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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의 전설’은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 박미옥, 《형사 박미옥》

작성일: 2023.09.14

PICK1 요약

1. 대한민국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가 말하는 사건 그 너머의 ‘사람’, 그리고 사람의 ‘마음’

2. 직업적 배움에서 얻은 인생의 배움

3. 두려웠지만 먼저 발걸음을 내디딘 ‘큰언니’가 전하는 다정한 위로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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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 10면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맞닥뜨린 이 문장에 시선이 한참 붙들렸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답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살고자,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고자 하는 것이라 한다면, 필요한 게 ‘마음’만이 아니란 뼈아픈 사실은 인생을 고작 30대 초반에 이른 나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기술’ 그리고 ‘맷집’―. 이 대답은 참 다르게 다가온다. 선택된 어휘는 사용자의 연륜과 아우라를 엿볼 수 있게 살짝 열린 창문 틈과 같아서, ‘박미옥’이라는 이름 석 자를 들어본 적 없는 독자조차도 단박에 휘어잡아 책장을 넘기게 한다.

어떤 기술이고 맷집이며, 누구를 향한 것인가. 기술과 맷집을 발휘할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온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형사라면 어떨까, 그것도 ‘여’형사라면. 《형사 박미옥》은 형사로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 마음의 기술을 길러야 했고, 여자로서 험한 일에 몸담기 위해 몸의 맷집까지도 길러야 했던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박미옥의 이야기다.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고

23세에 형사가 된 이후 수많은 강력 사건을 해결하고, 탈옥수 신창원까지 잡아넣는 등의 쾌거를 이룬 저자의 별명은 ‘여경의 전설’이다.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 최초의, 최초의… 박미옥은 그야말로 ‘없는 길을 내며 걸은’ 사람이다.

무려 33년 동안 형사로 산 그녀가 겪어낸 사건만으로도 책이 한 권은커녕 열 권이라도 너끈히 나올 것이지만, 그렇다고 《형사 박미옥》이 어릴 적 저녁 밥상머리에서 즐겨 시청했던 〈경찰청 사람들〉 같은 사건 재연 스토리인가 하면, 그건 또 천만의 말씀이다. ‘박미옥’이라는 한 명의 인간을 정확히 짚는 이 책의 제목처럼, 각 글은 사건으로 시작하나 결국 일관되게 가리키는 것은 사건 그 너머의 ‘사람’,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다.

가장 놀라운 문장을 하나 꼽으라면, “이런 세상일지언정 인간이 지겹거나 환멸스럽지는 않았다.”였다. 마약, 살인, 강도, 절도, 사기… 30여 년을 온갖 강력 사건을 쫓아다니며 그녀가 보고 들은 것은 감히 짐작하건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미옥 형사는 죄지은 이를 ‘범인’이라 칭하되 ‘악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희대의 범죄자의 ‘뱀 같은 눈’보다 마음에 더욱 오래 새겨진 건 ‘두려움에 젖은 흔들리는 눈’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수많은 단면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처럼 입체적이고 복잡다단하다는 진실을, 동료를 잃어가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그야말로 ‘몸에 새긴’ 저자는 범인 또한 사람이기에 희망과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엔 사람이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사람으로 태어나 겪을 수 있는 가장 괴로운 순간을 온몸으로 부딪치고도 “그 속에서도 사람이 주는 희망을 보고 살았다.”는 저자의 말은, 온갖 강력범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려 불신과 공포의 아가리에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요즈음 다른 어떤 위로보다 강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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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현장에서 본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고 직접적으로 아파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그 어디서도 위로받을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잔혹하고 믿기 힘든 범죄 현장 너머엔 인간의 선이, 사람 사는 도리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그렇게 눈앞의 절망을 보고도 끝내 희망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 287면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착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이러저러한 답을 하겠지만, 그중 가장 확실한 하나가 무엇인지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일에서의 배움은 곧 삶에서의 배움

형사란 누구보다 선악을 분명히 구분하는(혹은 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자주 했던 ‘마피아’란 게임에서도 ‘경찰’의 역할은 ‘선량한 시민’ 사이에 숨은 ‘마피아’를 정확히 구별해 내 잡는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놀랍게도 저자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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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건들은 내게 사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 48면

그렇기에 저자는 ‘눈과 손발이나마 부지런히 굴리’겠다고, 손쉽게 취할 수 있는 눈앞의 현상만을 보지 않고 언제나 그 너머를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칫 현상만으로 일반화시켜 버릴 수도 있었던 사건을 더 심도 있게 바라보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끄는 쾌거를 거둔다(65면).

