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북 요약
1. 동물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세 과학자의 이야기
2. 글로벌 리더인 저자들의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함
3. 문명의 대전환 시기에 발생할 문제와 이의 해결을 위한 책임의식, 노력, 참여를 독려
다정한 과학책의 시초, 《유인원과의 산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021년과 2022년에 이 두 책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많다. 과학책 가운데 10만 부
이상 팔려서 출판계 안팎의 화제가 되었을 뿐더러, 후자는 평소 과학책보다 문학책과 가까웠던 2-30대 여성 독자의 사랑을 받아서 더욱더 눈길을 끌었다.
이 두 책이 화제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혼자서 괜히 아쉬웠던 대목이 있었다. 내게는 이 두 책의 ‘원조’로 여겨지는, 그리고 의미와
재미 면에서도 이 책들에 뒤지지 않은 책 한 권이 생각나서다. 바로 사이 몽고메리가 1991년에 펴낸 명작 《유인원과의 산책》이다. 이 책은 인간과 (말 그대로)
사촌 관계로 꼽히는 유인원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이들을 연구한 세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다.
침팬지와 제인 구달, 고릴라와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과 비루테 갈디카스. 제인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다른 두 사람은 낯설어서,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뭘까,
의문이 남는다. 어쭙잖게 목소리 높여서 말하자면, 전 세계의 과학책 가운데 딱 한 권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유인원과의 산책》을 선택하겠다.
《강양구의 강한 과학: 과학 고전 읽기》에서도 이 책을 ‘10대가 (더 늦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하였다.
열대우림에서 일어난 삶의 기적
실제로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책이다. 우선 변변찮은 박사 학위도 없었던(실제로 비서 출신의 제인은 침팬지를 연구하고자 열대우림으로 떠날 때 학위가 없었다),
각자의 야망과 욕망 또 상처와 슬픔을 가진 20대, 30대 여성 셋이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라는 자신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대상을 만나면서 삶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이야기다.
특히 셋 가운데 가장 큰언니이지만, 가장 불안정했던 다이앤이 고릴라를 만나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펼쳐가는 모습은 어떤 인생극장보다도 극적이다. 오죽하면 그의 영화 같은
삶에 감동한 실제 배우 조디 포스터가 그를 연기하는 일에 기꺼이 나섰겠는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서 눈을 떼지 못한 독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고서 다이앤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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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았다는 공허함이 몇 주 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다이앤은 루이스가 그렇게 가져가라고 우긴 단파 라디오를 들을 마음도, 자신이 챙겨온 대중과학 서적을 읽을 생각도, 심지어 타자기를
사용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 세계와 교신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나를 더욱 심한 외로움에 빠뜨릴 뿐이었다’라고 썼다. 다이앤은 칠흑 같은 아프리카 밤의 심연 속에서 갈망과
외로움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스스로 정화할 수 있었다. 엄혹한 고독에 힘입어 자신을 비워낸 뒤 맑고 넓은 그릇이 된 그녀는 비로소 연구 대상 동물의 삶으로 그 자리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 218면
세 명의 과학자가 말하는 자연과의 관계 맺음
제인, 다이앤, 비루테가 열대우림에서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관계를 맺으면서 진행한 연구는 동물 연구의 틀 자체를 바꿨다. 그들이 있었기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같은 후속 연구 결과가 등장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이들은 연구의 틀만 바꾸는 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놓고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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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릴라 디짓과 다이앤은 깊이 오래 소통했다. 당시 디짓은 이미 다이앤을 7년 동안이나 알아 왔다. (…) 디짓은 자기가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죽었을 수도, 아니면 그 집단을
완전히 떠나버렸을 수도 있는 제 어미보다 다이앤을 더 오래 겪어 왔다. (…) 디짓은 그들 동료 고릴라 대신 다이앤을 놀이 친구로 삼았다. 그는 때로 다이앤과 가까이 걷기 위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 디짓은 다이앤의 물건을 만지거나 그녀의 장갑이며 청바지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으며 그녀의 긴 갈색 머리를 살짝 잡아당기기도 했다.
- 92면
제인, 다이앤, 비루테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을 만나고 나서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가 바뀌는 모습도 흥미롭다. 눈 밝은 10대나 그들과 어떤 책으로 소통할지 고민하는 교사나 부모가
《유인원과의 산책》을 함께 읽는다면, 분명히 세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지혜를 나누는 소중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우리에게 다시금 전달된 기적의 이야기
이 책에는 비밀도 있다. 지금은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유명한 작가가 된 사이 몽고메리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무명 시절에 어렵게 이 첫 책을 집필했다. 말 그대로 죽을 각오를 하면서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오지를 누비며 어렵게 써나간 이 책의 행간에는 청춘의 열정과 번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제인의 인기에 힘입어서 한국에 뒤늦게 소개된 이 책은 어느 순간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돌고래 출판사에서 다시 이 책의 2009년 개정판을 번역해서 내놓았다.
원래 세상을 바꾸는 책은 소리 소문 없이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키는 법이다. 《유인원과의 산책》을 함께 읽는 일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서 Guide
1. 《유인원과의 산책》을 읽고서 사이 몽고메리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기도 권한다.
2.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돌고래), 《문어의 영혼》(글항아리) 같은 책이 좋다.
3. 《문어의 영혼》은 넷플릭스 화제의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2020)과 함께 읽자.
4.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의 저서는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책정보
유인원과의 산책
저자사이 몽고메리
출판사돌고래
발행일2023.03.22
ISBN9791198009050
KDC499.83
서평자정보
강양구 ㅣ 물리학자
기자 혹은 지식 큐레이터.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과학 고전 읽기》,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등의 책을 쓰고 다양한 책을 기획했다. 북 토크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을 7년째 진행하며 ‘책으로 연결된 느슨한 독서 공동체’를
직접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