닭은?

책정보

도둑맞은 집중력

저자요한 하리

출판사어크로스

발행일2023.04.28

ISBN9791167740984

KDC181.27

저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