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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만연의 시대, 치유의 열쇠를 찾아서

-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작성일: 2023.09.07

PICK1 요약

1. 점점 강한 자극과 쾌락에 탐닉하는 뇌의 메카니즘

2.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을 분별하는 지혜

3. 적절한 고통이 삶에 필요한 이유

인스턴트 자극의 범람

“아침이 밝았어요 / 밤새 / 무슨 일 없었는지 / 잘 잤는지 / 가족들이 / 거실에 모여 / 각자의 / 스마트폰을 켜요”(임지나, 〈안부〉) 스마트폰은 깨어 있는 동안 거의 항상 우리 몸에 붙어 있다. 특별한 용무가 없는데도 그것을 만지작거릴 때가 많다. 일상이 권태롭게 느껴질 때마다 접속하여 시간을 때운다. 임지나의 시는 그런 생활의 속성을 잘 포착하여 보여준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자극을 쫓는 성향이 있는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탐스러운 음식이 넘쳐나고, 반짝이는 상품이 곳곳에 가득하다. 우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에 길들고 있는데, 그 극단에 중독이 있다. 담배, 술, 커피, 설탕, 도박, 쇼핑, 스마트폰, 게임, 섹스…. 중독의 대상은 폭넓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역시 마약이다.

최근에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마약 복용이 급증하고 있고, 한국도 오랫동안 마약청정국(유엔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 당 마약류사범이 20명 미만)이었지만, 2016년에 그 선을 넘기 시작하여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3.2%가 마약을 경험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제조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유통의 경로가 은폐되는 것이 거론되지만, 근본적으로 중독에 쏠리는 심리도 함께 짚어보아야 한다. 《도파민네이션》은 뇌과학적으로 중독의 본질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뇌

도파민은 쾌락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그것이 많이 분비될수록 쾌감이 증진된다. 그런데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쾌락과 고통은 뇌의 동일한 영역에서 처리되며 대립의 메커니즘을 통해 기능한다. 저자는 시소 모양의 저울 그림으로 그 원리를 설명한다. 저울의 양 끝에 쾌락과 고통이 올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수평 상태는 쾌락도 고통도 없는 평범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어떤 물질의 흡입이나 특정한 행동을 통해 쾌락이 느껴지면 저울이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울은 다시 수평 상태로 돌아가려는 자기 조정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문제는 저울이 수평 상태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마치 시소를 탈 때 저쪽으로 기울었던 것을 회복하려고 이쪽에서 강하게 내리누르면 정반대 방향으로 확 내려오는 원리와 비슷하다. 바로 이것이 중독 물질을 흡입한 후에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까닭이다. 모든 쾌락에는 고통의 대가가 따르는데, 그것은 원인이 되는 쾌락보다 더 오래가며 강렬하다. 그럴수록 더 센 쾌락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곧 효력이 떨어지고, 그 후엔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당연히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경험은 마약 중독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확실성인데, 도박의 경우 금전적 이득보다는 보상 발생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더 쉽게 빠져든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의 반응이 너무 변덕스럽고 불확실하기에 묘한 긴장이 일어난다. ‘좋아요’를 받을지 아니면 아무런 반응이 없을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좋아요’ 그 자체만큼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무료함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기준점은 점점 높아진다.



적절한 고통을 끌어들이자

삶의 지향을 바꿔야 한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야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이 문제의 뿌리다. 의료 영역에서도 적당한 고통과 염증은 자연이 현명한 용도로 사용하는 치료 수단인데, 오늘날 의사들은 모든 고통을 없애려다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기 일쑤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안과 불쾌함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과도한 도파민을 분비하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며, 상처가 크지 않은데도 고통을 느낀다. 저자는 ‘우리가 비참해지는 이유는 비참함을 피하려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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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부(富)는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도파민 과부하는 보상을 미루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소셜 미디어의 과장과 ‘탈진실’의 정치(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거짓말하기)는 우리의 결핍감을 키운다. 우리는 풍요 속에 있으면서도 빈곤함을 느낀다. 여유 속에서 결핍의 마음가짐이 생겨나는 것처럼, 결핍 속에서도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세계 너머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우리 바깥의 무언가를 믿거나 그것을 위해 매진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감과 의미로 가득한 삶을 만들려는 노력은 비록 가난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에게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 237면

삶 속에 일부러 적절한 수준의 고통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찬물 목욕이나 힘든 운동 등으로 고통에 종종 노출되면 본연의 쾌락 설정값은 쾌락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웬만한 고통은 견딜 수 있게 되고, 작은 쾌락에도 커다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뇌가 쾌락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내성이 생기듯이, 고통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고통 면에 내성이 생긴다. 물론 너무 심하면 도파민 부족에 시달릴 수 있고 고통에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 적절한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서로에게 의존할 수 있는 관계로

이미 알콜이나 마약 중독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저자는 ‘근본적인 솔직함’을 강조한다. 한국에서도 마약 관련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 중독자가 스스로 약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는 태도가 치료의 결정적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중독을 극복하려면 타인의 도움이 절실하다. 뼈아픈 과거의 경험을 꺼내놓을 때 그것을 깊게 경청해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 주는 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 성찰과 수용의 만남에서 수치심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를 훈련하면 미래 계획, 감정 조절, 지연 보상에 활용하는 뇌 부위의 성능이 높아진다고 한다.

중독을 다른 말로 ‘의존증’이라고 한다. 뭔가에 자신을 맡긴다는 뜻이다. 왜 약물이나 도박에 기대는가? 사람에게 마음 놓고 기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디 허약한 동물이라서 서로 기대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간편하게 어떤 물질의 흡입이나 특정한 행위로 빈 구멍을 메우려는 행위가 바로 중독이다. 그것은 고립과 단절을 더욱 심화시킨다. 중독이 날로 심각해지는 지금, 사회적인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거짓 자아의 가면을 쓰지 않고 서로를 열린 가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거기에 이르는 몇 가지 소중한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

독서 Guide

1. 중독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등장하는 장면들 가운데, 두뇌의 균형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려보자.

2. 가난이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그런가?

3. 나를 파괴하는 수치심과 나를 살리는 수치심의 경험적 사례를 나눠보자.

책정보

도파민네이션

저자애나 렘키

출판사흐름출판

발행일2022.03.21

ISBN9788965965046

KDC181.71

서평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