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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가 본 플랫폼 : 법학을 포함한 폭넓은 학제적 연구에의 초대

- 강재호 외, 《플랫폼 임팩트 2023》

작성일: 2023.07.13

히든북 요약

1. 플랫폼이 가져온 사회・문화 분야의 거의 모든 쟁점

2. 빅테크 기업이 초거대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

3. 새로 등장한 플랫폼에 대응한 노동법 정비의 필요성 강조

플랫폼에 대한 여러 관점을 다룬 책

한국사회학회의 주도로 사회학, 언론학, 문화학, 정치외교학 등 전공자들이 플랫폼에 관해 연구한 글이 북 챕터 형식으로 엮여 나왔다. 《플랫폼 임팩트 2023》이 그것이다. 각 장의 제목과 소제목만 읽어봐도 이 책이 궁극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여러 저자들이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성을 갖추고 있다. 10개의 장은 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독 집필인데, 이 책을 위해 갑자기 썼다기보다는 그간의 연구를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전체적으로 주제가 겹치지 않으면서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어, 플랫폼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 서평자가 그런 독자 중 하나이다.

플랫폼의 효율성에 기반하여 플랫폼을 찬양하거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글들이 아닌데 이는 저자들의 전공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대체로 기술 쪽 전공의 경우 플랫폼에 대한 낙관론이 많다. 플랫폼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 민주적 정당성, 기업/소비자 문제, 플랫폼 노동 문제, 개인성과 심리의 문제, 뉴스 플랫폼과 사회갈등, 예술교육, 대중음악 소비 패턴의 변화 등 플랫폼이 가져온 사회・문화 분야의 쟁점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망라하고 있다.



#1 키워드 뽑기

저자들은 정해진 원고 분량 내에서 자기의 생각을 펼치기 위해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학문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키워드 뽑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요약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함축적인 몇 단어의 선택으로 학계와 독자에게 사고의 지평을 심화시켜 준다. 김홍중의 글에서 이를 발견한다. 그는 플랫폼 자본주의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사회적 공장”, “비사회적 ‘소셜’”, “정신의 소실(消失)”이 그것이다. 이미 이 말들로 플랫폼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할 것이다. “플랫폼 노동의 비물질성”, “영(zero) 노동”의 개념을 사용한 강재호의 글에서도 이런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 법학적 논의의 변명

필자의 전공인 법학과 관련해서 논의한다. 법학이 사회과학의 하나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 관계 또는 위상을 정리할 생각은 없다. 다만 법학과 사회학 등 사회과학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학자로서 이런 사회과학 저술을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이 있다. ‘So what?’(그래서?) 이 지점에서 법학과 사회과학의 차이가 존재한다. 법학을 ‘당위의 학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법학은 법이라는 강제규범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규범이 적용되어야 할 맥락(context)을 배제하지 않는다. 간혹 법률가/법학자라면 법규범만을 연구하거나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큰 착각이다. 사회적 현실은 곧 법적 문제와 동전의 앞뒷면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자들이 제기한 인간과 사회 문제에 대해 합법/불법, 당/부당을 따지고 이에 법규범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맥락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해당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플랫폼에 관한 사회과학 연구자들뿐 아니라 법학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플랫폼 기업 중에 테크(기술) 기반으로 한 초거대 기업을 빅테크라고 한다.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현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순위로 대체로 5위 안에, 간혹 특별한 변수에 따라 변동이 생겨도 10위 안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오늘과 같은 초거대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물론 유니콘(unicorn) 기업답게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탓도 있지만, 첫째,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둘째, 이른바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라고 하는 이용자의 향유와 노동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인터넷상의 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첫째에 관한 법적 쟁점이 공정거래법이고, 둘째와 관련된 법적 쟁점이 노동법, 저작권법, 개인정보 보호법 등이다. 이 점에서 공정거래법을 다룬 하상응, 노동법상 각 노동을 다룬 강재호와 정인관, 저작권과 관련이 있는 한준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3 공정거래법 이슈

근대 학문은 통합보다는 분과학(分科學), 즉 과학(science)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 인공지능과 같이 여러 분야에 걸쳐 쟁점을 아우르고 있는 경우 통합적/종합적 접근(holistic approach)이 필요하다. 필자가 저작권법 학자로서 플랫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데, 플랫폼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법학적 논제가 공정거래법과 노동법이다.

먼저 하상응의 글쓰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동안 하상응만큼 비전공자에게 공정거래법이란 숲의 정경을 제대로 설명해 준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한 리나 칸(Lina Kahn)을 통한 미국 공정거래법(경쟁법)의 역사를 설명한 것은 단연 압도적이다. 그녀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에 쓴 논문, “Amazon’s Antitrust Paradox”(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대에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된 칸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때 이 논문은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의 필독 논문이란 말이 돌기도 했다. 칸의 위상, 그리고 그녀의 논문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일까?

하상응은 칸을 신브랜다이지언(Neo Brandeisian), 즉 20세기 초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지낸 브랜다이즈(Louise Brandeis)의 귀환으로 파악한다. 1911년 브랜다이즈 대법관은 석유 재벌 록펠러 가문이 운영했던 스탠다드 오일을 해체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공정거래법에서 시장 점유율, 시장 지배력은 경쟁 제한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런 반독점 규제 논리는 197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이한다. 법학자 보크(Robert Bork)는 논문 “The Antitrust Paradox”(반독점 역설)에서 기업의 집중, 즉 시장 점유율, 시장 지배력이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후생 및 경제적 효율성이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45면). 이는 이른바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이후 공정거래 사건에서 법경제학적(Law and Economics) 접근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46면).

