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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한 대화에서 배우는 것

- 최태성, 《역사의 쓸모》

작성일: 2022.09.15

PICK1 요약

1.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역사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

2. 역사 속 인물들이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가치들에 주목

3.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의 사람들과의 만남

역사 속 인물과의 대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을 안고 일 년 정도 유럽과 남미 대륙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호텔이나 민박, 에어비앤비가 아닌, 누군가의 집에 머물렀다. 언뜻 보면 평범하지만, 평범함으로 가릴 수 없는 특별함을 지닌 이들이었다. 길게는 한 달씩 가족처럼 지내면서 그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기꺼운 마음으로 관찰했던 건 삶의 다른 양식(가령 페루 잉카족 원주민의 삶)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들의 생각, 즉 ‘가치관’이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선택의 순간에 무엇을 중심에 두는지, 일상의 사건들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겪어나가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 각각은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모습의 조각을 하나씩 갖고 있었고, 나는 그 조각들을 소중히 마음에 품고 귀국해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질문이 아닐까. 그런데 멋진 방법을 하나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역사의 쓸모》에서 소개하는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역사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과 ‘대화’라니…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과거가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친한 친구와 팔짱을 끼고 걷듯 친근한 느낌의 문장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른 꼬부랑 ‘물음표’가 어느덧 다림질한 듯 쫙 펴진 ‘느낌표’로 변해 있을 테니.



역사, 무수히 축적된 경험의 기록

저자 최태성은 20년 넘게 EBS 역사 강사로 활약, ‘대한민국 대표 역사 강사’로 불린다. 오랫동안 고등학교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2017년부터 사교육계로 옮겨갔고, ‘누구나 쉽고 편하게 역사 강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료 온라인 강의 사이트를 여는 등 역사의 대중화에 힘 쏟고 있다. MBC <무한도전>,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도 활발해 대중에게 꽤나 친숙하다.

점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을 사교육계 종사자임에도, 저자는 지금의 역사 교육 현실에 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연도와 사건, 인물을 달달 외워 시험 치고 나면 머리에 남는 게 없고, 심지어는 역사란 으레 그런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현실 말이다.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뀌는 동안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쳐온 저자의 깨달음은 달랐다. 그는 역사가 단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란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좀 더 들여다보자. 누구에게나 삶은 연습 없이 바로 투입되는 실전이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알 수 없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의 쓸모’를 말한다.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를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다. 누구나 과거의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우며 살아간다.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란 유명한 말도 있잖은가(물론 아무리 경험해도 못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데 역사는 앞서 살아간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경험의 기록이다. 나의 경험은 내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갖지만, 역사 속 타인들의 경험까지 아우를 수 있다면 배움의 소스가 몇 곱절 늘어나리란 건 당연하다.

이러한 역사의 효용을 제대로 체감하기 위해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이 바로 역사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화란 쌍방향의 소통을 뜻하진 않는다. 대신 역사 속 인물이 처했던 상황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그이의 생각과 감정, 그렇게 행동한 이유 등을 유추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를 대입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은 연도와 이름, 업적 한 줄로 적힌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숨 쉬던 인간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우리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한 걸음씩 내디딘.



연결의 지점, 말을 건다

역사 속 인물은 꼭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유명한 사람만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던 수많은 농민, 그 이름 없는 ‘아무개’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신분에 귀천이 없고, 토지를 고루 나누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꿨던 농민들은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진격한다. 조선 조정은 자기 백성이 두려워 한심하게도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이를 빌미로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사를 파견한다. 농민군은 ‘우금치’라는 고개에서 조선과 일본의 연합군과 맞붙는다. 그러나 평생 농사만 짓던 순박한 이들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었을까. 죽창 하나 들고 고개에 도착한 농민들을 기다리던 건 듣도 보도 못한 신식 무기, 총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농민군들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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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은 옷 속에 부적을 붙였다고 해요. (중략)
너무 무서우니까, 무서워서 한 발짝 떼기도 힘드니까 붙였던 거예요.
종잇조각 하나지만,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알지만,
그거라도 붙여야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붙인 것 아닐까요?
부적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참 짠하더라고요.
이 아무개들은 용감하게 싸운 게 아니에요. 두려워하면서 싸웠어요.
 

- 47쪽, ‘새날을 꿈꾸게 만는 실체 있는 희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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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해 거대한 힘에 맞서야 하는 건 그때만의 일이 아니다. 그때의 거대한 힘이 일본군의 총이었다면, 오늘날엔 사회적 시선, 미비한 제도, 회사의 갑질, 혹은 부당한 공권력 등으로 모습이 바뀌었을 뿐이다. 역사는 위로한다, 거기에 대항하는 건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두렵다고. 그리고 역사는 증명한다, 두렵지만 목소리를 내었을 때 세상은 바뀐다고.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고작 백삼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그들의 꿈이 절반 정도는 실현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먼저 살다 간 이들의 삶(역사)이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역사적 사고가 만드는 지혜

이 밖에도 저자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지만 무심하게 넘긴 역사적 사실에서 놀라우리만큼 유용한 삶의 지혜와 노하우를 길어낸다. ‘강한 신라’라는 비전을 효과적으로 공유해 신라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삼국통일에 성공한 선덕여왕, 협상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알려준 고려의 서희와 원종, 불리한 태생적 조건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낸 정도전과 장보고 등…. 리더십, 협상의 자질,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 등 그들이 일생을 통해 보여주는 이 가치들은 오늘을 사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무엇보다 여러 번 강조되는 건 ‘역사적 사고’다. 자신의 삶을 다만 지금 이때로 한정 짓지 않고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 놓고 고려하는 안목이다. 저자는 다산 정약용의 일화 등을 통해, 넓은 시야로 인생을 대할 때 생겨나는 마음의 여유와 지혜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한 여유와 지혜라니, 이 밖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역사를 왜 알아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많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사고를 하기 위해서….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의 내 삶을 분명히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낼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의 사람들을 만나며 힌트를 얻고자 했다면,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의 사람들을 만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이 작은 책 한 권에 담긴 셈이다.

책정보

역사의 쓸모 표지이미지

역사의 쓸모

저자최태성

출판사다산초당

발행일2019.11.22

ISBN9791130621968

KDC904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을 돕고(Help) 숙식을 제공받으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