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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구를 향해 펼쳐지는 생명의 드라마

- 제러미 리프킨, 《회복력 시대》

작성일: 2022.12.08

이 주의 PICK 1 요약

1. 근대 문명 패러다임의 종말을 증언하는 다양한 징후들의 점검

2.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면서 질서를 창출하는 사회 생태 시스템 확인

3. 호모 사피엔스의 거대한 각성과 도약이 필요한 시점

종(種)으로서 연대의식이 절실한 지금

역사 속에서 재난은 끊이지 않았지만, 지금 벌어지는 기후 위기나 팬데믹은 그 규모의 측면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지구촌의 주민이 예외 없이 그리고 동시에 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세계 전체가 거대한 상호연관성의 얼개 속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의 어려움에 봉착한 인류는 그 해결을 위해 다각적인 실천을 벌이면서 광범위한 연대를 꾀해야 한다. 하나의 종(種)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공론장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본주의의 소비 욕망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일상을 지배하고, 기업들의 대응도 너무 느리며, 환경 파괴에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세계관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청된다.

경제 사회 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 40년 동안 지구의 앞날에 대해 경종을 울려왔다. 1980년의 《엔트로피》에서 2020년의 《글로벌 그린 뉴딜》에 이르기까지, 화석연료 문명이 종말로 치닫고 있음을 논증하면서, 대안적인 세계의 존재 방식을 모색해 왔다.

그가 구사하는 지식의 스펙트럼은 방대하다. 생물학, 고고학, 화학, 물리학, 경제학, 정치학, 정보 공학, 심리학, 예술사 등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종횡무진하면서 문명의 흐름을 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예견한다. 《회복력 시대》는 그동안의 작업을 집대성하면서 한층 명료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공감의 시대》,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다룬 쟁점들을 거대한 담론 속에 녹여내고 있다.



취약함이 삶을 풍부하게 해준다

‘회복력’이라는 단어는 ‘원상 복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개념은 다르다. 생물은 물론 사물도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간다. 따라서 회복은 새로운 상태를 향한 상대적 회복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뒤에 치료를 받을 때, 개인이건 집단이건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새로운 주체성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지구의 시스템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패턴을 재구성하면서 영속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만물을 수학적 원리로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은 산업 문명은 단기적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했지만, 그 대가로 회복력이 떨어져 뜻밖의 부정적 외부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환경이 균일할수록 시스템의 변동성과 회복력이 낮아진다. 이제 효율성 대신 적응성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예측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사건을 흡수하고 수용할 수 있는 체제를 고안해야 하고, 변화를 차단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면서 함께 살아가기를 모색해야 한다. 사회 생태 시스템에는 명확한 내부와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개체가 서로 다른 공간적 시간적 범위에서 조직화 과정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식 위에 상호 연결이 순환성을 촉진하는 복합 적응형 사회 생태 시스템을 모델링해야 한다.

리프킨의 탁월함은 거시적인 통찰을 삶의 원리로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회복의 경이로움에 대한 다음과 같은 풀이는 위험과 실패로 점철되는 인생에 용기를 북돋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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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은 때로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취약하다는 것은 반드시 위험에 처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것에 대해 개방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취약하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안전지대를 벗어나거나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삶의 관계와 패턴을 더 다양하게 해 자신의 주체성을 풍부하게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 220면



파국의 서사를 넘어서

회복력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국경을 가로지르면서도 지역 단위에서 작동하는 거버넌스가 실현되어야 하는데, 저자는 그 구체적인 형식으로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peerocracy)를 제시하고 있다. 지역사회 전체가 공공 자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도록 하고 개별 시민에게 자신이 거주하는 생태 지역에 대한 관리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농경시대의 끝 무렵에 등장하여 산업사회에서 정착한 대의민주주의가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는 지금, 생활 정치의 도전은 곳곳에 만연하는 종말론적 절망과 체념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정치는 생명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과 공감 능력이 병행하면서 원만하게 실현될 수 있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 느낌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그것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체계화하는 인지적 경험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안정적 애착이 긍정적 적응의 전제 조건이듯, 생명의 뿌리에 접속함으로써 인류는 온전한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되물으면서 지구를 향한 원시적 경외감을 회복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넘어서 만물과의 심오한 재결합을 도모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초월과 상상으로 이끌어주는 가이드북이다.

독서 Guide

1. ‘빠른 추격자’로 압축 성장에 성공한 한국이 회복력의 시대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2. 금융자본이 생태자본에 밀려나는 경제 질서의 시나리오를 써본다면?

3. 불확실한 세상에서 필요한 적응력을 키우는 데 생태적 인식은 어떤 도움이 되는가?

책정보

회복력 시대

저자제러미 리프킨

출판사동양북스

발행일2022.11.01

ISBN9788937427367

KDC165.77

서평자정보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김찬호 ㅣ 성공회대 겸임교수 이미지

사회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이하면서 더 나은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러 대중강좌를 통해 시민과 함께 배우는 사회학자. 『생애의 발견』, 『모멸감』, 『유머니즘』등 십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