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1 요약
1. 힐링 소설의 소재 확대 : 백화점에서 편의점으로 그리고 세탁소까지
2. 3년째 비제도권 문학의 강세를 이어가는 작품
3. MZ 세대의 ‘기분 좋은 상상’과 ‘기발한 구상’에 충실한 소설
비제도권 문학의 대두
이 글은 여기서 소개한 비슷한 성격의 소설 몇 편에 이어진다. 김지혜의 《책들의 부엌》,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이 그것이다. 비슷한 성격이란 이른바 힐링 소설을 가리킨다. 힐링의 장소는 소형 서점을 출발해 백화점에서
편의점으로 이어지더니, 드디어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일련의 유행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한 연구에서 필자는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중심으로, 같은 기간과 겹치는 한국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나타난
‘판매인기도서’와 비교 조사하여, 최근 MZ 세대의 독서 행태를 성향적(性向的)으로 분석해 보았다. 결론 가운데 하나는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제도권 문학의 수용이다. 연간판매 1위라는 전면적으로 괄목상대할 결과를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1년의 경우,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다. 2022년에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으로 이어진다. 그 또한 본격적인
제도권적 문인은 아니다.
이미 소개한 대로 두 편의 소설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MZ 세대에게 소구되는 까닭은 ‘기분 좋은 상상’과 ‘기발한 구상’이었다.
나아가 이런 소설을 찾아 읽는 젊은 독자로서는, 어차피 몇 권 읽지 않는 독서력에 정체불명의 책을 읽어 시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계산이 깔린다. 검증된 재미있는 책으로 쏠리는 것이다. 독서의 생활화는 습관의 소산이다. 방안은 독서 실태에 따른 대응에서 나온다.
여기서 출판의 방향도 조정될 것이다.
이어지는 힐링 소설의 소재
두 편에 이어 2023년에 들어서는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나타났다. ‘호두나무로 만든 튼튼한 목재 집에 사계절
푸른 정원이 있는 2층짜리 건물’이 환상처럼 나타난다. 세탁소의 주인은 지은, 백만 번쯤 환생하며 거듭 살고 있는 환상적인 인물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와 마음을 회복해서 돌아가는데, “마음의 얼룩을 세탁해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마음 나이테를 만들어 돌아가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세탁소 운영 지침이다.
세탁소를 찾는 손님이 차례로 등장한다.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깊게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사생아의 신분인 재하가 그 선두에 선다.
젊은 그이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살았을지 짐작할 만하니, “만약에 괴로웠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마음이 너무 아파서 계속 그 생각만 나잖아. 근데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 분명 나는 웃고 있는데 마음은 욱신거려.
일을 하는데 마음이 욱신거려.”라는 고백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욱신거리게 하는 마음을 지워 행복해지는 상상, 기발한 구상은 MZ 세대를 단숨에 휘어잡을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지우기도 하지만 ‘떠올릴 때 덜 아프게 주름만 조금 다려’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세탁과 다림질의 절묘한 분화가 소설의 재미를
한층 높여준다.
인생은 고락의 총화인 것을
그런데 이 소설의 매력은 단도직입적인 상처 치유에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세탁할 옷을 입고 지울 기억을 떠올린 다음,
그 옷을 세탁하거나 다리면 되는데, 이 과정에 이런 뜻밖의 복병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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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파서 얼룩진 마음이나, 조금 구겨져서 다림질이 필요한 마음이 있으면 입어봐. 대신 마음을 지우면 그 시절의 기억도
지워져. 그러니까 지워져도 될 기억인지 잘 선택해.
- 53면
아뿔싸, 지운다고 깨끗해지기는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과 그렇지 않은 기억이 그렇게 두부 자르듯 명확하지 않다. 우리의 삶이란
복잡하게 엮인 고락(苦樂)의 총화이다. 나아가 “잘 판단해. 원래 내가 가지고 있을 땐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니까.”(57면)라는 충고
앞에서 더욱 주저하게 된다. 죽을 만큼 아팠던 일도 지나고 나서 알고 보니 오산이었을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세탁기를 돌리려다 문득 “하나만 지워. 다 지우면 인생에 뭐가 남겠어… 상처도 인생인데.”(65면)라든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얄궂게 맞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나 보니 지나왔어요.”(166면) 같은 고백은 상처의 아픔을 즉자(卽自)
즉물(卽物)로 보는 단계를 넘어서 있다.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이 인생 그 자체라는 씁쓸한 깨달음이다.
독서력 제고를 적극 모색할 때
최근 인기 있는 일련의 힐링 소설을 살펴보면서 과연 이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곰곰 따져보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일본 소설의
영향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그 선두에 설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과 ‘기발한 구상’의 원조이다.
최근 마치다 소노코의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에 오면 그 정점이다.
일본 소설의 영향을 크게 나쁘게 볼 것은 없다. 가독성 높아, 책에서 자꾸 멀어지는 젊은 독자까지도 끌어들이는 모습은
오히려 좋아 보인다.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 ‘아침 독서’가 한풀 꺾인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일본에서 유행한
방식의 차용이고, 성의 있게 진행하는 학교에 따라 성과도 좋았었다. 이를 발전시킨 것이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이다.
이번 조사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는 63.8%인데 이는 2019년에 대비하여 4.5%P 증가한 것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교육 과정 제도화의 일환이다. 독서의 생활화는 습관의 소산이다. 그런 마련해선 습관을 기르기에 학창
시절이야말로 여러모로 가장 적절한 기회이니,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은 활성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독서력의 증대 이후에
다양한 행태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 Guide
1. 나의 기준에서 ‘기분 좋은 상상’과 ‘기발한 구상’은 어떤 것인가?
2. 비제도권 문학의 대두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3. 나의 일상을 바탕으로 내가 써보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
책정보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저자윤정은
출판사북로망스
발행일2023.03.06
ISBN9791191891287
KDC813.7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