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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것이 너를 구원할 거야

-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작성일: 2022.09.29

이 주의 PICK1 요약

누군가는 습지에서 한 세계를 완성해 가고, 누군가는 도시에서 그 세계에 고립되기도 한다. 카야는 모두가 경멸하는 습지라는 공간에 있으나 자신의 삶을 단단히 살아내고 스스로 소중히 여길 무언가를 곁에 둔다. 몸이 어디에 있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다면, 거기에 마음을 둘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 본질을 닮아 움직이게 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모든 세계를 이해할 한 사람이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고 진실하게 다가올 것을 말한다. 그 길은 외롭지만 끝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그러한 길이다.

혼자 된 카야가 사는 법

많은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는 익숙하다. 장소 자체에 물들어 있는 감정들 또한 선명하게 남는다. 그렇기에 더욱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도 존재한다. 그런데 모든 기억이 안녕,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별이기만 한 장소는 어떨까. 특별한 잘못, 아니 그 무엇도 한 일이 없이,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어린 카야는 습지에 홀로 남겨진다.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맞거나 폭언을 듣고,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를 남겨둔 채 떠나고, 글과 타인에 대한 감정을 알려준 첫사랑은 그를 다시 찾지 않게 된다.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는 공간에서 재갈매기에게 말을 거는 것뿐인 하루들을 살아가며 카야는 먹을 것이 없어 홍합을 주워 파는 고된 일로 당장의 목숨을 이어간다. 익숙해진 노동 끝에 남은 시간엔 외로움을 자아내며 살아갈 뿐이다.

카야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하지만 고독 안에서 자신을 부식시키지 않는다. 쓸쓸함을 하나 내려 놓고, 대신 철새 깃털 하나를 주워 집에 전시장을 만든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인 양 집요하고 꾸준하게 습지의 흔적을 수집하고 그곳의 생명들을 그림으로 남겨 자신만의 공간을 꾸며 나간다. 그것은 결국 그를 홀로 설 수 있게 만드는 기둥이 된다. 사람이란 한 분야를 공들여 가꾸어 나가는 가운데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실망과 기대와 파국

사람이 주는 온기를 모르고 자란 카야에게 다가온 두 이성은 모두 카야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테이트의 어린 마음은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지만, 어린 마음이었기에 카야의 공간인 습지가 결국 그를 집어삼킬까 두려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테이트로 인한 카야의 실망과 아픔은 체이스와의 미래를 기대하며 그를 의지하는 것으로 기운다. 청춘의 열망에 사로잡혀 새로운 취향의 사람을 탐했을 뿐인 체이스에게 카야의 진심은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처럼 일방적이기만 하다.

어느 날, 늪지에서 체이스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람들은 발자국 하나 없는 사건 현장에서 체이스가 왜, 어떻게 목숨이 끊어졌는지 의문을 풀기 위해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 나가고, 체이스의 가족들은 습지의 쓰레기 같은 여자에 불과한 카야에 대한 악의를 서슴없이 내비친다. 모든 이의 편견은 당연하게도 카야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위기에 처한 카야가 그 시선이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그가 이겨내어 온 시간들이었다.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견뎌낸 거센 외로움의 시간들이 그를 구원해주는 보상물이 된다.



비로소 만나는 단단해진 자신

습지는 비일상적인 곳이다. 이 새롭고 독특한 공간은 카야를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책을 읽으며 흘린 나의 눈물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이고 찾는 이도 없는 곳에서, 가재가 노래하는 그곳까지 가서 살라는 엄마의 오래된 말을 기억하며 살았던 소녀 카야의 그 깊은 고독에 공감하며 흘린 것이었다. 그러나 도시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나 역시 외롭다. 공허한 인간 관계 속 고립과 배신은 여기 이 곳에도 있다. 그를 위한 눈물은 습지와 다를 것 없는 여기 이곳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근원적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동정으로 흘린 것임이 새삼스럽다.

카야야말로 아픔이 가득한 습지를 가장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삶을,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켜냈고, 여러 기억이 혼재한 그 익숙한 장소에서 비로소 단단해진 자신과 마주한다. 습지의 반대편,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떠나가고 우리는 종종 홀로 남겨진다. 그 과정은 아프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외로움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카야가 습지의 생명을 사랑하고 시를 노래한 것처럼 마음을 둘 무엇을 곁에 두어야만 한다. 눈물을 삼키고 단단히 땅에 발을 딛고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완성해 나가다 보면, 그 여정을 이해하고 사랑할 누군가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카야의 삶이 끝내 그러했듯.

책정보

가재가 노래하는 곳 표지이미지

가재가 노래하는 곳

저자델리아 오언스

출판사살림

발행일2019.06.21

ISBN9788952240569

KDC843.6

서평자정보

김민섭 ㅣ 작가

김민섭 ㅣ 작가 이미지

작가. 대학 공부가 사회와 자신을 연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대학을 박차고 나온 경험을 고백한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를 펴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리 운전,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SF 작가 김동식 발굴을 통해 자신-타인-세상 간 접점을 잇고 사유한 일들로 주목을 받았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북크루’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