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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력‧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 마커스 드 사토이, 《창조력 코드》

작성일: 2022.12.15

이 주의 히든북 요약

1. 창작적 표현을 보호하는 저작권법은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2. 알고리즘의 진화로 창조성, 창의성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게 됐다.

3. 제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공지능에는 교감, 즉 공유와 공감이 부재하다.

이세돌의 제4국 제78수 vs. 알파고의 제2국 제37수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세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의 가족도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모두 TV 앞에서 이세돌을 응원했다. 수년 후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2016년을 배경으로 다룬다면 아마 이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세돌이 5:0으로 이길 것이라는 예측에서 최소한 절반 이상은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대체적으로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이세돌이 판판이 나가떨어지자,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인간의 실존적 위기감까지 느끼게 됐다.(56면) 제4국에서 이세돌이 이긴 후 그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까지는 이세돌이 졌지만 인류가 기계를 이겼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 기계, 그것도 인공지능을 이기려고 했다는 것이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기실 인간 지능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기계의 발전이 아직까지는 인간에 못 미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단 세 판으로 충분했다. 인간 이세돌은 제4국에서 그야말로 변칙수(제78수)를 둔 끝에 알파고에게 이겼을 뿐이다. 알파고는 이를 재빨리 학습하여 제5국에서는 다시 이기고 말았다. 그 후 알파고는 더욱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고, 더 이상 인간이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딥마인드는 스스로 물러났다.(70면)

앞서, 이세돌이 이긴 유일한 제4국의 제78수를 변칙수라 하였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제2국에서 알파고 또한 통상 프로기사라면 두지 않는 변칙수(제37수)를 두었다.(59, 65면) 정석을 따르지 않은 그 수가 결국 이세돌을 흔들었다. 여기서 물어보자. 이세돌의 제4국 제78수와 인공지능의 제2국 제37수는 변칙일까, 창의성의 산물일까?



원숭이 나루토의 셀피는 저작물이 될 수 있을까

2014년,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슬레이터(David Slater)는 저작권 소송을 벌였다. 슬레이터는 인도네시아에서 데리고 다니던 원숭이(나루토)가 자신을 흉내 내 찍은 셀카 사진을 자신이 관리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그런데 인터넷 이용자들이 이 사진을 무단으로 퍼 날랐다. 슬레이터는 나루토 셀피의 저작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전제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국 법원은 슬레이터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소송을 기각했다. 얼마 후 두 번째 소송이 제기됐다. 이번에는 동물보호 단체(PETA)가 나루토의 셀피는 원숭이 나루토의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며 슬레이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이 또한 기각했다. 저작권은 인간의 창작물에만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원숭이에게는 저작권이 없다고 보았다.(167-168면)

창작적 표현 곧 예술성을 보호하는 저작권법은 인간이 아닌 동물의 소산물을 보호하지 않는다. 여기서 물어보자. 예술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알고리즘의 진화가 몰고 오는 변화

알파고는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 학습을 통해 지능을 개발한 인공지능이다. 데이터와 정보의 양은 엄청난 속도로 증대해 왔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 중 90퍼센트가 지난 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심지어 인류 문명 여명기부터 2003년까지 만들었던 데이터와 똑같은 양의 데이터를 이제는 단 이틀 만에 만들어낸다고 한다.(108면) “If…, then….” 형식의 알고리즘은 기계 학습의 시대를 열었고, 컴퓨터의 용량과 속도가 뒷받침되기만 하면, 인공지능의 기계 학습으로 인한 능력치는 인간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77면)

알고리즘의 수학적 토대는 때로 편향과 맹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진화는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마저도 인과법칙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하는 고전물리학을 넘어 선다. 이제 확률과 통계에 기반 한 양자 물리학으로 뒷받침되어, 창조성이나 창의성은 인간 고유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139-144면)



반전 : 교감(交感)

저자는 옥스퍼드대학의 수학과 교수이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동원해 인간의 창조성이란 것이 결과적으로 볼 때 인공지능에 비하면 초라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책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반전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창의성은 요원하다 말이다.

첫째, 정보나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식이 더해지지 않으면 상황 변화에 대처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할 수 없으므로 인간 코드가 더욱 적합하다고 한다. 최소한 현재는.(147면) 위키피디어 유(類)의 정보는 결과만 나열돼 있다. 과정이 생략된 이런 정보가 과정을 수반한 지식과 차별되며, 과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공유와 공감의 부재이다. 그림을 그리는 알고리즘 딥 드림(Deep Dream)이나 바흐(Bach) 풍의 음악을 작곡하는 알고리즘 딥 바흐(Deep Bach)는, 결과적으로 볼 때, 렘브란트나 바흐에 유사한 그림과 곡을 만들 수 있다.(214-216면, 305-307면) 그런 바흐 풍의 종교음악에 인간 예배자(성가대)가 속아 신을 찬미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계 내부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인공지능에는 공유와 공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335-336면) 음악은 종교적 맥락에서 시작되었다는 인류사적 전통까지 기계가 이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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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농담을 듣고 웃었는데 잠시 후에 그 농담을 알고리즘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어쨌든 웃었으니 됐다. 하지만 다른 감정 반응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어떤 예술 작품을 보고 울었는데 잠시 후에 그 작품을 컴퓨터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 165면

여기에서 ‘속았다’는 것은 바로 공유와 공감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결과 아닌 과정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논의는 그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수학자가 이를 분석하고 논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다. 앞서 제시한 바, 저작권법에서 인공지능, 동물의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것인가, 이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논의의 전제에는 창의성이 인간 고유의 영역인지 의문이 깔려 있다.

창의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처음부터 논의가 갈리게 된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중심주의적 사고에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창의성이 있다고 보아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웃기고 울린 작품이 인간 창작자의 의식과 감정에 기반 해 타인에게 울림을 준다는, 공유와 공감의 과정을 중시한다면 달라진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아무리 불완전해도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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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한다 해도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기계가 의식을 얻게 되더라도 인간은 그 의식을 처음부터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기계의 코드를 풀고 기계의 기분을 느껴 보려면 결국 기계의 그림, 곡, 소설, 수 지식 같은 창조적 결과물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447면

인류세(anthropocentrism)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다. 동물권, 인공지능 저작권 등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인간 중심의 권리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법학계에 무섭게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체제를 뒤엎는 것의 대변혁과 혼란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과정이 생략된 결과의 세계, 지식이 아닌 정보의 세계, 인간의 자의식과 자유의지를 거세한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 나 자신을 던지고 싶지 않다는 외마디만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미술사(美術史)가 그의 존재를 기준으로 전후로 나뉜다고 평가받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한, “나는 미술에 관심이 없고 미술가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진다.

독서 Guide

1. 오늘날 저작권법은 인간이 아닌 동물 또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은 보호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창의성과 예술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2.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림 혹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도 창작물로 볼 수 있을까?

3.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책정보

창조력 코드

저자마커스 드 사토이

출판사북라이프

발행일2020.07.15

ISBN9791188850945

KDC004.73

저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