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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의 다각적 구상

-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작성일: 2023.06.01

PICK1 요약

1. 문명 전환을 위한 경제학적 패러다임의 모색

2. 화석자본주의를 벗어나는 로드맵과 내러티브

3. 대안적 생활양식을 구현하는 민주주의 체제

경제 제국주의의 한계

올해 봄에 동남아와 유럽과 캐나다 등 지구촌의 북반구 곳곳에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대형 산불과 극심한 가뭄도 수반했는데, 엘니뇨 등 복합적인 해양 대기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상학자들은 이번 여름에 해수면 온도가 역사상 최고로 올라가는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여 전 세계에 갖가지 기상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구 가열, 기후 붕괴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 각 영역과 여러 학문에서 지금까지 당연시되어 온 전제들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적 차원에서도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경제학은 그 핵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한 성장의 신화를 맹신하면서 자원을 고갈시키고 탄소를 대량 방출해 온 산업 시스템과 경제 원리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그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쓰인 생태경제학의 입문서다. 생태 경제학의 발상과 기본 원리가 무엇이고 기존 경제의 관점이나 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경제 성장과 분배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기후 위기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녹색성장에서 생태사회주의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르면서 중요한 학자들과 이론을 소개한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은 이상적이고 완전한 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을 상정한다. 하지만 그런 경제 제국주의 패러다임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가격 메커니즘이 환경 파괴의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시장 행위자들을 유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에너지나 식량이나 원료 등을 노동이나 자본처럼 생산에 무한정 투입될 수 있는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다. 화폐의 순환에만 시선에 꽂혀 물리적 처리량이 위험 수위에 도달한 증거들을 외면한 결과, 비선형적 복잡계의 양상을 띠는 불확실성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최적의 경제 규모를 찾아서

20세기 중반 이후 경제 규모, 인구, 도시화, 에너지와 물질 처리량 등 모든 차원에서 엄청난 가속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눈부신 기술 혁신이 이뤄졌지만 에너지와 물질 사용은 증가하였고 (자율주행차의 경우 에너지 사용이 20% 더 많다), 자동화 기기의 도입으로 노동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소비의 양이나 자원의 투입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비어 있는 세상’은 끝났고 인간의 경제 규모가 너무 커진 ‘꽉 찬 세상’이 되었다.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 자연을 상수로 놓는 관점을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인간의 경제는 지구 생태계가 100퍼센트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임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 급속히 팽창한 금융 부문과 물리적 제약에 의해 한계 지워진 실물 경제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구 생태계가 스스로 재생시킬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경제 규모를 유지하도록 거시 경제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성장의존주의를 비판하는 레이워스의 제안은 그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자기 완결적인 시장에서 사회와 자연에 묻어든 경제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하고, ‘합리적 경제인에서 사회 적응형 인간으로’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며, ‘기계적 균형에서 동학적 복잡성으로 시스템으로’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시경제에서 한계 효용체감과 한계 비용 체증에 따라 최적값을 구하듯이, 거시 경제에서도 성장을 멈춰야 할 최적의 규모를 정할 수 있을까? 질적인 발전은 허용하지만, 총량적으로 양적 성장은 억제할 수 있을까? 성장은 없어도 발전은 있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최적의 경제 규모를 넘어가는 성장은 비경제적이라는 관점을 수립해야 하고, 과세 대상을 노동과 소득으로부터 에너지와 자원 처리량 쪽으로 옮기는 생태적 조세 개혁을 꾀해야 한다. 아울러 주4일제 근무를 기후 위기와 젠더 관점까지 포함하여 넓게 바라본다면, 생산성 향상이 실업이 아닌 여가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1.5°C 라이프 스타일로 파국을 막아야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고 프레드릭 제임스는 말했다. 매년 7월이면 지구의 생태 허용량이 소진되고, 지금의 경제를 지속시키려면 지구 1.7개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생태 발자국이 4월이면 국토의 용량을 초과하고,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이 한국인처럼 살려면 지구가 3개나 필요하다고 한다. 기온 상승을 1.5°C 선에서 막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 소비 표준과 최대 소비 표준을 정하고 그 사이에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한 소비 영역 설정해야 한다. 이른바 ‘1.5°C 라이프 스타일’로서, 그를 위해서 해로운 것을 선택할 필요가 없게 하고, 유익한 것들을 더 많이 선택하도록 만들어 주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저자는 대안적 사회 체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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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태경제학자들과 특히 탈성장론자들은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생태 경제, 성장 없는경제와 어울리는 새로운 삶의 가치관과 사회적 규범을 설계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수동적으로 지구 한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다른 삶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 과도한 소비에 집착하지 말고 기본적 필요를 채우면 충분하다는 관점으로 개인 삶의 태도를 바꾸자는 것이 사적 충분성의 원칙일 것이다. 동시에 개인들이 물질적 재화를 각각 배타적으로 과도하게 소유하지 말고 가능한 한 공유자원을 함께 이용해서 개인 필요의 부족을 보완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공적 풍요로움일 것이다.
 

- 363면

기후 위기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지만, 과제는 지극히 단순 명료하다. ‘전시 수준’의 사회적 동원이 필요한 상황인데, 경제를 최종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요체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하기에, 결국은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된다. 민주적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이니셔티브를 최대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처에 성과를 내는 국가들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이 어떤 행복을 원하는지를 공적 세계에서 토론할 수 있는 기반이다. 그런 대화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경제성장주의를 성찰하면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 Guide

1. 탄소세나 ESG가 기후 위기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 기후위기가 심각한데도 행동하지 않는 이유를 툰베리는 ‘문제 자체보다 해법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3.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기후위기 해결과 순조롭게 맞물리려면 어떤 조치가 병행되어야 하는가?

책정보

기후를 위한 경제학

저자김병권

출판사착한책가게

발행일2023.02.21

ISBN9791190400442

KDC320.189

서평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