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북 요약
1. 1989년부터 2019년까지 헤이세이(平成) 30년의 일본 현대사를 분석한 역사서
2. 역사는 어둠을 향해 공을 던지는 행위 : ‘전체사 조망’에의 야망으로 동시대사(同時代史)를 그려내겠다는 도전
3. 일본 특유 잡지문화를 통한 변화의 추적
역사는 어둠을 향해 공을 던지는 행위
먼저 나의 개인적 고백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안식년으로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에 머물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특히 그 근현대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이곳 도쿄(東京)에 체재하면서 절감하게 되었다. COVID-19 감염병 사태가 사실상
해제되면서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찾고 있는데, 그 무리에 끼어 동경에 온 지 석 달째로 접어든다. 연구와 강연 외에 틈나는 대로 일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저자는 1979년생으로 이 책을 낼 때인 2021년에 고작 42세에 불과했다. ‘고작’이란 표현은 이 책이 다루는 범위, 즉 일본의 사상,
정치(주변국인 한국, 중국 포함), 경제, 문화(문학, 영화, 만화, 음악) 등의 폭과 깊이를 생각할 때 맨 처음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단어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와 비교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오랜 숙명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의 여러 상황이 한국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잘라낸 헤이세이(平成, 아키히토 천왕의 연호) 기간(1989년~2019년)은 나의 20대에서 50대에 해당하여 일기(日記) 속에
현존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직 역사로 기록되기에 너무나 가까운 현재의 사정거리에 있어 침전(沈澱)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역사(학)를 ‘어둠을 향해 공을 던지는 행위’(636면)로 이해하면서, “요즘 대학에는
공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 ‘역사학자’로 자처한다.”(643-644면)고 비판한다. 많은 경우 공은 어둠에 묻힐 뿐 되돌아오지 않지만 극히
드물게 던진 공이 살짝 더러워진 채 돌아오는데, 그것이야말로 과거에 일어난 일의 목소리를 서로 들었다는 증명이고 훈장(636면)이란다.
그렇게 저자는 이제 막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헤이세이 기간을 향해 힘껏 공을 던지고 있다.(636-637면). 독자의 반응은 저자가
말한 공에 묻은 ‘때’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이 분절에서 오는 토막 난 현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가 재단하는 헤이세이사의 진정한 평가는 접어두고자 한다.
나는 학문 하는 사람으로서 역사적 방법론을 즐겨하는 법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저자와 이 책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기로 했다. 이런 관찰법이
새로운 서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일본이 지닌 거대한 지식 계보학을 바탕 삼아
이 책이 얼마나 방대한 지식을 다루고 있는지는 책 말미에 실린 색인에서 확인한다. 인명(人名)만 다루고 있는데도 무려 16페이지에
어림잡아 천여 명 정도가 된다. 아무리 700면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라고 해도, 거론되는 인물이 이렇게 많다면 수박 겉핥기처럼 외화내빈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칸트, 헤겔, 스피노자, 프로이트, 막스, 베버, 베르그송, 니체, 그람시, 하이데거, 들뢰즈, 푸코, 데리다, 라캉 등 여러 서양
철학자는 서론 정도다. 본론에 들어가면 나쓰메 소세키, 가라타니 고진, 에토 준, 마루야마 마사오, 미야다이 신지, 우에노 지즈코,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 등 일본의 철학, 정치, 문학 등의 사상가, 다나카 가쿠에이, 나카소네 야스히로, 간 나오토, 이시하라 신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의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야쟈키 하야오, 오쓰카 에이지 등 대중문화예술인 및 평론가가 망라된다.
그밖에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한국 정치인, 트럼프, 시진핑 등 국제 정치인 등 다루는 범위가 실로 방대하다.
내가 알만한 법학 분야나 한국 관련 저술 부분의 정확성과 치밀한 문제의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저자가 기술한 다른 분야 곧 사상,
정치, 경제, 문화 등도 그럴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한다. 이미 저자가 여러 권의 통사(通史) 저술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대한
지식 계보학이 가능한 것은 그의 천재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종이배도 저 혼자만의 힘으로 높이 뜨지 못한다. 물의 수위(水位)가 배를
띄우는 법이다. 그렇듯 일본의 지식사회, 사상계라는 욕조 안의 수위가 어지간히 높지 않고야 그렇게 부상(浮上)할 수 없을 것이다.
