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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다른 이름, 사색(思索)

―알베르트 키츨러, 《철학자의 걷기 수업》

작성일: 2023.09.14

히든북 요약

1. 철학으로 설명하는 걷기와 행복의 연관성

2. 걷기를 통한 나와의 대화

3.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의 걷기

동서를 막론한 철학자들의 걷기 예찬

걷기 예찬론에 관한 책은 많이 있다. 그런데 《철학자의 걷기 수업》이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저자가 본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변호사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가재는 게 편’이다. 그러나 나 역시 걷기 예찬론자로서 평소 걸어서 출퇴근할 뿐 아니라 어지간한 거리는 걷기를 즐겨한다. 그 이유가 더 크다.

저자는 변호사에서 영화 제작자로, 그리고 철학의 길로 접어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 또한 저자의 도보 여행과 관련이 있다(32-33면). 걷기가 인생의 길을 바꾸고 있음을 쓰고 있다. 이 책은 걷기의 유익을 여러모로 적고 있다. 책의 목차만 봐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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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몸과 마음을 얻는 길 / 나 자신과 마주하는 길 / 감사하는 마음을 얻는 길 / 적절한 정도를 찾는 길 / 안온한 내면에 이르는 길 / 더 큰 기쁨에 다다르는 길 / 도보 여행이 주는 행복의 길 / 삶의 단순함을 깨닫는 길 / 침착성과 참을성을 배우는 길
 

독자 중에는 이 소제목만 갖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면 작은 책 한 권을 펴낼 수 있으리라. 저자는 더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각도에서 걷기를 상찬하고 있다. 독특하다고 한다면 걷기 예찬론자로 알려진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등 서양 철학자뿐 아니라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자, 나아가 일본 사상가에 이른다. 서양 사상가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폭넓은 문헌을 두루 섭렵하여 소개하고 있다. 나아가 저자는 걷기를 ‘길’로 승화하여 동양의 ‘도(道)’와 서양의 기독교와도 연결하며, 인도와 이슬람 경전에서 ‘길’과 관련된 부분까지 소개한다.



나만의 산책로에서 찾아오는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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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산책을 나갈 때면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챙겨 나선다. 걷다가 떠오르는 좋은 생각을 적어두기 위해서다
 

-35면

나는 연구실에서 식사 시간을 빼곤 대체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반나절 이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된다. 이럴 때 무턱대고 나가 평소 걷는 캠퍼스의 흙길을 걷기 시작하면 막혔던 생각이 뚫리는 묘한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러나 거기서 생각을 적지 않고 연구실로 돌아오면 그때 떠올랐던 좋은 생각이 사라져버린다. 아쉽기 그지없다. 그래서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휴대폰에 간략하게라도 메모한다. 내가 쓴 책이나 논문의 상당수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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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을 걷는 일이란, 오감을 충족시키는 총체적 경험이다. 숲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샘물을 맛보고, 풀밭에 눕거나 비탈길을 오르기 위해 손으로 바위나 땅을 짚으면서 우리의 시각, 후각뿐 아니라 촉각, 청각, 미각도 자극된다.
 

-48면

걷기 좋은 장소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나만의 장소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집과 학교를 품고 있는 안산(鞍山, 서대문 소재). 295미터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없는 것이 없는 산이다. 전문 산악인도 즐겨하는 험준한 바위가 있는가 하면, 흙길이 있어 걷기 편하고, 최근에는 나무 데크의 둘레길(안산 자락길)이 조성돼 외지인도 많이 찾고 있다. 군데군데 메타세쿼이아,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삼림욕에도 좋다.

저자는 항우울 치료제로 삼림욕을 권장한다(47면). 내가 경험한 인상 깊은 삼림욕장으로는 미국 시애틀 근교 올림피아산과 일본 닛코 등의 우림 (雨林, rainforest)을 들고 싶다. 그 안에서 햇빛이 가려질 정도로 빽빽한 그야말로 삼림(森林)과 이끼로 뒤덮인 신비한 자태를 보면, 마치 태고를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타고 몇 시간 가야 하는 이런 명소보다 문 열고 나가 5분이면 갈 수 있는 안산이 나는 더 좋다.



자아를 향한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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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밖으로만 향하는 사람은 유령으로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56면

그렇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치열한 물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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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해 자주 여행을 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했다고 알려져 있다.
 

-61면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이렇게 탄생했다. 저자는 걷기의 지평을 ‘여행’으로 확장하고 있는데, “낯선 환경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더 확실하고 명료하게 알게 된다.”는 카프카의 말을 인용한 것(36면)과 일맥상통한다. 저자의 전직(轉職), 즉 변호사를 그만두고 12년간 영화 제작자로, 다시 철학자의 삶을 살게 된 것도 여행의 결과였다(72면). “멀리 걸어가면 멀리 뒤돌아볼 수 있다.”는 독일 속담처럼 일상에서 벗어나면, 시야를 흐리게 만들며 인식의 범위를 협소하게 하는 감정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80-81면).

저자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루소의 낭만주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고독하게 숲과 들을 산책한 것을 들고 있다(129면). 자연을 즐기며 걷는 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117면). 저자는 일본의 산이란 산은 죄다 올랐다고 하는 가이바라 에키켄을 소개하여 도보 여행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결 짓는다(115-116면). 이렇듯 저자의 걷기 예찬은 걷기 철학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장자(138면, 156면, 194면), 공자(237면), 인도의 우파니샤드(155면), 스토아철학(158면)으로 연결되며, 검약한 삶(169-171면)으로 어떻게 연결하는지 그의 사상의 흐름이 신비하면서도 자연스럽다.



걷기에 정해진 방도는 없다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보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명산 100곳을 숙제하듯 다니고, 제주 올레길을 스탬프 도장을 찍어가며 다니는 사람도 있고, 산을 가면 꼭 정상을 밟아야 성이 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스타일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걸어 다니는 안산이 좋다. 그것도 허리춤에 난 흙길을 좋아한다. 힘들지도 않고 발이 기억하고 있어 걸으면서 딴청 부리기 좋기 때문이다. 걷기 자체가 목적이 아닌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 점에서 “비슷한 보폭으로 단조로울 만큼 균일하게 걷는 가운데 내면에 안온함이 깃든다.”(135면), “마음의 평안은 자족하고 겸허한 마음에 바탕한다.”(148면)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걷기의 장소보다 한 곳을 계속 다니면서 계절의 변화, 조석의 다름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장기하의 노래 “느리게 걷자”의 한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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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독서 Guide

1. 주변에 나만의 걷기 장소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걷기를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3. 가장 와닿는 목차의 내용에 집중하며 걷기의 유익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책정보

철학자의 걷기 수업

저자알베르트 키츨러

출판사(주)도서출판푸른숲

발행일2023.05.11

ISBN9791156754145

KDC190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