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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AI 앞에 선 인간

AI 로봇, 사랑을 타전하다

-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작성일: 2023.08.17

포커스 요약

1.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2. AI 로봇과 인간의 만남에 관한 문학적・철학적 접근

3. 인간보다 인간적인 AI 로봇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

《나를 보내지 마》와 《클라라와 태양》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 있는 나날》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나를 보내지 마》 《녹턴》 《파묻힌 거인》 등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어느 것 하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치밀한 문장 구성, 개인의 내면과 역사의 이면을 연결하는 상상력, 동양과 서양이 긴밀하게 교차하는 공간 구성, 현실과 환상을 아우르는 감각 등 그의 소설은 안이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낮은 목소리에 실린 다채로운 무늬는 부옇게 흐려지고 만다.

《클라라와 태양》도 그러하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교감을 핵심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복제 인간을 주제로 한 《나를 보내지 마》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이를테면 일종의 이시구로식 사이언스 픽션이라 할 수 있다. ‘이시구로식’이라 했거니와, 그것은 《나를 보내지 마》가 복제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복제 인간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클라라와 태양》도 인공지능 로봇의 감정과 생각을 인공지능 로봇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캐시, 루시, 토미를 통해서 인간 못지않게 인간적인,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 인간을 만났던 나는 이제 《클라라와 태양》에서 때로는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자기희생적이며, 윤리적인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를 만난다. 태양이 빚어내는 무늬를 사랑하는 클라라는 ‘천연 인간’보다 더 인간의 삶의 조건을 걱정하는 ‘인공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 아닌 인간의 통찰력과 관찰력에 기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인간의 위치! 이시구로의 이 동화 같은 소설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그 통렬한 아이러니이다.



에이에프 클라라와 인간 조시

아이들의 친구 역할을 하도록 제작된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 클라라는 매장에서 자신이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어딘가 아파 보이는 소녀 조시가 어머니 크리시와 함께 매장에 와서 클라라를 사 간다. 조시의 ‘가족’이 된 클라라는 세심하게 유전자 편집을 거쳐 ‘향상된’ 조시,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조시를 살뜰하게 보살핀다. 조시를 둘러싼 인간들,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낸 릭, 릭의 어머니 헬렌, 초상화가 카팔디, 조시의 아버지 폴, 헬렌의 남자친구 밴스도 클라라의 감정, 생각, 판단,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에이에프 클라라는 섬세한 관찰력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조시를 비롯한 ‘인간들’의 감정의 추이와 생각의 변화 그리고 의도를 파악한다. 핵심적인 문제는 조시가 뚜렷한 이유 없이 아프다는 것이며, 그런 조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수렴된다. 큰딸 샐을 잃어버린 크리시는 조시도 머잖아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조시를 ‘대체’할 ‘뭔가’를 원한다. 크리시는 카팔디에게 조시를 꼭 닮은 초상화(사실은 그림이나 조각이 아니라 또 다른 에이에프)를 부탁한다. 카팔디는 개별 인간만의 고유한 무엇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주장하고 또 믿는 사람이다. 한편, ‘향상되지 않은’, 그러니까 유전자 편집을 거치지 않은 보통 인간 릭은 변함없이 조시를 아끼고 사랑하며, 클라라의 물음에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조시의 건강은 점점 나빠진다. 원인을 고민하던 클라라는 조시의 건강이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해의 여행이 끝나는 장면을 보기를 좋아하는”(85면) 클라라는 “공해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기계”(49면) 쿠팅스 머신이 내뿜는 공해물질 때문에 태양이 제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판단 아래,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운다. “쿠팅스 머신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조시가 완전히 회복할 거라고 생각” (324면)한다며. 클라라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면 조시는 튼튼하고 건강해질 것이며, 대학에도 가고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태양을 살려야 한다. 태양을 살리기 위해서는 쿠팅스 머신을 없애야 한다.



