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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장애는 우리를 어떻게 해방시킬까

- 슈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작성일: 2022.12.15

히든북 요약

1. 장애학의 렌즈로 동물을 바라보는 신선하고 놀라운 통찰

2. 동물과 장애에 대한‘전환적인’관점의 모색

3. 비장애중심주의의 세계에서 ‘나’의 좌표를 찾기

동물, 장애, 그리고 해방

“세상에, 제목이 너무 우울하네요.” 그 말을 듣고 한창 읽어나가던 책의 제목을 다시 봤다. 짐, 끌다, 짐승. 그런 말 할 법하다. 가뜩이나 우울한 세상, 제목만 봐선 쉽게 끌리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 이 책의 메시지는 우울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책을 읽고 난 후 독자의 마음은 완전히 반대 지점에 다다른다. 부제를 힌트 삼아 읽어보자.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동물, 장애, 그리고 해방. 세 단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동물과 장애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알아야 할 게 있나? 두 단어는 무슨 관련이 있어 나란히 적히는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그 해방은 ‘나’에겐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혁명적인 통찰을 들려주는 저자 슈나우라 테일러는 선천적 관절굽음증을 갖고 태어난 장애인이다. 휠체어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장애 당사자로서, 동시에 원숭이처럼 걷고 가방 속 소지품을 입으로 물어 꺼내야 하기에 평생 ‘동물’에 비유된 인간으로서, 장애와 동물이라는 키워드를 한 몸에 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펼치는 깊은 사유가 이 책에 담겼다.



‘장애는 불행’이라는 생각 뒤에 깔린 것

사유의 계기가 되는 어떤 사건과 유년기의 기억을 적은 프롤로그와 첫 장을 지나, 저자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곧바로 핵심으로 향한다. 1부 2장의 제목, ‘장애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장을 통과하며 독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의 전복을 경험한다. 장애의 정의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확고부동하지 않다는 점도 그렇지만(왜 특정 ‘손상’을 입은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는 ‘장애’로 분류되고 다른 사회에서는 분류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다음의 질문과 만난다. 장애는 곧 개인의 불행, 강인한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것, 없으면 좋은 것. 과연 이 등식은 맞는가?

저자는 이 등식 아래 깔린,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꼬집는다. 장애가 있는 몸은 건강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몸이고 장애는 치료의 대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라 불리는, 장애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 하나다. 생각해보면 다른 관점으로 장애를 바라본 경험이 우리 대다수에게는 없다. 이를테면 장애는 ‘단순히 의료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문제’(53면)라는 관점은 어떤가? 사회적으로 올바른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지면 어떠한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니게 되거나, 적어도 ‘지금처럼 취급되는’ 장애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지? 지난 수십 년간 장애운동가들이 소리 높여 주장해온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너무나 낯설다.

그렇다면 무엇이 장애에 대한 관점을 지금처럼 한정지었는가? 저자는 그 근본 원인으로 ‘비장애중심주의(장애가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고 정상이며, 반대로 장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상정하는 가치관이자 이데올로기)’를 지적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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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중심주의는 우리의 문화적 견해와 가치관이 구축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자립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무엇이 ‘정상적’이고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등에 대한 통념들은 말할 것도 없다.
 

- 66~67면

비장애중심주의의 핵심은 ‘정상’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그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성, 언어, 지능, 이족보행, 신체적 자립 등이 정상이란 견고한 성채를 이루는 기준들이다. 2,000년 전 농인을 사고와 지성이 결여된 유사 동물로 취급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서구의 역사‧문화‧철학‧과학은 다름 아닌 이러한 기준들을 수립하며 비장애중심주의가 켜켜이 쌓여온 과정이었음을, 저자는 꼼꼼하게 짚는다.



비장애중심주의 위에 세워진 종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의 세계에서 그어진 금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은 장애인만이 아니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인간을 넘어 비인간으로 확장되며 종차별주의(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신념으로, 우리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를 점한다며 인간의 동물 이용 빛 지배를 용인함)와 연동한다. 이 세계에서 동물들은 오로지 ‘인간이’ 중요하다고 간주한 상기의 특정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소리 없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서커스‧동물원‧공장식 축산 등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동물산업의 왕국이 그 위에 세워지고, 그 안에서 가혹한 착취로 ‘장애화’ 된 동물은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연민 혹은 공포)에 따라 여지없이 제거된다.

정상 범주 바깥에 존재하는 동물과 장애인은 끊임없이 비교되고, 필요에 따라서 종종 ‘한 뭉텅이’로 묶인다(장애인은 동물처럼 추위도 더위도 못 느낀다는 주장처럼).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이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며 동물과 대립각을 세우는 건 당연한 저항이지만, 그것은 판을 바꾸지는(비장애중심주의를 해체하지는) 못한다. 목표는, 질문은 새로워져야 한다.

저자는 동물권리담론에 더욱 교묘하나 흔하게 드리워진 비장애중심주의의 그림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인간 유아나 치매 환자, 중증 지적장애인 등 ‘극한의 경우(에 처한 인간)’와 동물을 비교해 전자가 도덕적으로 가치 있다면 후자도 그렇다는 식의 주장이 장애인과 동물, 양쪽 집단에 필연적으로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꼬집는다. 특히 ‘동물권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싱어의 한계에 대해서는 무려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해 치열하게 논증하는데,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하는 그의 논리 또한 인간중심적인 특정 역량을 정점에 놓고 그 아래로 줄 세우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예리하게 증명해낸다.



함께 가는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이렇다 할 섣부른 대답을 유보한 채, 질문하고 상상한다. 확실한 것은, 해방의 길은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반드시 중심에 두지는 않는 삶의 방식’(238면)에서 가치를 찾는 길이라는 점이다.

그 길에는 동물과 장애에 대한 완전히 ‘전환적인’ 관점이 함께 한다. 그 안에서 동물은 비장애중심주의에 의해 억압받은 동료 주체이며, 탈출‧저항부터 애정과 공감까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목소리 내는 ‘그들 해방의 적극적인 참여자’다. 전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동물들은 우리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도록 더 넓게, 더 풍부하게 ‘이끌어’주는 존재가 된다. 이와 동시에 장애는 결핍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독창적인 방식’이 된다.

책을 읽어가는 과정은 환상을 걷어내고 내 정체성을 새롭게, 정확하게 인지하는 과정이었다. 비장애신체를 가진 인간인 나는 얼핏 비장애중심주의라는 사다리의 정점에 안전하게 위치해 있는 것 같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느새 내가 장애인과 동물과 어깨를 나란히 겯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정상’을 상정하고 끊임없이 줄 세우는 세상에서 나는 언제라도 사다리 아래로 걷어차일 수 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여성, 유색인종, 수많은 비주류 인간들이 장애와 동물성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평가절하 당했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몸은 비장애중심주의의 억압에 노출되어 있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이 너와 나의 이야기인 이유다.

독서 Guide

1. 일상에서 비장애중심주의를 찾고 나누어보자.

2. 비장애중심주의는 어떻게 동물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가?

3. 장애는 예술이며, 삶을 살아가는 독창적인 방식이라는 관점에 대해 토론해보자.

책정보

짐을 끄는 짐승들

저자수나우라 테일러

출판사오월의봄

발행일2020.11.20

ISBN9791190422529

KDC194.9

저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을 돕고(Help) 숙식을 제공받으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