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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아는가

―김유익, 《차이나 리터러시》

작성일: 2023.09.21

PICK1 요약

1. 폭넓은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쓴 중국・중국인론

2. 중국의 역사와 문화,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길잡이

3. 한국인의 반중 또는 혐중 감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인간이 관계를 떠날 수 없듯이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도 그러하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을 고려하지 않는 한국은 상상하기 어렵다. 역사는 이웃 나라들과 맺는 관계의 양상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보여준다. 이웃나라들과의 관계가 우호적일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과 의식 그리고 일상적 삶은 얼마나 달랐고, 다르며, 다를 것인가.

이웃들과 오순도순 잘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계를 둘러보아도 이웃나라와 잘 어울려 지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걸핏하면 티격태격하기 일쑤고, 급기야는 불화와 전쟁으로 치닫곤 한다. 국제정치에서 한 치의 에누리 없이 작동하는 지배욕망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정녕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하루아침에 뒤바꿀 수도 있는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불화의 이유가 무엇인지 정도는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 역사다. 한일관계가 출렁이는 것은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경제다. 한중관계를 규정하는 현실적인 핵심요인은 경제다. 그다음으로 이념이다.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한미관계, 한중관계, 한러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이념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 경제, 이념이 각각 힘을 발휘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웃나라 혐오 시대?

그런데 한국과 그 이웃나라의 관계, 특히 한일관계와 한중관계를 뒤흔드는 요인이 혐오(嫌惡)와 이에 기반한 적대감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극우 정치 세력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한국에 대한 혐오와 중국에 대한 혐오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혐한(嫌韓)과 혐오라는 파괴적 감정을 유포하고 조직하는 것이 일본 극우 정치 세력의 주요 전략이다. 일본의 대형서점에 들어서면 아예 혐한・혐중(嫌中) 도서로 채워진 ‘특별코너’가 눈에 띄는 자리에 마련되어 있으며, 관련 책들은 불황을 모를 정도로 팔려나간다. 인간과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갖춘 사람에게는 보기 민망하고 우려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일본만큼 파급력이 큰 것 같지는 않지만, 한국의 이웃나라 특히 중국에 대한 혐오도 급속도로 파급되고 있는 듯하다. 반일감정(‘혐일’감정이 아니다!)이야 ‘역사적 감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과 중국인을 향한 혐오와 적대감의 확산은 예사롭지 않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특정 정치 세력은 혐중 감정을 유포하고 조직하여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혐오라는 부정적 감정의 확산이 초래할 파국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혐오에는 혐오로, 적대감에는 적대감으로? 안 될 말이다. 가끔 화를 내며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되돌아올 길은 막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혐오라는 감정은, 그 무모하고 상호파괴적인 감정은, 자칫 우호적 관계 복원의 길마저 차단할 수도 있다. 그러니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단하다.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텍스트’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literacy)’을 높이는 것이다. 이해의 수준이 높아지면 몇몇 정치가나 언론이 혐오감정의 유포에 저항할 수 있는 면역력도 높아질 것이다.



현장 활동가의 눈에 비친 중국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차이나 리터러시》는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지역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가 들려주는, 하나인 듯하지만 여럿인 중국의 모습이다. 중국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 실들로 짜인 텍스트인지를 저자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은 물론 역사, 사상, 문학, 영화와 드라마, 판타지 웹툰 등을 예로 들어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무엇보다 독자인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추상적인 국민국가 중국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다양한 ‘생활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인류학적 시선’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은 많은 이가 소망하거나 상상하는 것과 같은 골리앗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다윗으로 상상하면서 ‘야훼의 돌멩이’ 하나를 던져 물리칠 수 있는 존재가 전혀 아니다. 중국은 인류의 고문명 중 아직까지 문화적 전승을 유지한 채 강력한 민족과 국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중국인들이 가진 단 하나의 신앙은 특정 종교가 아니라 ‘생존’, 중국어로 표현하면 ‘훠져(活着)’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다. 위화의 소설이 원작인 장이머우의 초기 대표작 영화 〈인생〉의 중국어 원제가 바로 이 단어다.”(207면) 중국은 누가 뭐래도 가장 오랫동안 고대의 문명의 유지해온 강력한 국가 공동체이며, 그 근원적인 힘은 생존력이다. “5000살 먹은 거대한 바다거북” 중국은 지금도 “긴 궤적의 유영을 지속하며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261면) 당연하게도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종교와 문화가 뒤섞인 중국은 균질적인 단일국가가 아니다. 공산당의 지배력 때문에 하나의 중국처럼 보이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저자가 공들여 서술하고 있는 남부의 혼종적인 흐름을 보면 중국이 얼마나 다채로운 무늬를 지닌 세계인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바람직한 관계 맺기가 가능할 터인데,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에는 중국을 향한 멸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소중화 의식의 현대적 변용이든 제국주의 일본의 중국 멸시의 답습이든 그것이 손쉽게 혐중 감정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지만 한국인의 대중 우월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월감의 근거는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 중국의 경제가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경쟁과 추격의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유연한 경계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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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쯤 그들을 따라잡아 스스로 ‘노른자’가 될 수 있을지가 아니라, 늘 중심과 변방, 문명과 오랑캐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온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오랑캐나 변방이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족할 수 있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 하나의 중심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나머지 주변, 변방들과 함께 평등하게 어울리기 위해,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 핵심이 되기 위해 애면글면하기보다 핵심과 변방의 사이를 우리 의지와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경계’에 위치한 국가로 남는 것은 어떨까?
 

- 225-226면

우월감과 열등감은 분리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이어진 감정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자기를 ‘방법’으로 삼을 수 있을 때 근거가 취약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깊어지면 증오와 혐오의 나락도 멀지 않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추상적인 중국・중국인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중국・중국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상대화하면서 동시에 한국을 상대화할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해야 할 터인데, 《차이나 리터러시》는 더 다양하고 깊은 이해로 이끄는 좋은 길잡이다.



상생과 공존의 파트너 중국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했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다가도 없으면 휑하고 힘든 것이 이웃관계다. 중국을 향한 미일의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한국도 여기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견제하면서도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게 국제관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상대를 적대자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누가 뭐래도 중국은 공존해야 할 이웃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을 플랫폼으로 삼을 수도 있고, 파트너로서 협력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중국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는 것이다.

강조하거니와 타자에 대한 혐오로 자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자들만큼 비루하고 저열한 자도 없다. 혐오라는 파괴적인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의 행보가 우리의 일상세계를 파국으로 이끌 것이 불 보듯 환한데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혐오의 정치공학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중국이라는 텍스트를 폭넓게 조망하면서 진지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시야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상호 이해를 통해 지속적이고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 Guide

1. 우리가 아는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2. 중국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한중관계의 변화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책정보

차이나리터러시

저자김유익

출판사한겨레출판 :한겨레엔

발행일2023.06.30

ISBN9791160405248

KDC309.112

서평자정보

정선태 ㅣ 국민대 교수

정선태 ㅣ  국민대 교수 이미지

대학에서 한국 현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 작품을 길잡이 삼아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읽고 전하는 일이 취미이자 직업이다.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쇼와 육군』,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