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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다시 찾아온 여행 - 내 책을 말한다

‘유럽 도시’, ‘여행’, ‘역사’―제목에 대한 몇 가지 주석

- 윤혜준,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와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

작성일: 2023.04.27

포커스 요약

1. 두 책은 서유럽의 주요 도시 및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소도시들을 방문하는 여행기 및 도시들에 얽힌 역사적 순간들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을 제공함.

2. 유사한 설정의 다른 저서들과 달리, 미술사나 건축사 등 한 분야에 묶여있지 않고, 건축과 미술을 포함하여 음악, 정치, 경제, 종교, 음식, 스포츠 등 다양한 영역들을 다루고 있음.

3. 도시들의 특정 시대와 특정 공간에 얽힌 역사를 탐색하지만, 동시에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서구 유럽 역사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대 순서로 각 장의 꼭지들을 배치했음.

주석 1. “7개 코드로 읽는…”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돌, 물, 피. 돈, 불, 발, 꿈으로 풀어낸 독특한 시선의 인문기행》(2021)과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 돌, 물, 불, 돈, 발, 피, 꿈이 안내하는 색다른 문화기행》(2022)는 둘이 한 짝이다. 앞의 책이 더 많이 팔린 편이긴 하나, ‘유럽 소도시’를 외면한다면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주석 2. “유럽 도시”, “유럽 소도시”

유럽 도시/소도시는 ‘큰 대(大)’ 자와 ‘새 신(新)’ 자를 숭배하는 현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소도시’를 두 번째 책 제목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대’도시 ‘대’단지의 ‘신축’ 아파트에 살며 ‘새 차’를 ‘뽑는’ 삶을 누구나 지향해야 할 인생의 복으로 여긴다. 유럽의 도시, 특히 많은 유럽인은 낮은 건물이 대부분인 소도시에 산다. ‘난개발’과 ‘재개발’ 속에 사각형 건물의 흉물스러운 키를 키우는 것이 ‘도시’가 수행해야 할 마땅한 과제로 믿는 이들의 눈에는 소형차도 몰기 힘든 좁은 골목 곁에 수백 년째 서 있는 낡은 건물을 그대로 보전하고 사는 유럽인이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편리함의 극치를 구현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대한민국 도시인은 ‘유럽 여행’을 좋아한다. 먼 비행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시적 불편함을 감수하며, 발품을 팔며,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유명 건물 앞에서 부지런히 ‘인증샷’을 찍고 돌아오는 이들의 가방에는 반드시 현지 점포 또는 공항 면세점에서 산 ‘명품들’이 들어 있다.

《7개 코드…》 시리즈 두 권을 쓴 이유는 정형화되어 있는 ‘유럽 일주’ 여행에서 놓치기 마련인 숨겨진 역사와 유럽 도시의 정신과 꿈, 영혼과 정서, 아름다운 공간과 그 공간이 낳았고 공간에 서려 있는 상처와 성취를 말하기 위함이다. 두 책은 ‘여행’을 안내하지만, 그 여행은 ‘역사 여행’, 역시 기행이다.



주석 3. “인문기행”, “문화기행”

원래는 ‘역사’라는 말을 제목에 넣으려했지만, 출판사에서 말렸다. 한국어에서 이 말이 너무 무거운 까닭이다. ‘역사’는 예전에는 ‘국사’라 부르다 요즘에는 ‘한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험과목의 갑갑함이나, 아니면 ‘근현대사’와 ‘과거사’를 빌미로 벌이는 정치싸움의 진부함을 연상시킨다. 다른 한편, 역사학을 전공한 이들이 글을 쓸 때는 모든 역사적 사실을 다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제목에서 살아남은 “인문 기행”과 “문화 기행”은 ‘종합적 서양학’을 지향한다. 정치, 경제, 전쟁 등 전통 역사학의 주된 연구 대상 외에, 다른 분과학문에 배당된 문학, 종교, 음악, 건축, 미술, 음식의 역사도 함께 모여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물론 그 많은 도시와 그 많은 시대, 그 많은 주제를 모두 다 두 책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슨 수험서도 아닌데 그럴 이유도 없었다. 두 책은 저자가 그간 수십 년간 여러 유럽 도시에 체류하고 도시를 방문한 ‘여행’뿐 아니라, 20대 중반에 학문에 입문한 후로 여러 영역을 방문하고 거기에 머물렀던 ‘지적 여행’의 기록이다.

예를 들면, ‘돈’을 이야기하며 크레모나의 현악기 장인 주세페 과르네리를 소개한다. 과르네리는 “자기가 낳은 악기에 서려 있는 자신의 혼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꿈’ 코드의 안내로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의 배경, 앙굴렘을 방문한다. 이 소설과 이 도시는 종이 제조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을 따라가는 여행에서는 네덜란드 레이던의 경제사를 탐색한다. 17세기에 레이던은 경쟁 도시에 밀리지 않으려 “새로운 택지를 개발하고 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했”으며, 도시들을 잇는 운하 건설에 뛰어든다. 이렇듯 저자의 ‘지적 여행’은, 굳이 요약하자면, 문화와 경제 사이를 오고 가는 여정이었다.



주석 4. “7개 코드”

일곱 개의 ‘코드’는 다소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지적 여행’의 가이드이다. 왜 ‘7개 코드’인가? 유럽 문명의 근간인 기독교에서 일곱이 완결의 단위이기에—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일곱 개의 ‘코드’로 소환된 말들은 모두 한 음절짜리 순수한 우리말이다. 물론 이 말들이 유럽 도시 또는 도시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유럽 도시들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돌’이 중요하다. 차가 아니라 보행자의 ‘발’을 위한 도시이다. ‘물’가에서 번성한 상인의 도시이나 ‘돈’의 힘을 제어하는 정신이 있다. ‘피’와 ‘불’의 상처 자국이 남아 있으나 구원과 초월의 ‘꿈’을 꾼다.

유럽 도시 역사 기행의 종착점은 한국의 도시이다. 한국 거주자의 유럽 여행은 인천공항에서 끝난다. 《7개 코드》 두 권을 쓴 저자는 한 문장 한 문장에 대한민국 도시에 사는 이들이 ‘크고’ ‘새로움’이라는 우상의 압제와 ‘편리함’이라는 마약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독서 Guide

1.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나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들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코드’로 바로 가서 읽어도 좋음.

2. 두 책에서 등장하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스메타나, 타레가, 레스피기, 안드레아 보첼리, 비틀스의 음악들을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어보며 책의 내용을 음미하면 좋을 것임.

3. 두 책을 다 읽은 후 여기에서 다룬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괴테, 샤토브리앙, 발자크, 디킨스, 토마스 만,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등 서구문학 대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임.

책정보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소도시

저자윤혜준

출판사아날로그(글담)

발행일2021.01.07 / 2022.01.10

ISBN9791187147671 / 9791187147886

KDC920

서평자정보

윤혜준 ㅣ 연세대 교수

윤혜준 연세대 교수 이미지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장, 대산문화재단 자문위원,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런던대학, 서섹스대학의 방문학자, 이탈리아 피렌체대학의 초빙교수로 역임했다. 《7개 코드》 연작, 《재산의 풍경》, 《바로크와 ‘나’의 탄생》 등을 집필했으며, 번역한 영문학 작품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로빈슨 크루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