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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AI 앞에 선 인간

AI가 쓰는 시의 전후 사정

- 구현우 외, 《9+i》

작성일: 2023.08.03

포커스 요약

1. AI가 시상과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실제 상황을 본다

2. 시인이 가진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3.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미래로 가야할 시점이다

드디어 출간 된 AI가 쓴 시집

어떻게 AI가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인가. 방법은 간단했다. “사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바로 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순식간에 써주는 것이다. ‘무슨 무슨 주제로 시를 써줘’라고 명령만 내리면 된다는 사실이다. (중략) 시같이 짧은 글을 만들어줄 때는 최적의 결과를 보여준다.”고 했다. 테크니컬 라이터 안창현 씨의 설명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시집이 있다. 《시를 쓰는 이유》(리멩워커, 2022)가 그것이다.

이와 달리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 몇몇 문장을 이용해서 보완’(안태운)하는 일종의 공동창작이 실험되었다.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면 시가 선출되어 나오는 것은 《시를 쓰는 이유》와 같다. 그러나 ‘시인과 AI가 함께 창작에 참여하여 출간하는 콜라보 시집’ (윤은성)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안태운, 윤은성 등 9명의 시인이 참여한 시집이 바로 《9+i》이다. i는 창작에 참여한 인공지능이자 이 시집에서 ‘산’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시를 산출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 작업의 주관자이자 Poem Generator라는 시 생성기를 만든 곳은 CJ네트웍스이다. 시인은 부여받은 아이디로 PG에 로그인하여 화면을 생성한다. 화면은 키워드를 넣는 입력창과 상세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옵션 항목이 세팅되어 있다. 여기에 작품의 키워드, 글자 수, 퍼소나를 설정해 ‘생성하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렇게 산출된 시를 가져다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다음 작업이 있다.



AI와 인간 시인이 콜라보 한 실제

윤은성은 자신의 작업 과정을 다른 지면(《딩아돌하》, 2023년 여름호, pp.28-46)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쓸 만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생성을 반복’했다고 말한다. 주관자 측은 시인인 생성된 문장을 바로 가져다 써도 좋고, 영감을 받는 정도로만 활용해도 좋다고 했다. 윤은성은 아래와 같은 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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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맞춰서 걸었지/걷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초록이었지/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린 채, 우리는 이렇게 시작해야 해/나는 새를 쏘지 않았어 나는 총에 맞지도 않았어/그저 내 키보다 높은 담장에 기대어 서서/내가 새를 쏜 건지도 모르지 나는 총에서 새를 쐈어/그것뿐이야 나는 총상을 입지도 않았어 그저 내 어깨에 기대어/잠자는 나무를 깨우지 말았어야지/그나마 새를 맞힌 건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그것은 초록의 새가 나에게 입힌 상처와 비슷했다
 

이 시를 얻기 전 윤은성이 제시한 검색어는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으나 ‘초록’, ‘새’, ‘초록의 새’, ‘총’등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이 시가 ‘꽤 매력적인 문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판단했고, 그 가운데 특히 “걷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초록이었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는 “노래를 부르며 널빤지 위를 걸었어/걷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초록이었지”(1연)라든가, “자다가 깨어난 게 비 갠 오후라면/그저 내 키보다 높은/담장을 기어오르다가/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몰라”와 같이 완성해 나갔다. 핵심적인 시상이 옮겨 오며 보다 정연한 시적 구상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굵은 글씨가 생성본. 이하 같음)


시인이 가진 여전한 경계심

윤은성은 “그것뿐이야 나는 새가 되지 않았고/총상을 입지도 않았어”(6연)라든가 “초록의 새가 떨어질 때 맡았던/물이 묻고 녹이 슨 농기구 냄새와 비슷했다”(11연) 등, 글자 수로만 보면 전체의 20% 이하이지만 중요한 시상으로 치면 생성본으로부터 절반 이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생성본과 최종본을 비교할 자료가 이것 하나뿐이므로 통계 내기가 어려우나 대체로 비슷하리라 본다.

이렇게 쓴 다음 시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생성본과 최종본을 자세히 비교해 남긴 윤은성은 “내가 AI를 통해 영감을 제공 받아 시를 쓰는 것은 시를 쓰는 일 자체의 의미를 퇴색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해 작업한 것 같은데 결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누군가가 정의(기획)한 시를 수행한 결과물일 뿐’(김연필)이라는 고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같은 경험을 한 시인 가운데는 ‘AI와 구별된 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것이 ‘고유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인의 고유한 작업 영역을 매우 의식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대체로 아이디어를 구하는 데 사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리라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기계에 의존하는 데 경계의 마음을 풀지 않는 것이다.



보다 생산적인 방향을 찾아서

그러나 AI의 발걸음은 경계의 수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시를 쓰는 것은/자신의 말을 덜어내는 것입니다/덜어내고 덜어내서//최후에 남는 말이/시입니다.” 라는 구절을 보자. 〈시를 쓰는 이유〉의 6-7연이다. 김종훈은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의 목적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침묵을 환기하고 자아를 덜어내는 데’ 있다면, 이 구절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았다. ‘데이터가 더 많이 제공되고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설정된다면’ AI가 쓰는 시를 변별하는 것은 어려워 질 것이다.

시인들은 아직 어떤 피해의식에 묶여있는 것 같다. 이를 벗어나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인공지능의 시는 ‘우연한 모험의 모습을 선보이면서 편안한 시의 상품가치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라는 평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AI는 최근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았으나 이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고, 도리어 생성본에 나타나는 표절 문제의 해결이 더 현안이다. 이제 운명적으로 AI와 함께 갈 시대에, 김종훈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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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밖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용기 있는 시에 도움을 주는 것 … 용기 있는 시인은 인공지능의 제안을 토대로 예상보다 빠르게, 예상보다 넓은 세계에서, 예상보다 깊은 감정을 가지고 시를 쓸 수 있을 것
 

독서 Guide

1. 여기서 제시한 방법으로 인공지능의 시 쓰기를 경험해 보자.

2. 인공지능 시의 한계와 인간과의 협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토론해 보자.

3. 생산적인 미래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가능할지 의견을 말해 보자.

책정보

9+i

저자구현우 외

출판사블루버튼

발행일2022.11.12

ISBN9791198044402

KDC811.7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고운기 시인 한양대 교수 이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