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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로 꿰는 개인과 역사

- 히가시야마 아키라, 《류》

작성일: 2022.10.06

이 주의 PICK1 요약

1. 대만 출신의 중국인 작가가 일본어로 써서 일본에서 출판한 소설

2. 평범하지만 자의식 강한 한 젊은이의 성장기

3. 미스터리로 연결하는 중국 본토와 대만 그리고 일본

언어 속지주의(屬地主義)와 문학의 글로벌

대만 출신의 중국인 작가가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일본 출판시장에서 주목 받는다―, 실은 일본에서 이런 현상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우리 교포인 이회성은 이미 1970년대 초, 그러니까 벌써 50여 년 전에 일본어로 쓴 소설 〈다듬이질 하는 여인〉으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을 받았고, 이후 일본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였다. 눈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돌리면 이런 현상은 더욱 흔하다.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가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고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여럿이다.

문학, 특히 소설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다. 사람 사는 곳의 시시콜콜한 소재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담론을 이룩한 이야기로 녹여내는 소설의 거대한 힘은 놀랍다. 소설의 언어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 오직 지역에 복무한다. 그래서 요즘 문학의 지역성이 자주 거론되는지 모르겠다. 여기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소설 《류》를 읽으며 이 같은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1968년생인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일본에서 살았으며, 소설가로 이미 다수의 작품을 내놓고, 매우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다. 히가시야마는 대만을 무대로, 일본과 중국 본토까지 이어지는 글로벌한 무대를 만들었다. 그곳들을 하나로 꿰는 것은 오로지 언어이다.



자의식 강한 젊은이의 성장기

소설 《류》는 한 평범한 소년에게 일어난 비극, 곧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사건을 추적하며, 그 세월 속에 성장하며 전개되는 미스터리이다. 주인공의 다음과 같은 독백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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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끝내 마음을 따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은지는 죽을 때까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마음을 거절하다 보면 우리는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어 간다.
 

- 407면

지금과 지금의 사건에 머물려는 쪽,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려는 쪽 사이의 줄다리기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우리는 그것을 자의식이라 부르자. 평범하지만 참으로 끈덕진 주인공의 성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 그의 발걸음은 영역을 넓혀간다. 그가 살던 대만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중국 본토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이다.

실은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거꾸로 가는 길이다. 일제강점기가 야기한 개인사의 비극을 간직한 ‘할아버지들’이 본토를 떠나 섬으로 왔다. 그 사이의 만들어진 원한 관계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축이다. 개인이 전체에 어떤 역사의 인자로 각인되는지 잘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지평을 넓히는 이야기

할아버지의 피살과 범인의 색출 사이에는 주인공의 열일곱 살부터 10여 년이 벌려 있다. 시기적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이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일본의 외교, 경제의 대변혁기와 맞물리며, 시대의 조류에 무관한 듯 펼쳐지는 아시아사의 거대 담론이 그 밑을 받치고 있다. 시대 속의 개인을 그리는 작가의 솜씨가 빛난다.

시대는 아프다. 그러나 개인은 엄연하다. 주인공과 연상의 여자 친구 마오마오 사이를 그리는 작가의 손끝에서 우리는 시리도록 확인한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주인공이 건달에게 잡혀가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마오마오는, “내게 입술을 댔다. 너무나 애절하게 매달려와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걱정시켰는지 깨달았다. 나는 마오마오의 가는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눈물이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그건 내가 죽을 때까지 한 키스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짠 키스였다.”(275면)는 것이다. 곧 이렇게 ‘짠 키스’처럼 살아간 생애가 엄연하다.

본토에서 흘러와 대만에 이른 ‘할아버지들’, 그들의 뿌리를 찾아 본토로 흘러들어가 본 주인공, 그 흐름을 인생의 길고 긴 서사시로 미스터리 하게 얽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이다. 보복과 애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흐른다. 그래서 제목이 ‘류(流)’이다.

독서 Guide

1. 보복은 무엇인가?

2. 민족과 국가를 넘는(아우르는) 언어의 힘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3. 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책정보

류 표지이미지

저자히가시야마 아키라

출판사해피북스투유

발행일2022.06.22

ISBN9791164796885

KDC833.6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이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