흑백으로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 혼란 속에도 진실은 있다. 그 진실을 따라가기 위해 저자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거듭 강조하는 건 ‘경청’의 태도다. 그녀가 강조하는 ‘형사가 기억해야 할 질문의 미학’, 그러니까 ‘관찰과 관용의 마음으로 상대를 향해 평가와 편견 없이 묻는 것’은 일상의 관계―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직장 상사와 팀원 등―에, 그것도 꼬여서 풀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모든 상황과 마음에 대입해도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는 말은, 형사의 취조와 심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진정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어떻게든 전해져 상대를 동하게 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일상에서 몇 번이고 경험하지 않았나.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고백한다. 일에서의 배움은 삶 전체에 적용되는 바, 직업으로서 경청을 몸에 익히려 노력했지만, 일상에서는 한 사람 안는 것조차 버겁다고. 정말이지 그렇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범인과 형사의 관계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가장 강도 높게 할 수 있는, 어떤 특수한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두려워했던 ‘큰언니’가 전하는 따뜻한 응원

제목이 아예 ‘범죄 현장에서 만난 여자들’인 두 번째 장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에는 유독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다. 범죄를 저지르는 여성, 피해를 당한 여성, 범인을 쫓는 여성, 그리고 그를 연기하는 여성까지. 같은 여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유독 섬세하다.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각각의 에피소드는 한 여성에게는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생생한 고통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고민이었으리라. 그럼에도 삶을 살아낸,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앞서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는 연약함에 기반하기 때문에 더욱 단단한 위로다. 무엇보다 1968년생, 올해 나이 쉰다섯인 ‘큰언니’ 저자의 고백이 더욱 그러하다. 저자는 여자 형사로서 부딪힌 벽에 단지 세간의 편견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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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편견과 고뇌보다는 실제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범죄자와 맞닥뜨린 후부터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종잡을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 가늠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계속 살아내는 것이 결국 내 길임을 깨달았다.
 

- 195면

너무나 이해되기에 마음이 저리고 눈물이 떨어졌다. 아무리 성 평등의 가치가 확산한다 해도, 여성으로서 피부에 와 닿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일상의 아주 작은 틈에서 언뜻언뜻 감지되는 그 한계는 여자 자신만이 안다. 누구도 공감해 줄 수 없고, 심지어 같은 여성도 모두 공감할 수 없는, 오로지 그 자신만이 느끼는 본능적인, 동물적인 두려움이 있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아갔던 것처럼 보였던 저자 또한 뭔가 대단하고 특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사실은 두려웠다고, 그러나 ‘끝없이 덮쳐오는 내면의 두려움조차 끌어안고’ 나아갔다는 ‘큰언니’의 고백은 지금, 이 순간 스스로 가진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자, 내미는 손이다.

조직의 관리자가 되어 ‘손발이 굳어가기 전에’, 아직 힘이 있을 때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정년퇴임을 8년 앞두고 명예퇴직해서 제주에 작은 책방을 꾸리며 산다는 박미옥 형사이다. 이제는 사건이 되어버리기 전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살고 싶다는 마지막 장을 읽고,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저렇게 현명하게, 저렇게 우직하게, 단호할 땐 단호하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차오르는.

독서 Guide

1. 착하게 살기 위한 ‘기술’이 무엇인지,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누어봅시다.

2.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는 말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나요?

3. 여성으로서 본능적인 한계를 경험한 순간이 있나요?

책정보

형사 박미옥

저자박미옥

출판사이야기장수 :문학동네

발행일2023.05.03

ISBN9788954692519

KDC350.704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을 돕고(Help) 숙식을 제공받으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