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PICK 1 요약
1. 통념을 깨는 철학 실용서
2. 저자의 니체에 대한 깊은 공부가 미덕인 책
3. 우연은 운명의 필연을 설명하는 열쇠
니체까지 실용서에 불려나올 줄이야
어느 시대에나 실용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다. 요즘은 자기개발서라고 부르지만, 학습서에서 운명학까지
스펙트럼이 넓기도 하다. 당장 이익을 주는 책이 많이 팔리기로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지나치게 편중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실용서의 넓은 범주 안에 철학적 에세이 유(類)도 한 자리 차지한다. 1960년대에 김형석, 안병욱이 한 획을
그었고, 문학으로 이어지는 이어령, 1980년대에는 둘을 합친 류시화의 에세이로 계보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이 시대가
급격한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자. 책 안에서나마 심리적 안정을 찾자는 소구(遡求)는
눈물겨워 보인다.
그렇긴 해도 니체는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염세적 철학자를 불러내 어쩌자는 것인가? 데카르트(17세기),
칸트(18세기), 헤겔(19세기)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도도한 흐름에 더 이상 빈틈이 보이지 않는데, 너무 단단해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깨자는 것이었을까, 쇼펜하우어와 동열에서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꼬나보는 철학자이다, 우리의 통념 속
니체는.
나의 삶에 단호히 내리는 신의 죽음
그런데 이런 통념을 깨는 철학서가 나왔다. ‘희망과 안식을 주는 철학 에세이’라는 통념 또한 깬다. 장재형의
《마흔에 읽는 니체》는 우선 그런 책이라고 말하자. 저자는 수미일관 니체가 삐딱한 철학자 아니요, 자신의 책 또한
사탕발림으로 독자를 적당히 위로하는 종류의 에세이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마흔에게는 앞으로도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134면)는 희망을 준다. 이 대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저자는, “마흔이 넘어야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한다. 그런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수록 새로운 삶이라는 기회를 쉽게 단념하게 된다.”(21면)는 점에서 대상 독자를 40대로 잡았다. 인생 한번 겪어본
사람들과 진심 인생을 얘기해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을 향해, “그럴 때일수록 새로운 일을 시도하라. 판에 박힌 낡은
삶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보라. 진정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24면)고
권한다.
‘내려놓는 자리’ 거기서 저자는 니체의 ‘신의 죽음’을 화두에 올린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이란 염세가 아니라
‘판에 박힌 낡은 삶’에 내리는 사형 선고이다. 판에 박힌 교회에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처럼, 우리 또한 40년을 걸치고 와
이제 낡아버린 삶에 죽음을 선고해야 한다. 니체가 실용서의 틈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우연이 자라 운명으로 이어지는 필연
장재형의 《마흔에 읽는 니체》가 지닌 미덕은 저자 자신 니체에 대한 깊은 연구에서 출발한 책이라는 점이다. 그저 좋아서
읽고 공부한 니체였는데, 어느 날 니체로부터 40대에게 전할 말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 그래서 니힐리즘, 초인, 힘에의 의지,
가치의 전도, 아모르파티, 영원 회귀 같은 핵심적인 개념을 쉽게 설명하였다. 신의 죽음처럼 우리의 지난 40년을 죽이지만,
끝내 염세에 빠지지 않자면 초인의 힘을 갖추어야 하고, 영원히 운명을 사랑할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까지의 기본 무장이
니체 스타일의 인생 설명서이다.
차분히 기초를 다졌다면 이제 하나하나 풀어야 할 문제에 직면해 볼 차례이다. 무엇보다 2장에서 운명을 설명한 대목이 매력적이다.
누구보다 니체에 정통했던 질 들뢰즈가, “필연은 우연을 긍정할 때 그 우연에 의해서 긍정된다.”고 한 말을 활용하여, 니체가 제시한
‘신들의 주사위’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
"
사람들이 하늘로 던진 주사위는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어떤 눈이든 나올 수 있다. 또한 6이라는 숫자를 원한다고 해서 꼭 주사위의
눈이 6이 나오게 할 수 없다. 즉 사람들이 던진 주사위가 뒤집히는 하늘은 우연의 영역이다. 그리고 주사위가 떨어져 1부터 6까지
하나의 숫자가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지는 필연의 영역이다.
- 143면
니체의 운명은 체념적 결정론이 아니다. 주사위가 날아 어떤 눈을 보여줄지 그것은 우연이지만, 어느 숫자든 반드시 하나는 나온다는 필연,
그 필연에서 운명은 시작한다. 그런 운명은 고이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변화가 모여 운명이 된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만 할 것인가? 아니다. 니체는 초인을 말한다. 니힐리즘이 아니라 극복을 말한다. 우연히 받아든 숫자를
운명으로 알면 필연이다. 필연의 운명(fati)을 사랑(amor)하라, 아모르파티! 그러면 그 숫자에 그치지 않는 초인의 길로 나서게 된다.
이 정도 되니 니체를 실용서의 주인공으로 부를 만하다.
신의 주사위에서 나는 어떤 숫자를 받아들었을까? 받아든 숫자가 마음에 드는가? 아니, 그 숫자의 의미를 잘 파악하였는가? 니체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마흔 살에 우리는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남았노라 희망을 가지게 된단다.
장재형의 《마흔에 읽는 니체》에서 읽을 니체는 더 많다. 그런데 독자는 그가 말하는 운명 앞에 오래 시간을 끌게 될 것이다. 그
정체를 파악하는 시작이 우연이며, 반드시 필연으로 이어진다는 설명 앞에 새삼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이를 생활 속으로 끌고 와
쉽게 설명하려 한다. “시간이 흐른 뒤 과거에 일어났던 우연한 일들을 돌아보면 아무리 사소한 것, 사소한 만남이라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라든지, 더욱이 “작은 변화가 모여 운명이 된다.”(142면)는 대목이 그렇다.
독서 Guide
1.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을 설명해 보자.
2.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가?
3. 초인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천되는가?
책정보
마흔에 읽는 니체
저자장재형
출판사유노콘텐츠그룹
발행일2022.09.01
ISBN9791192300245
KDC165.77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