태양 앞에 선 클라라

클라라는 먼저 “보통의 자양분은 꾸준히 뿌려 주었으나 특별한 도움은 영 내주지 않”(199면)는 태양을 찾아간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양이 하루의 여행을 마치기 전에 들르는 맥베인 씨의 헛간에서 클라라는 태양을 만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246면)

태양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한 일’은 무엇일까, 끔찍한 공해를 생산하는 쿠팅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야 태양도 상쾌한 환경에서 인간에게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이니까. 쿠팅스를 파괴하는 방법은 클라라의 머리 안에 들어 있는 ‘P-E-G Nine’이라는 용액을 쿠팅스의 실베스터 광역 발전 장치에 주입하는 것이다. 조시가 건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그리하여 카팔디가 제작하는 ‘초상화’도, 자신이 조시를 학습하는 일도 불필요해지기를 바라는 클라라는 기능 저하를 무릅쓰고 조시의 아버지 폴의 요청에 기꺼이 응한다. 그리고 다시 태양을 찾아간다. 클라라의 길고 간절한 기도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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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용액을 잃은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해가 조시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더 내줄 수도, 전부 다 내놓을 수도 있어요. 아시겠지만 지난번 여기 왔던 때 이후로 조시를 구할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만약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중략) 저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라도 다시 만나는 걸 해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요. 그들이 잘되길 바라고 어쩌면 서로 만날 수 있게 돕기도 한다는 걸요. 그러니까 제발 조시와 릭을 생각해 주세요. 이 아이들은 아직 어려요. 조시가 세상을 뜬다면 둘은 영영 헤어지게 돼요. 해가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주었던 것 같은 자양분을 조시에게 주기만 하면 조시와 릭은 친절한 그림에서처럼 같이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둘의 사랑이 단단하고 영원하다는 걸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 397-398면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던 고대사회의 제사장을 보는 듯하다. 기도에 응답하듯 태양의 “자양분이 엄청난 양으로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고”(410면), 그 기운을 맘껏 들이마신 조시는 활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그날 이후, 조시는 건실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클라라가 타전하는 것

그렇다면 클라라의 그날 이후는? 에이에프에 관심이 많은 카팔디는 에이에프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클라라에게 그들의 편견과 적개심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밀봉된 블랙박스’를 열어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클라라의 해체=죽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클라라를 한갓 ‘물건’으로 보는 카팔디로서는 당연한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크리시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클라라는 자신의 블랙박스를 공개함으로써 인간에게 공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걸 누릴 자격이 있다면서. 클라라는 더 나은 대접을 받으며 서서히 사라져야 마땅하다면서.

조시와 헤어진 후 클라라는 야적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기억은 이상하게 겹치고, 정신은 혼란스러워진다. 그곳에서 만난 매니저의 말대로 특별한 통찰력을 지닌 ‘놀라운 아이’ 클라라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441면)이라면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한 사람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고.

뛰어난 공감 능력으로 헌신과 사랑을 실천하는 클라라가 타전하는 사랑의 메시지에 인간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인간의 ‘천연 지능’이 로봇의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무엇이고 로봇이 로봇인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하고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까지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을까. 쳇GPT의 본격적인 상용화와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시점에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면서 이래저래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인공지능은 축복이자 희망일까. 아니면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저주일까. 둘 다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야적장에서 쓸쓸하게 지는 해를 바라보는 클라라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외로움에 각별한 동정을 표하는 클라라를 그려보면서, 나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낡디낡았으되 언제나 새로운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독서 Guide

1. 인공지능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까.

2. 이 소설의 화자는 에이에프 클라라다. 그 효과는 무엇일까.

3. 《클라라와 태양》에서 읽어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책정보

클라라와 태양

저자가즈오 이시구로

출판사민음사

발행일2021.03.29

ISBN9788937417566

KDC843.5

서평자정보

정선태 ㅣ 국민대 교수

정선태 ㅣ  국민대 교수 이미지

대학에서 한국 현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 작품을 길잡이 삼아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읽고 전하는 일이 취미이자 직업이다.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쇼와 육군』,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