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 낳으시고, 유튜브 날 키우셨네.”

아이들을 너무 일찍 스마트폰에 노출시키는 현실을 풍자한 농담이다. 영유아기에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은 두뇌의 균형적인 발달에 지장을 준다. 아이들은 이미지 자극에 길들여져 자기 조절능력과 사회적 지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그 결핍은 성장 전반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문해력의 감퇴다. 글씨는 읽을 수 있지만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상에 빠져들면서 책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EBS 당신의 문해력》은 글 읽기의 위상을 폭넓게 조감하면서 문해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책이다. PD와 작가 4명이 협업하여 기획 · 제작한 텔레비전 영상물을 정리하여 출간했다. 제목에서 암시되듯이 지금 문해력은 어른들에게도 문제가 되지만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가운데 ‘읽은 문장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은 무려 75%에 달한다), 이 책에서는 아동 및 청소년기에 초점을 맞춘다. 2010년대 이후 15세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 한국어 단어부터 가르쳐주어야 하는 영어 수업은 공부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문해력에 주목해야하는 이유

왜 문해력이 중요한가. 거의 모든 지식이 문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 점수가 낮은 학생들의 상당수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문해력은 학습력의 핵심이고, 공부 자존감의 원천이다. 그것을 부실한 채로 방치하면, 뒤늦게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다. 이 책에서는 그 골든 타임을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본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길어지면서 심각한 학습 결손이 생겼는데, 특히 초등학생의 문해력에서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



문해력, 어떻게 길러야 할까

그렇다면 문해력을 신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영아기에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소릿값의 이해인데, 자음과 모음과 받침이 조합되는 한글의 원리를 깨치는 것이다. 그를 위해 부모가 할 일은 소리 내서 읽어주기다. 단순한 음독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는 말놀이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상상력을 넓히도록 질문하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는 상호작용에서 아이는 언어의 맛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14권의 그림책을 선정해서 예시해준다.

문해력의 또 한 가지 기둥은 어휘력이다. 단어의 뜻을 몰라서 글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유행어나 약어는 유창하지만, 많은 한자어에 점점 더 까막눈이 되어간다. 문자 메시지의 숨 가쁜 교환에 익숙해져서, 긴 글을 점점 버거워한다. 이런 상태에서 학업성취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청소년기에 즐겁게 어휘력을 늘이는 학습법을 소개하고, 중학교 3학년 수준의 학습 도구어 2400여 개를 난이도 등급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몇 가지 물음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까다로운 용어와 엉터리 문장을 남발하는 지식인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심심한 사과’처럼 헷갈리는 한자어를 대체할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계속 써야 할까? 세대를 경계로 언어 세계가 분절되는 상황에서 공통의 경험과 의미 영역을 확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론장에서 깊이 다뤄보아야 할 질문들이다.



바야흐로 ‘책맹’ 시대

한국은 한글이라는 탁월한 문자 덕분에 문맹을 빠르게 퇴치했고, 정보화에서도 컴맹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책맹’을 걱정하게 되었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가짜뉴스에 쉽게 넘어가고, 시민이나 소비자의 권리도 지키기 어렵다. 정보가 폭주하고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지성의 힘은 더욱 절실해진다. 글 읽기는 현실을 독해하면서 생각을 키워가는 훈련이다. 이 책은 읽기와 삶의 연관성을 다각도로 짚으면서 문해력 증진의 전략을 세밀하게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