GAFAM 기업은 시장 점유율과 시장 지배력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스탠다드 오일처럼 해체되지 않고 있다. 도리어 오늘날의 초거대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기업이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했고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했다고 보는 경제학적 접근이 법학에 깊게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고리를 끊는 시도를 한 것이 바로 칸과 그녀의 논문이라고 하상응은 진단한다(52면).

반독점 사건에서 소비자 후생이라는 기준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근시안적이라는 칸의 주장은 사실 사후적으로 입증되고도 남는다. 시가총액의 합계가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의 GDP를 능가하는 GAFAM 기업은 이미 정부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공룡이 되었고,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한 후 이들 기업이 소비자 가격을 올릴 뿐만 아니라, 이미 확보한 전 세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삶을 통제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법률가들의 시야를 근시안으로 만들어 버리는, 소비자 후생으로 포장한 경제학적 분석을 과감히 떨쳐낼 수 있어야 한다.* 이에서 필자는 오늘날 공정거래법 재판에서 사실상 경제 분석으로 판결을 쥐락펴락하는 경제학자들의 손에서 법학적 판단을 구해내는 시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역사적 분석이 이렇게 중요하다. 어떤 조류나 학설을 ‘시간 개념’을 빼고 평면적으로 나열하면 아무 쓸 데 없다. 아니 오도(誤導)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논의는 무익을 넘어 유해한 경우가 많다. 그 점에서 공정거래법의 핵심적 판단 요소, “시장 점유율”, “시장 지배력”, “소비자 후생” 등을 역사적 발전과 연결할 때, 비로소 오늘날 빅테크, 플랫폼 문제에 정확히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4 노동법 이슈

강재호, 정인관의 글 역시도 노동법학자의 논문 이상으로 노동법에 깊은 이해를 담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강재호는 영국의 긱(gig) 노동에 관한 판결, 정인관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ABC법과 그 추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요는 사업자(자영업자)로 볼 것인가, 노동자로 볼 것인가에 있다.

오늘날 노동법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공장이라는 고정사업장을 전제로 고용주와 피용자 간의 관계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노동자를 법이 보호하지 않으면, 즉 계약자유의 원칙에 내맡겨 두면 노동자는 더욱 열악한 대우와 노동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쉬운 예로 배달 노동자의 경우 플랫폼 소속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식점이나 소비자(주문자)에 고용된 것도 아니다.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 휴게시간, 산업재해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토바이를 탈 때 안전모를 쓰라는 교육을 하면, 재판에서 플랫폼은 사용자로 인정받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교육을 피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안전교육을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도록 노력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플랫폼을 사업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플랫폼은 이들에 대한 교육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역설인 셈이다. 그간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사용자성(使用者性)을 인정하는 기준을 정해놓고 있는데, 플랫폼은 이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이른바 ‘사용자 지우기’이다. 배달 노동자 등 플랫폼 기반의 노동자는 어떻게든 사용자/노동자 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이런 숨바꼭질은 사실 19세기 만들어진 노동법 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탈피하여 플랫폼 노동에 맞는 법률을 정비하고 판례가 형성되어야 한다. 어른이 됐는데 아이 때 입던 옷을 입을 수야 없지 않은가? 몸에 옷을 맞춰야 한다. 법은 몸이 아니라 옷이다. 이 점에서 강재호는 영국 법원 판결, 정인관은 미국 법원 판례를 검토하고 그 타협점을 제시하고 있어 의미가 작지 않다. 자칫 외국 사례를 소개하다 보면 국내 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있는데 플랫폼 노동을 웹 기반과 지역 기반으로 나누고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 기반이라는 특수성이 있다고 본 정인관의 지적은 매우 예리하다(147~149면).



#5 나가며

앞에서 법학과 사회과학의 관계를 언급했는데, 현실 분석과 전망에 충실한 사회과학 글쓰기의 한계에서 오는 공허함은 ‘그렇다면 무엇을/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법학적 논의로 채울 수 있다. 반면 현상과 전망에 대한 충실한 이해 없는 법학적 논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그로 인한 폐해는 당대뿐 아니라 미래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플랫폼은 오늘날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사회과학을 넘어 법학, 경제학, 인문학 등 학제적 연구의 장이 넓게 열렸으면 한다.

참고

필자는 법학적 논의에 경제학적 효율주의가 과도히 침습하여, 효율이 곧 정의라는 사고가 만연한 것을 비판하고 법학의 학문적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함을 지적한 논문을 펴낸 바 있다. 남형두, 법학의 학문 정체성에 관한 시론(試論)―경제학의 침습과 법학의 고립, “서울대학교 法學” 제62권 제3호, 2021. 9.

독서 Guide

1. 일부 빅테크 기업이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봅시다.

2. 플랫폼 노동자는 사업자(자영업자)일까 노동자일까?

3. 일부 기업의 독과점과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책정보

플랫폼 임팩트 2023

저자강재호 외

출판사21세기북스

발행일2022.11.16

ISBN9788950942663

KDC331.54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