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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란 거울로 본 한국 · 2

- 요나하 준, 《헤이세이사》

작성일: 2023.06.08

히든북 요약

1. 일본 만화, 문예평론 등을 통한 통사적 구조 설명

2. 평화헌법 제9조 전쟁포기에 관한 각계각층의 논의

3.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책

사상 전개의 활달함

저자는 일본 만화(망가)의 구석에 있는 글까지 인용해 자신의 주장, 크게 보면 헤이세이사의 통사적 구조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쇼와 시대의 막을 내리고 등장한 젊은 사상가들의 가벼운 행보를 묘사한 ‘두 아버지의 붕어(崩御)’(22-29면)와 ‘운동하기 시작하는 아이들’(59-65면), 고용 유연화를 3인조 밴드 해체와 유닛 활동으로 연결해 쓴 ‘고무로 데쓰야와 닛케이렌 리포트’(147-149면), 근대 이전 중세의 규율사회와 근대 이후 통제사회를 들뢰즈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일본의 가문 사회적 소집단의 해방 가능성을 내다본 ‘들뢰즈의 정보 디스토피아’(149-152면) 등이 그렇다. 저자의 키워드 뽑기와 제목 달기는 기발하고 멋진 표현이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하고, 독자에게 깊은 통찰력과 긴 여운을 남긴다.

1956년 약관 23살에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했던 이시하라 신타로가 한때 정계를 은퇴했다가 1999년 도쿄도 지사로 화려하게 복귀한 사건과 그를 고객으로 문학평론을 했던 문예평론가 에토 준이 같은 해 자결한 사건을 두고, “‘환자’가 되살아 난 반면, 언어를 사용하는 ‘분석의(醫)’ 쪽이 자살을 향해 간 것”(214면)이라 말하는가 하면, 대표적 군국주의자로서 자신이 쓴 소설 〈우국(憂國)〉 속의 할복 장면을 재현하기라도 하듯 자결한 미시마 유키오의 망령이 사후 30년이 지나 되살아나는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때 미시마와 절친 관계였던 에토 준과의 관계를 “1999년 7월의 에토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3개월 후, 분석의를 잃은 ‘귀환병의 신체’의 반란은 더는 언어로 멈출 수 없는 영역까지 고조된 것”(224-226면)이라 말한다.

에토 준을 중심으로 이시하라, 미시마 등을 함께 문학적으로 그려냈다. 정치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평론할 수 있다는 것은 문학과 정치의 인적 교류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역사학을 뛰어넘는 문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 세대, 이른바 단카이 세대로 대표되는 전공투(全共鬪)와 그 대척점의 ‘근대 고릴라’(42면)로 묘사한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책 전편에 걸쳐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일종의 콤플렉스이고 트라우마일 수 있는데, 좌우 중 주로 좌파 지식인들의 전향사(105-107면)를 추적하고, 전공투의 몰락을 또 다른 시각에서 가볍게 터치하기도 한다. “전공투 전향자들이 추구한 학문이나 문학의 ‘대중화’를 1968년 혁명사상의 잔불을 고도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태운 것”(111면)이라고 한다든지, 전공투 운동 출신이 노동자에게 싼 음식을 제공해 ‘좌익사상’을 실천하려 창업한 외식업체인 스키야(すき家)에서 가혹한 노동환경 탓에 파업이 발생했다는 것 등을 가볍게 꼬집기도 한다(112면).

저자의 지적 활달함과 경쾌한 행보가 책 읽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주권국가의 상대화’(188면)를 주장하고 ‘비(非) 국가 주체의 대두’(200면)를 예상한 일본의 대표적 정치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각을 그의 수제자 사카모트 요시카즈의 《상대화의 시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연결 지어 보는 것은 저자의 의도였는데, 더 나아가 서평자는 또 다른 부분, 즉 들뢰즈의 통제사회(151면), 또 다른 제국으로서 플랫폼을 시사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공저 《제국》(309-310면), 냉전 종전 이후 서구 국제정치학계에서 유행한 신중세주의(187-189면)에서 이들의 시놉시스를 갖게 되었다면, 오독(誤讀)일까 아니면 저자가 출제한 ‘숨은 그림 찾기’에 대한 성공일까?



일본의 문제는 곧 한국의 문제

책을 읽는 내내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정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정치인의 스캔들과 부패(91-94면)가 그렇다. 서평자의 일본정치에 대한 무지 탓이겠지만, 그간 일본정치는 거대한 자민당과 군소 야당으로 사실상 자민당의 일당 독주 체제로만 알았다. 그런데 헤이세이 기간 내내 자민당 일당 독주가 무너지고 야당과의 합종연횡이 수시로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지향점은 좌파의 몰락과 우경화 편향, 나아가 극우의 등장으로 요약 정리된다는 점도 기시감이 있다.

대학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인다. 저자 또한 대학에 재직한 경험이 있는 재야학자로서 대학의 편제, 교양학부와 대학원 중심 대학 등에 관한 일본 대학의 고민과 본인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데(59-65면, 228면 등), 본래 우리 대학이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의 학제에 크게 영향 받았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 정치와 사회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평화헌법 제9조(전쟁포기) 관련 논의이다. 이 책을 대하기 전에는 평화헌법 논란이 헌법학과 일본 정치권의 논의로만 이해했는데, 수많은 사상가, 문학평론가, 대중문화 연구자 등이 이 논의에 참전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평화헌법 논의와 천황제, 그중에서도 후자는 일본 사회의 본질적 문제이자 한계이지만 일종의 성역(聖域)이란 점에서 전자, 즉 평화헌법과 일본 재무장 논의는 정치권과 법학자를 넘어 일본 사상과 사회 전반에 걸쳐 관통하는 문제로서, 한국과 일본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이다.

아울러 저자는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한 고노 담화(122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 내 시각(132-136면)과 협상(534면), 한일월드컵과 혐한 유행(302면), 독도 문제(486면),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갖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의미(430면)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평범한 일본인의 시각을 기술하고 있는데, 한국 독자로서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헤이세이와 이 책의 진정한 검증은 레이와 이후에

저자는 통사 저술에의 열망으로 이미 출간한 두 권의 책, 즉, 막부 말기에서 다이쇼 시대를 다룬 《번역의 정치학》(이와나미 서점)과 그 이후 1970년대까지의 《제국의 잔영》(NTT 출판)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책을 냈다고 술회하고 있다(644면). 역사학자로서 야심 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자 본인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2015년 이후 질병으로 저술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인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전반부에 보이는 긴장감과 활달함이 떨어지고 정치사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어 서평자로서는 수많은 정치인의 실명을 따라가기에 벅찼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건 저자는 천황의 교체로 레이와(令和) 시대와 구분 짓는 헤이세이사를 집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글의 종점(2019년) 이후인 2023년 현재까지도, 헤이세이 후반부의 현상 중 정치에 국한해 본다면, 우경화 현상은 지속을 넘어 더욱 가속화·극단화되고 있다. 저자로서는 숙제 해치우듯 헤이세이사를 정리했지만, 이런 시대구분이 양적 구분을 넘어 질적 전환의 의미가 있는지는 레이와 시대가 끝날 무렵 검증대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것이 저자가 말한 ‘어둠 속으로 멀리 던진 공이 되돌아오는 순간’일 것이다.

독서 Guide

1. 일본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논의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이야기해 봅시다.

2. 반일과 혐한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정당한가?

책정보

헤이세이사

저자요나하 준

출판사마르코폴로

발행일2022.12.28

ISBN9791192667102

KDC913.08

저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