통섭(通涉)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매체로서 잡지
저자는 그 많은 지식인의 생각과 담론을 어떻게 다 접하고 또 그 변화를 추적해 왔을까? 이는 일본 특유의 기록문화와 잡지(雜誌)
문화에 기인한 것 같다. 일본은 잡지가 매우 성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정치, 경제, 법률, 문화 등의 학계와 실무자가 소통하지 못하고
유리(遊離)해 있는 데 반해, 일본의 경우 자리바꿈(in and out)뿐 아니라 학계의 연구 결과가 실무에 끊임없이 제공되고 환류(還流)되는
것을 본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날까? 그것은 만남의 장(場)의 존재하는지 그 여부에 달렸다고 본다. 일본에서 ‘자리바꿈’을 흔한 말로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하거나, ‘학계와 실무계의 생각 소통’을 관변 학문이라고 폄훼할 수 없어 보였다. 여기에 거론되는 학자 또는
사상가가 그 분야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도리어 일본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97-102면) 예를 들어 가라타니 고진,
이시하라 신타로,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그렇다.
저자는 역사학자라는 정체성 외에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만 도저히 자리매김할 수 없을 정도로 다방면의 지식을 추적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다양한 학문과 지식이 만나는 장으로서 잡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저자는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잡지를
인용하고 있다.
골방에서 나와 함께 논할 자리가 있어야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한국에서도 한때 잡지가 지식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한 때가 있었다. 지금도 일부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체로 일간지의 부속품 정도로 인식되고, 그 밖에 취미가 같은 동호인끼리 보는 소식지 정도이다. 지나친
혹평인가? 표현의 자유가 혹독하게 통제됐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가 오히려 한국 잡지의 전성기였고, 지금도 한 호에 수백만 부씩
찍어내는 일본의 잡지와 비교하면, ‘혹평’이란 말이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개별 전문 분야별 잡지–정확히 말하면 저널 또는 학회지–가 있다. 그런데 그 잡지는 글쓴이와 심사자 외에는,
심지어 같은 분야 전문가조차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이 중평인데, 그것이 전공 분야를 넘어, 그리고 실무자와 일반 교양인에게까지 확산·소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망(難望)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에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고 할 만한 것은 일간지의 칼럼 정도이다. 그런데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에서 무슨 논단을 할 것이며, 그것을 읽고 토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밖에 인터넷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있기는 하다. 다 그렇지 않지만 호흡이 짧고 휘발성이 강하며 익명성 뒤에 숨는 무책임한 발언이 성숙한 잡지문화의 수준
높은 교양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토론은 말 그대로 상대의 주장을 ‘치는 것’이다. 논(論)을 쳐야 토론이 되는데, 치지도 않을뿐더러 칠 자리도 없어, 각자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고장난명(孤掌難鳴)만 득실거린다. 혹여 논전이 벌어지면 구경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참전하면서 그 분야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으련만,
그저 본질과 무관한 일로 상처받는 일이 잦고 이를 목격하고 나면 그새 자기 골방(연구실)으로 숨어 들어가 버리는 우리 학계의 현실이 씁쓸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 중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진정 전문가가 없어서인가? 아니다. 드러나지 않거나 숨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사통팔달(四通八達), 종횡무진(縱橫無盡)의 뿌리를
일본 잡지문화의 토양에서 찾는 나의 생각은 이 책에 대한 평가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책이기도 하다.(계속)
※ 함께 읽기를 권하는 글 : 남형두, “전문가의 일식(日蝕)”, 한겨레, 2017. 7. 1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2213.html
독서 Guide
1. 책을 읽기 전,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2. 역사란 ‘어둠을 향해 공을 던지는 행위’라고 이해한 저자의 의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우리에게 익숙한 인터넷이 더 성숙한 지식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책정보
헤이세이사
저자요나하 준
출판사마르코폴로
발행일2022.12.28
ISBN9791192667102
KDC913.08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