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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다시 찾아온 여행

철도 여행의 역사로 본 사회사

-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작성일: 2023.04.13

포커스 요약

1. 19세기 철도 역사와 관련한 문화현상을 다룬 교양서

2. 철도의 등장과 문화, 도시, 산업의 발전 양상

3. 오늘날 플랫폼의 원형인 초기 철도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킨 철도

이 책은 철도의 역사를 다루었는데 그 내용은 부제를 통해 잘 보완되고 있다. 원서의 부제를 해석하면 ‘19세기 공간과 시간의 산업화’인데, 역자는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로 바꾸었다. 증기기관 기차가 만들어지고 철도를 통해 유럽과 미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19세기였다는 점에서 번역자는 ‘19세기’를 의도적으로 부제 번역에서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와 관련해 19세기는 매우 특별한 세기다.

1941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저자는 철도의 역사를 단지 교통수단 발전사의 하나로 보지 않고 철도를 통해 19세기의 영국,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의 산업, 과학, 도시, 문학, 예술, 건축 등 당대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실용서로 분류되지만 여러 전문 분야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수준 높은 교양서라 할 만하다.

흔히 20세기 후반의 인터넷이 시간과 공간을 축약시켜버렸다고 말하는데 철도 역시 19세기에 공간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53면) 철도가 전통적인 공간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철도는 지역을 전제로 하는 ‘생산품’을 ‘상품’으로 전환했으며,(57면) 지방의 현재성을 상실하게 했다.(59면) 아울러 규칙적인 교통은 시간의 통일화를 요구했고 영국의 그리니치 시간이 모든 노선에 구속력을 갖는 열차 표준 시간이 되는 데 기여했다.(60면)



철도, 문화와 산업의 발전양상

철도는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객차 창을 통해 변하는 연속 장면들은 파노라마처럼 인식되었고,(82~83면) 역설적으로 철도여행은 ‘여행 중 독서’라는 객차 안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86면) 나아가 철도역의 서적대에 신문 판매가 더해져 신문 읽기가 확대되었는데, 이와 별개로 소설, 여행 책자 등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89면)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여행 중 객실 담화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 되었다.(90면) 반면 미국 철도 객실 내에서는 이런 고급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문화를 비교하기도 한다.(150면)

등급 구분에 따른 객실은 일종의 계급화로서 사회적 병폐를 낳기도 했으며,(94~95면) 하급 객실과 상급 객실은 서로 다른 문화를 보이며 발전해갔다. 일등석의 객실에서는 ‘고립’을 즐기는 승객들이 늘어났고,(102~103면) 워낙 이동 거리가 멀었던 미국 기차는 발전 초기부터 벌써 침대칸이 생겨났는데, 이는 유럽과 다른 것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철도를 통해 대륙별 사회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의 물자를 이동하기 위해 철도가 시작되었다. 이를 요약하면 산업 생산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고 이어서 기차라는 운송 혁명이 일어났는데, 미국에서는 철도의 발전으로 인해 황무지가 개척되는 등 기차가 산업을 일으키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되었다.(119~121면)

철도는 기관사, 탄부 등의 산업재해와 궤도 이탈 등의 사고, 그리고 여행객의 신경증 등 여러 의학적 병리 현상을 낳기도 했다.(7장 철도여행의 병리학, 8장 사고, 9장 철도 사고 등) 그야말로 이 책은 철도의 역사에 관한 매우 풍부한 자료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기술하되 사실 나열에 그치지 않고 문화사적으로 평가한 철도에 관한 종합 교양서라 할 만하다.



기차역, 도시로의 진입

끝으로 저자는 철도와 도시의 관계를 ‘도시로의 진입’이라는 말로 기차역을 설명한다.(216~223면) 유럽의 기차역은 전통적인 도심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 외곽에 철도역을 배치하는 반면 미국의 기차역은 도심을 관통하여 설치하는데, 이는 유럽과 미국의 도시발전과 관련이 있다. 실제 유럽의 오랜 도시에 있는 기차역은 대로 원환(Boulevard-Ring)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위치하는데, 이는 전통적 도심과의 조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226면)

서평자의 개인적 경험을 소개한다. 일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파리를 거쳐 프랑스의 남쪽 도시로 여행한 적이 있다. 우리 식으로 생각해 파리 기차역에서 하차하여 후속 기차를 바로 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환승 시간을 길지 않게 하여 표를 예매했는데, 알고 보니 하차 역과 다음 승차 역이 제법 떨어져 있어 후속 기차를 놓쳤다. 낭패였다. 그때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 기차역을 여러 곳에 분산했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그러고 보니 독일의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등 대도시의 기차역에 기차가 통과하지 않고 들어왔다가 다시 후진해서 다음 목적지로 진행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후진이 아니라, 양방향에 기관차가 있어 기차역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플랫폼의 원형

사실 오늘날의 플랫폼은 바로 이런 기차역에서 나온 것인데, 플랫폼 또는 터미널은 교통수단이 필요한 여행자(승객)와 기차·버스·항공기 등 교통수단을 공급하는 운송자가 서로 만나는 곳이다. 이들 초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를 매개―티켓 판매를 대행하고 각종 식당 등 편의시설을 운영함―하는 ○○터미널주식회사, ○○역이라는 것이 바로 플랫폼 사업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운수회사가 승객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이들 플랫폼/터미널을 통해 거래한다면, 고용과 시설의 중복투자를 피할 수 있고, 승객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운수회사와 승객 모두에게 효율적이다.

기차역/버스터미널 회사는 운수회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더 큰 기업이라고 볼 수 없지만, 현실의 플랫폼 기업은 그 생태계 안에 있는 사업자(공급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개/매개 역할을 하면서 수익을 취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시 철도와 기차역으로 돌아가, 효율성을 극강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도심 한복판에 터미널/기차역을 만드는 것은 수천 년 이어졌던 낯익은 도심을 파괴하는 것이 수반된다. 서평자는 파리역을 보면서 효율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심 내부에 중앙역을 만들지 않고 도시 외부에 여러 역을 만든 것에서 오늘날 플랫폼 자본주의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서평자가 앞에서 이 책이 단순한 철도의 역사에 관한 실용서가 아니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독서 Guide

1. 철도여행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자.

2. 철도에 객실 등급 구분은 꼭 필요할까?

3. 기차역, 버스터미널과 오늘날 플랫폼 경제가 유사한 점은 무엇이 있을까?

책정보

철도여행의 역사

저자볼프강 쉬벨부쉬

출판사궁리

발행일1999.12.15

ISBN9788988804056

KDC385.09034

저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