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PICK 1 요약
1. MZ세대 ‘생활인’ 작가가 펼쳐내는 일과 삶의 기쁨과 슬픔
2. 행복을 찾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2030 청년들의 자화상 같은 소설
3. 같은 세대 독자로부터 ‘하이퍼리얼리즘’이란 찬사를 받은 사실적 구성과 묘사
소설로 만난 작가
나는 서른네 살 1월,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과 처음 만났다. ‘이삼십 대 젊은 직장인들의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가볍게 집어 들었다가, 재미를 넘어서 엄청난 쾌감에 단 몇 시간 만에 그야말로 ‘읽어치워 버렸다’ 뒤 내용이 궁금해 빨리 책장을 넘기려는
손가락을, 넘길 책장이 얼마 남지 않았단 아쉬움으로 어르고 달래가면서.
동시에 깨달았다. 호돌이가 손에 손잡고 춤추고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던 1988년에 태어나, 삼십여 년 간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온
내 안에 ‘어떤 욕망’이 웅크리고 있단 사실을. 그건 갈증이었다. 누군가가 정확한 언어와 적확한 묘사로 이 세상을,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내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 안의 욕망이 깨어난 건, 장류진의 소설이 정확히 그걸 해냈기 때문이었다.
1986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십 년간 직장 생활을, 그것도 첨단을 달리는 판교 테크노밸리 IT 회사에서 했다. 글쓰기로는
생활이 되지 않음을 알고 꿈을 접고 살다가 ‘내 소설 한 편 갖고 싶어서’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과 사이버대학원을 병행하며 소설 쓰길 몇 년,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고 2019년 10월 첫 소설집을 출간. 이에 마침내
십 년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꿈을 이루다.
작가의 이력이다. 2019년 출간되었다는 첫 소설집이 바로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여기 실린 단편 여덟 편은 모두 회사에
다니는 동안 문예지 등에 발표한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너무 내 이야기야’, 젊은 생활인이 읽어내는 젊은 생활인의 삶
글쓰기의 꿈을 품은 이는 많고, 글쓰기만으로 생활이 안 되어 다른 정체성으로 이중생활 하는 작가도 많다. 왜, 《변신》을 쓴
프란츠 카프카도 낮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퇴근 후 글을 썼다지 않나. 장류진의 이력도 그런 면에서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력을 다시 한 번 눈여겨보게 되는 건 왜일까.
우선 시대적 동질감을 꼽을 수 있겠다. 현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자로서, 낭만적인 꿈을 좇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장착할 수밖에 없는 동료 의식이다. 작가 자신도 ‘먹고사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떠날 수 없었던 ‘회사’, 그곳이 갖는 의미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하다.
회사란, 회장 말 한마디에 월급을 포인트로 받으며 ‘모멸감’을 안기는 곳(〈일의 기쁨과 슬픔〉, 51면), 그러나 오래 품은 꿈을
고이 접어두고 추운 세상 내 존재를 의탁할 수 있는 따뜻하고 푹신한 곳(〈탐페레 공항〉, 207면)이다. 정규직으로 처음 출근하며
‘한남동과 재규어와 이탈리아까지 내게 한결 가까워진’ 것처럼 자존감을 높이면서도(〈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163면),
3년간의 사내 연애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며 ‘프로답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잘 살겠습니다〉, 25면) 곳이다. 무엇보다 회사란,
미우나 고우나 삶을 버티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월급’이 나오는 곳인(앞의 소설, 56면) 것이다. 장류진의 소설집엔
‘일의 기쁨과 슬픔’, 그를 바탕으로 피어나는 ‘삶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회사를 그만두면 소재가 고갈될까 봐 걱정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읽히듯, 십 년의 회사생활에서 보고 듣고 만난 것들은 고스란히
소설의 뼈와 살이 되었다. 당장 곁에서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인 에피소드, 사실적 전개와 자기 마음을 열어본 듯
정확한 심리 묘사 덕에 소위 MZ세대 독자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이란 찬사를 보내며 장류진의 소설에 응답하고 있다.
살기 위해 계산하지만, 정작 ‘삶’은 계산이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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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 언니에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중략)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 〈잘 살겠습니다〉, 28면
같은 나이 또래 화자의 입을 빌려, 작가는 2030 세대가 인식하는 세상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이유 없는 호의’란 없는,
정확한 교환법칙으로 돌아가는 곳, 눈치껏 앞가림하며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하는 곳, 계산이 느리면 손해 보는 곳…. 소설 속엔
세상과 마주한 작은 개인,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관리’하며 살아가고자 기민하게 머리를 굴리는 작은 개인이 있다.
보고 있자면 짠하고, 사랑스럽고, 안아주고 싶다. 그것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이기에.
동시에 작가의 시선은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머문다. 앨범 낼 절호의 기회를 신념을 꺾지 못해 제 발로 차버리고,
밀린 전기세보다 개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홍대의 가난한 음악가 ‘장우’(〈다소 낮음〉)가 대표적이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까지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지 못 한다고 비난받지만, 그들은 행복에 대한 나름의 계산법으로 각자의 삶을 산다.
빠른 셈법이 언제나 성공하지만도 않는다. 〈잘 살겠습니다〉에서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빛나 언니에게 한 수 가르쳐 줄(한 방 먹일)
의도로 산 만이천 원 짜리 결혼 선물은 예상외로 ‘진심’이 되어 언니를 감동시키고.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에서 사랑을 두고도 노련하게
계산하며 사자처럼 먹잇감을 덮칠 적절한 타이밍을 보던 ‘지훈’의 계산은 결국 보기 좋게 실패한다. 관계와 마음의 계산법은 생존의 그것과
달라서 종종 의도와 어긋난다. ‘계산’이 생존을 위한 본능이 되어버린 시대지만 정작 ‘삶’은 계산 위에만 세워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소설은 말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미 많이 회자되긴 했지만, 이 책을 두고 정이현 소설가가 남긴 평을 다시 한 번 빌려온다 :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 마치 ‘나를 표현할 언어를 부여받은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읽은 사람으로서, 위의 평에
열렬히 동의한다. 책 발간 전, 출판사 홈페이지에 소설을 무료로 공개하자마자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마비되고,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는
이례적으로 발간 1년 반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것을 볼 때, 아마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다 싶다.
독서 Guide
1. 나에게 ‘일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가요?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2. 「잘 살겠습니다」의 결말에서 ‘나’는 빛나 언니가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3. 소설 속 인물들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책정보
일의 기쁨과 슬픔
저자장류진
출판사창비
발행일2019.10.25
ISBN9788936438036
KDC813.7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을 돕고(Help) 숙식을 제공받으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