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PICK 1 요약
1. 19세기 분류학자의 일생과 그를 추적하는 한 과학 기자의 삶이 교차하는 신선한 전개
2. 우리 곁에 생생히 존재하는 우생학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의 환기
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낯선 과학이론을 통해 생각해보는 삶의 비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을 사랑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삶에 대해 양가감정이 들기 마련인 것 같다. 나는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의
우주, 그 안에서도 너무 작아 좌표조차도 찍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은 삶의 버거움을 덜어내 주지만, 한편으론
허무를 동반한다.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우리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이 너무나
명확하다. 거기에 압도당하면 남는 것은 ‘혼돈’뿐.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 살려면 어떻게든 저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아야 한다. 작은 단서라도! 과연 어느 ‘티끌’이 이 거대한 질문에 답하겠다고 나설 것인가.
여기 나름의 답을 찾고자 애쓴, 용감한 책 한 권이 있다. 얼핏 보면 책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것은 시적인 은유인가? 아니면 과학계의 새로운 이론인가?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다소 낭만적인 부제를 봐서는 전자인가 싶다가도 과학 기자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니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갸웃거리며 첫 장을 넘기면 미국 전역에서 이 책에 보내온 궁극의 찬사가 무려 네
쪽에 걸쳐 쏟아진다.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쯤 되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읽어나가는 수밖에는.
삶은 여전히 ‘혼돈’
저자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가족여행에서 맞닥뜨린 ‘혼돈’에서 시작된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일곱 살
아이의 물음에, 과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잔인한 진실을 여과 없이 알려준다.
의미는 없어. 넌 중요하지 않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어.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시간은 흐르고 어른이 되었지만 저자의 삶은 여전히 ‘혼돈’이다. 누구나 그렇듯,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자신의 잘못으로 연인과의 미래를 어그러트리고 무너져가던 저자는 19세기에 활동한 한 분류학자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당시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의 약 20%가 이 정력적인 분류학자와 그 제자들의
공이라고까지 말해지는 인물이다. 믿기 어려운 이러한 성과는 ‘희망과 의지의 화신’이 평생에 걸쳐 모은 연구 표본
대부분을 대형 화재와 지진으로 인해 두 번이나 일시에 날려버리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데이비드란 인물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을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서.
답을 찾기 위한 여정
기자 출신답게 저자는 각종 논문과 저서, 심지어는 동화나 대학 박물관 카탈로그까지 꼼꼼히 뒤져가며 이
전설적인 분류학자의 내면을 추적한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19세기 분류학자의 일생, 그리고 그를 추적하며 조금씩
변화해간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베틀의 씨실과 날실처럼 섬세하게 교차한다. 회고록과 전기라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건조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믿을 수 없이 드라마틱한 전개에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유의 유머와 재치, 아름다우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 덕에 긴 시간을 배경으로 폭넓은 내용을 다루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다만 마음의 준비를 좀 해둘 것. 글이 쉽게 읽히는 것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심오함은 별개다.
미리 말해두건대, 이 작은 책이 품은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데이비드는 저자가 찾는 ‘삶의 모델’이 아니었다. 저자는 발견한다. 데이비드가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절망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티끌 주제에)
스스로 운명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을 기만해야 했다는 사실을. 그 기저에는 혼돈을 너무나 두려워했던 한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기기만은 ‘의심 없는’ 자기 확신으로 이어졌다. 분류학자로서 자연 속에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가 있다고 믿은 데이비드는 결국 우생학이라는, 인류의 가장 잔인한 발상 중 하나를 받아들이며 파멸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결국 다시 ‘혼돈’이다. 우주의 티끌보다 못한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의 끝에서 저자는 우생학의
희생자들과 만난다. 그 행보를 따라 독자는 2022년,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 곁에 존재하는 우생학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이 책은 사회 고발적 성격까지도 갖춘다. 아이러니하게도,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던져준 건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여겼던 데이비드가 아닌, 그가 ‘부적합’하다고 낙인찍은 우생학 희생자들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깨닫는다. ‘나’는 틀릴 수도 있는 존재라고. ‘나’에 대한 의미 부여가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흐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데이비드 사후에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은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실에 가차 없이
쐐기를 박는다. 데이비드가 평생을 바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던 ‘어류’는, 사실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어류라는 개념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이 이론이 낯설고 혼란스럽다고? 당연하다.
그런 독자들이야말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물고기’가 있으리라. 저자는 말한다. 그 ‘물고기’를 놓아버리라고, 인생이란 혼돈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직관과 고정관념을 포기하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따스하게 감싸오는 어깨동무 같은 마지막 챕터를 읽으며, 내가 왜 이 책에 흠뻑 매료되었는지 깨달았다.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것’이 바로,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포기할 때, 삶은 또 어떤 멋진 방향으로 흘러갈까?
내가, 또 당신이 놓아주어야 하는 물고기는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욕구를 강렬하게 느끼며 살그머니 책장을 덮었다.
독서 Guide
1.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저자가 발견한 단서를 위대한 생물학자 다윈이 말한 ‘다양성과
상대성의 원칙’과 연관 지어 설명해 봅시다.
2. 저자에게 ‘물고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책을 읽고 찾아 봅시다.
3. 나에게 ‘물고기’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자유롭게 생각해 봅시다.
책정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룰루 밀러
출판사곰출판
발행일2021.12.17
ISBN9791189327156
KDC490.99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을 돕고(Help) 숙식을 제공받으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