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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비유한 삶의 심리적 지표

-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작성일: 2023.07.06

PICK1 요약

1. 바다를 제재로 삶의 심리적 지표를 만드는 철학자

2. 일에 시달리지 않고 혼자서 여유롭게 사는 삶을 꿈꾸자

3. 우리 현실과 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한 힐링용 철학서라는 혐의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선장

옥중의 만델라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윌리엄 헨리(1849-1903)가 쓴 〈인빅터스INVICTUS〉를 무척 좋아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꿈꾸는 기적’이다. 헨리는 어려서 결핵을 앓아 나중에 한쪽 발을 절단해야 했다. 스물네 살 한창때였다. 간난신고 끝에 일어서서 쓴 이 시에는 “나는 내 운명의 주인/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마지막 구절이 유명하다. 그것은 만델라가 좌우명으로 삼은 구절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부와 같은 존재인 만델라를 일으켜 세운 시의 저 구절을 뜻밖의 책에서 또 만난다. 로랑스 드빌레르가 지은 《모든 삶은 흐른다》이다.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선장’이 되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서가 있을까?” 바다를 제재로 삶의 심리적 지표를 만드는 철학자가 이렇게 질문하는데,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그 대답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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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늘 움직이는 바다를 통해 우리는 매일의 인생 여행을 떠올려본다. 바다는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 그런 바다를 통해 우리는 굴곡 있는 인생이 무조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는 걸 다시금 떠올린다. 바다에게 거친 파도와 잔잔한 물결이 일상이고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 35면

바다를 우리 삶의 현장으로 바꾸면 보이는 것

무엇보다 먼저, 바다를 구성하는 하나, 무인도를 그리는 드빌레르의 시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든다. 1719년에 나온 이 소설을 읽으며 무인도 생활에 대해 저마다 로망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무인도 생활은 낭만적이지 않다고 드빌레르는 단언한다. ‘섬에 홀로 남아 여유롭게 몽상하며 아름다운 별을 보다 잠들고 열대과일을 먹으며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크루소의 섬은 리조트가 아니다.

섬에 표착한 크루소에게 현실은 바다도 육지도 아닌 새로운 세계였다. 필요한 것을 쉬지 않고 직접 만들어야 했다. 크루소는, 드빌레르의 말마따나, ‘잃어버린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했는데, 그것은 언어에서 시작하여 나라, 사회, 문화의 모든 것이었다. 깨어있는 동안 노동해야 했고, 하루하루 비어 있는 것을 채워야 했다. 이웃과 어울려 살던 마을에서의 삶보다 더했다. 우화로서 《로빈슨 크루소》는 근대 산업사회가 열리는, 시스템적으로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유럽의 어느 마을을 무인도로 옮겨 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크루소의 이야기를 읽으며 ‘되찾은 에덴동산 같은 무인도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꿈꾼다. 그래서 “바다의 시간은 시간표와 계획표에서처럼 빡빡하게 쪼개지는 시간은 아니다. 그저 계속해서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다. 잠시 그대로 더 있어 보자. 여유 있는 물결처럼 숨을 고르자.”(52면)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드빌레르는 무인도에 있고 싶은 욕망, 일에 시달리지 않고 혼자서 여유롭게 사는 삶을 꿈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험으로 이어지는 삶의 현장

바다는 뭐라 해도 모험이다. 지구가 반쪽 아닌 온전한 구형(球形)을 찾은 것, 사람의 등짝이나 수레로는 상상 못 할 물량이 교류하게 된 것은 바닷길의 발견이었다. 발견은 모험 없이는 이루지 못할 일이다. 모험은 바다에서 가장 극적이다. 드빌레르는 이 발견을 두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믿음과 상상력을 말한다.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온 두 번째 매력이다.

드빌레르는 1434년의 포르투갈의 항해사 질 이아네스를 예로 든다. 포르투갈을 떠나 바다로 나가 아프리카의 저 깊은 속을 찾아가는 길은 보자도르곶에서 막혀 있었다. 이곳을 ‘공포의 곶’이라 불렀다. 당시 사람들은 그 너머가 낭떠러지요 괴물이 득시글대는 곳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아네스는 거기를 넘어섰다. 인도로 가는 첫 발자국이자 위대한 바다의 모험이었다. 드빌레르는 그것이 가능한 까닭이 용기와 상상력이라 말한다.

상상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우선 이아네스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멀리 나가는 것’(68면)이라 생각했고, 해양 나침반의 방향, 지나온 위치와 거리를 철저히 계산했는데,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직감’을 가장 믿었다. 이 직감이 다름 아닌 자신의 느낌과 상상력이었다. 과학적인 오늘날로서야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항해한 거리는 얼마 후 바스쿠 다 가마가 완성한 인도 항로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이아네스가 직면한 현재 문제를 돌파한 처음 사람이었다는 최상의 가치는 아무도 따르지 못한다. 우리도 이런 가치에 한번 복무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조심할 것은 다소 정신의 말초적인 느낌

드빌레르는 이미 10여 년 전쯤 《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 살린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 독자를 만난 적 있는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이다. 그때는 젊은 철학자로 소개되었는데, 정작 우리 출판 시장에서 이 책은 ‘성공/처세’로 분류되어, 첫인상은 다소 저평가된 느낌이 없지 않다. 이웃 일본에서는 데카르트 전문가로서 전공서가 번역된 것과는 비교된다.

지금 프랑스 학계에서의 활동 분야와는 달리 여기 소개하는 《모든 삶은 흐른다》 또한 저자의 앞선 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 자신이 경계한, 다소 정신의 말초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프랑스식 여유를 우리 몸에 걸치게 한 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한 채, 힐링용 철학서의 범람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까. 그러나 출판사에서 내세운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이라는 책의 소개 문구가 아주 과장되지만은 않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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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쫓아다니지만 말고 아름다움을 통해 예상치 못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감각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세상을 끝없는 말초적인 자극과 흥분으로 채우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는 분주함으로 채우지 말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 61면

독서 Guide

1. 내 자신, 나의 인생을 조종하는 선장이라는 구체적인 경험을 어디서 하는가?

2. 삶의 여유와 새로운 모험의 상관관계를 따져 보자.

3. 힐링용 철학서의 범람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관한 의견을 나눠보자.

책정보

모든 삶은 흐른다

저자로랑스 드빌레르

출판사피카(FIKA)

발행일2023.04.03

ISBN9791190299770

KDC199.1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고운기 시인 한양대 교수 이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