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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어리석어지기 쉬운가

- 토드 로즈, 《집단 착각》

작성일: 2023.07.06

PICK1 요약

1.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부풀리는 허상

2. 어설픈 확신이 빚어낸 어이없는 오류들

3. 정직과 용기를 북돋는 사회적 유대의 가능성

버려지는 신장

신장병에 걸려 투석을 받는 일은 매우 번거로울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식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수요가 워낙 많고 기증자는 너무 적어서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기증된 신장의 5분의 1이 그냥 버려진다고 한다. 웬일일까?

신장 하나가 기증되면 등록된 차례대로 기회가 제공되는데, 만일 앞 순위의 환자가 이식을 거부하면 그다음 순번으로 연락이 가게 되어 있다. 연락받은 대기자는 앞의 환자가 거부한 것을 보니 그 신장에 뭔가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또 거부한다. 다음 대기자들도 같은 이유로 계속 거부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신장은 변질되고 만다. 그런데 애초에 신장을 거부한 이유는 운송이 어렵거나 체질이 맞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엉뚱한 지레짐작 탓에 소중한 장기가 대량으로 폐기 처분되는 것이다.



순응 편향에 빠지는 경로

인간은 타인의 행동에 민감하다. 오랫동안 군집 생활을 하면서 진화해 온 결과 체득된 마음의 습관이다. 자신의 판단보다 다수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늘 유리하지는 않다. 똑똑한 개인이 모여 있는 집단이 바보 같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뭔가를 똑같이 하고 있으면 잘못될 리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아까운 신장이 대량으로 버려지는 것이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미국에서 벌어진 화장지 사재기 해프닝은 전형적인 사례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토드 로즈는 《집단 착각》에서 그런 현상을 ‘사회적 거짓말’이라고 명명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넘겨짚으면서 다 함께 속아 넘어가는 상황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다수의 견해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느끼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대세를 택하면서 ‘집단 무지성’에 빠지기 일쑤다. 자신이 소수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걱정하면서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의견에 힘을 보탠다. 자신의 진짜 생각은 무시하고 집단의 사고방식이라는 허구를 진심으로 믿으려 한다. 그런 집단적 환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모두가 어떤 것을 현실이라고 정의하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조직이나 집단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한다. 내면이 허약한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집단을 숭배하면서 파멸로 치닫거나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을 자행하는 장면들이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극단주의가 번식하는 사이버 공간

집단 착각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더욱 쉽게 퍼져나간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전파하기가 어려웠다. 사람 하나하나 일일이 접하면서 설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 계정 하나만 있으면 엄청난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일부 소수라도 매우 거친 언어를 구사하면서 폭력성을 과시하면 대다수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런 방식으로 특정한 견해를 묵살시킬 수도 있고, 누군가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소셜 로봇을 활용하기도 한다. 전체 계정 가운데 5~10% 정도의 봇만 확보해 놓으면 자기 마음대로 다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쉽게 극단적 관점으로 쏠릴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매직미러 효과다. 누군가가 어떤 입장이나 주장을 드러내고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구도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면서 침묵의 나선 형성한다. 그런 굴종은 인종, 경제적 상황, 정치적 성향, 종교, 학력 등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집단에서 일어난다.



긍정적 일탈을 위하여

집단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한 집단에만 배타적으로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와 소속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를 건강하게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독일과 일본의 군국주의를 분석해 보면, 다른 목소리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던 공통점이 드러난다.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발언이 표출되고 교차되지 않으면 집단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그런 패착을 두지 않으려면 생각의 부실함에 늘 유념해야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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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현실을 바라보고자 할 때는 우리의 뇌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읽어내는 일에 매우 서툴고, 기술의 발전과 변화로 인해 우리는 더욱 간접 정보에 많이 노출되었으며, 그래서 서로를 오해하는 일이 너무도 쉬워졌다. (…) 그래도 희소식이 남아 있다. 집단 착각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쉽게 깨질 수도 있다. 집단 착각은 우리가 그 존재를 허용하고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집단 착각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 269-270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집단 착각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거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벌거숭이 임금 이야기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고 말했던 어린아이의 순수함도 요구된다. 모두가 그렇다고 믿고 따라갈 때 누군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에게 정직해질 수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통념을 의심하는 긍정적 일탈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씨앗을 찾을 수 있다.

독서 Guide

1. 디지털 공간에서 집단의 허상이 증폭된 경험이나 사례를 찾아보자.

2. 저자의 주장대로 예술을 통해 집단적인 맹신에서 자유로워진 경험이 있는가?

3. 노르웨이의 감옥이 미국이나 한국에서 실현되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책정보

집단 착각

저자토드 로즈

출판사21세기북스

발행일2023.05.03

ISBN9788950910945

KDC331.138

서평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