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요약
1.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모델인 미국 무관 조지 포크의 조선 여행기
2. 19세기 조선의 풍경을 낮은 자의 눈으로 낮은 자를 보고 그려낸 생활사
3. 조선의 가능성과 비극적 상황이 겹쳐 읽히는 안타까움
배변 중인 얼굴에서 보고 싶었던 것
그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오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고 찾아내지도 못했다. 나는 ‘아무 데나
바깥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은 천안에서 35리쯤 떨어진 곳이다.”(11월 4일)는 이 기록은 차라리 점잖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휘늘어진 풍경을 즐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화장실은 줄곧 그를 괴롭혔고, 드디어 다음과
같이 불평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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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 화장실을 갔다. 마당에 약간의 싸릿대가 둥그렇게 처져 있는 곳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터무니없었다. 150명은 족히 될 만큼의 온갖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 소리 없이
나를 지켜봤다. 여행자로서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분명 나는 일정 부분 거친 사나이가 되었지만, 그들의 집요한
시선은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 11월 7일
이 풍경에 무슨 해석을 덧붙일까? 장면 자체에서 19세기 말의 조선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미개와는 다르다.
푸른 눈의 젊은 군인 ‘조지 포크’를 은진 근처의 ‘온갖 사람들’은 ‘아무 소리 없이’ 지켜본다. 허접한 변기 위의 생명체를
집요하게 뜯어본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가까운가? 포크는 기가 막혀 “신이시여, 저들을 도와주소서.” 기도하는데,
조선 사람은 변하는 시대가 무엇인지, 배변 중인 그의 얼굴에서 보고 싶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조선에 대해 진지했던 젊은 미국 무관
조선의 미국 공사관 무관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는 1884년 5월에 부임하였다. 28세의 해군 소위였다. 당초 사관학교
졸업 후 6년여 아시아 분함대에서 근무했고, 27세 때 본국에 귀환해 있는 동안 민영익을 비롯한 조선의 보빙사를 안내하였다.
이것이 인연이었다. 포크는 귀국하는 그들과 함께 조선에 왔던 것이다. 현지 적응을 마치자마자 본국에 보고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의 이곳저곳을 조사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곧 11월 1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는 조선에 대해 진지했다. 충남 연기를 지날 무렵(11월 4일) ‘경탄이 나올 정도로 경작이 잘 된’ 들판을 보며
‘헛되이 버려진 땅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허투루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전부였다.
‘책은 드물었고 독서하는 이는 거의 볼 수’ 없어서(11월 9일) 아쉬웠다.
젊은 무관이 발견한 조선의 가능성
그러나 거기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조선은 수백 년 동안 쌀을 자족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지방 관리에게,
포크가 농업 외에 ‘무역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하자 관리는 수긍했다. “지금까지 조선은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몰랐고 아주
서서히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바란다.”(11월 10일)고 답하였다. 포크는 그런 조선 사람이 사랑스러웠다. 그들이 똥 누는
자신을 왜 그렇게 집요하게 쳐다봤는지 알만했다. 시대가 궁금했던 것이다.
반면, 포크의 눈에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 있었다. 말썽을 일으키기 쉽고,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게을러 보인 쪽은
고급 관리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좋은 관리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하급의 어린 관리들은 달랐다.
‘무언가를 보여줄 때나 줄 때’ 그들은 ‘그중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네는’ 모습을 포크는 유심히 지켜봤다.
예컨대 포크가 커피를 끓여 한 잔 주면, “매번 절반을 마시고 나머지는 십여 명 이상의 방 바깥에서 어슬렁거리는 이들에게
나눠 주었다.”(11월 5일)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나라의 일을 하게 맡긴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까,
포크는 생각했다. 그 또한 낮은 계급의 이국 관리로서 같은 눈높이의 조선이 들어왔다.
낮은 자리에서 바라본 비극적 상황
다만 지금 조선은 가능성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았다. 포크는 ‘과거 오랜 세월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강건한 남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이 왕조 정부의 관례’라는 말을 들었다. 낮은 자리의 조선
사람을 두루 만나며 챙겨 들은 이야기 속에 뼈아프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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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영웅’은 나라를 위해 수많은 일본인을 죽인 후, 결국 자신의 힘을 보여 준 행위로 목숨을 잃을 것을 알고,
일본 함대가 빤히 볼 수 있는 자신의 뱃머리에 서서 일본인의 총에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범죄자처럼
처형당하는 것을 피했다.
- 11월 21일
이순신을 두고 포크가 들은 이야기이다. 요즈음 ‘이순신 자살설’이 학계에서 제기되지만, 이는 벌써 19세기 말의 사랑방에서
널리 회자되던 이야기였다. 이것이 조선의 비극이었다. 바로 알아야 한다. 나라가 약해서 열강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아니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라의 도장을 쥐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이 속임수와 이간질로 뭉쳐 ‘강건한 남자’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1884년에 포크는 그 사실을 알았다.
독서 Guide
1. 조선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관점은 무엇이 다른가?
2. 낮은 자리의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3. 역사의 주인공이 ‘강건한 남자’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책정보
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저자조지 클레이튼 포크
출판사알파미디어
발행일2021.02.26
ISBN9791191122053
KDC911.059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