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북 요약
1. ‘피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관한 ‘현장답사보고서’
2. ‘테러’와 ‘보복’의 현장에서 읽은 팔레스타인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3.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본 중동평화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끝나지 않는 전쟁, 끊이지 않는 통곡
이스라엘 쪽 1,400명 이상 사망, 4,629명 부상, 100명 이상 피랍, 팔레스타인 쪽 23,000명 이상 사망, 32,000명 부상, 123,000명 난민……. 2023년 10월 7일 개전 이후 2024년 1월말 현재까지 개략적인 피해 현황이다(위키백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참조). 이 숫자만 보아서는 팔레스타인 지역, 특히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 지역의 참상을 실감하기 어렵다. 길이 41킬로미터, 폭 10킬로미터,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과 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감옥’ 가자 지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마스는 어떤 조직이며 왜 이스라엘을 공격했는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씨를 말리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음에 물음이 이어진다.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꿈에도 그리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지만 2000년 이상 이 지역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건국은 대재앙(Nakba)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피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강압적 군사 통치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일컫는 인티파다(intifada, 1차 1987~1993년, 2차 2000~2005년)가 그러하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러하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의 저자 김재명은 여섯 차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현지를 오가면서,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 등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21세기의 화약고’라 불리는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한다. 제1부 ‘좌절과 분노의 현장’에서는 주로 가자 지구의 참혹한 현실을 읽을 수 있으며, 제2부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에서는 이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 역사의 흐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제3부 ‘중동, 미국, 그리고 평화의 전망’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착 실태를 목격할 수 있다.
테러인가 저항인가
한국인의 십중팔구는 이슬람권의 무장단체 하면 ‘테러’를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이슬람 담론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탓에 서양의 시선으로 이슬람 세계를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하마스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 ‘테러’의 형식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테러가 왜 일어나는가이다. 익히 알다시피 서양과 일본 등 제국주의자들은 피식민지 해방운동을 ‘테러’라 명명했다. 이스라엘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원조를 등에 업은 무력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삶터를 초토화하고 생명을 말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벽 설치와 정착촌 건설로 팔레스타인인의 숨통을 옥죄는 행위야말로 ‘국가 테러’다. 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의 행위는 ‘테러’가 아닌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이스라엘에 의해 고향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430만 명에 이른다. 가자 지구에 96만 명, 서안 지구에 69만 명, 요르단에 178만 명, 레바논에 40만 명, 시리아에 42만 명이 흩어진 채 갇혀 살고 있다. 여기에 게토와 다를 바 없는 거대한 분리장벽을 상상해 보라.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고 난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가자 지구에 있는 어느 난민촌의 풍경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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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시내 바닷가에 자리 잡은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의 이름은 해변 난민수용소다. 달동네처럼 보이는 이 수용소는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란 독립국가가 만들어진 직후인 1950년에 조성되었다. 6만 명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비좁은 주거공간, 위생시설과는 거리가 먼 화장실 등의 고민을 안고 있지만, 골목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은 해맑기만 하다. 수용소 한켠에는 2000년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과정에서 생겨난 희생자들의 사진을 모신 빈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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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관점 또는 시각이다. 1948년을 전후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은 시오니즘의 깃발 아래 ‘야훼가 점지한 땅’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고, 미국의 대대적인 후원 아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나아가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을 난민으로 내모는 한편 민간인 학살 등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말로 강제점령이자 야만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점령자의 발아래 순순히 무릎 꿇고 굴종의 삶을 선택한다면 또 모르지만, 저항을 통해 자존과 자유를 되찾는 것이 ‘야만적인 테러’가 될 수는 없다. 이스라엘 수상을 지낸 강경파 시오시니트 메나헴 베긴도 영국군에 맞선 ‘극렬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가. 식민지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아도 하마스의 투쟁을 ‘테러’라 규정해버리면 수많은 항일 무장독립투쟁 역시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테러’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히틀러에게 배운 교훈?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국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 읽어내는 이 책에서 저자가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은 “인종 말살 정책을 펼쳤던 나치정권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히틀러에게 배운 교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이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등 수많은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를 보면 독일군 병사는 ‘피에 굶주린 냉혈한’으로, 유대인은 ‘순한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상투적인 할리우드식 홀로코스트 영화 문법이다. 할리우드를 독점하고 있는 유대계 자본과 영화인들은 이런 영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함으로써 유대인은 희생양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나치독일에서 겪었던 유대인의 고난을 상품화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유형무형의 이득을 챙긴다는 뜻에서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다. 전쟁과 정복으로 얼룩진 폭력의 세계사에서 유대인들만큼이나 고난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많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난과 희생을 막대한 금융자본과 지식자본을 동원해 특권화 한다.
이것이 문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보여준 오만과 전횡은 ‘당한 자는 정당하다’는 기묘한 논리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당한 고통은 유례가 없을 터이니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취하는 어떤 행동도 정당하다는 논리 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의 삶터를 거대한 ‘21세기의 중동판 게토’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가했던 수법을 그대로 배워 분리장벽 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두고 이동의 자유를 막아버린다. 사방이 가로막힌 가자 지구는, 다시 말하거니와, 거대한 게토 아니 거대한 감옥이다. 이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에 시달리고, 갈증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다. 이런 곳을 또 다른 ‘가스실’이라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저자에 따르면 중동의 이슬람 지식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치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내 민족만 잘났다고 타민족을 압살해선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기는커녕, 나치의 악랄한 수법들을 그대로 배워 중동 땅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217면) 나아가 저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 테러’이자 ‘범죄’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히틀러로부터 배운 것은 조직적이고 집요한 ‘국가 테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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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저지르는 테러의 이름은 무엇인가. 민간인 주거지역을 마구잡이로 폭격함으로써 주변 이슬람 사회에 공포(terror)를 퍼뜨리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 테러’에 다름 아니다.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프랑코의 스페인, 전두환의 대한민국처럼 국가공권력을 동원한 마구잡이 폭력이 오늘의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국가 테러다.
- 218-219면
머나먼 평화의 꿈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와 이에 대한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세력의 투쟁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벨푸어 선언, 맥마흔-후세인 협정, 오슬로 협정 등 이러저러한 외교적 문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의혹과 불신과 증오, 나아가 혼란과 폭력을 조장하곤 했다. 잠정적인 평화도, 노벨평화상의 효과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지금 목도하고 있듯이, 또 다른 폭력이 이 땅을 고통과 신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폭력을 통한 저항이 아니고서는 삶터와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의 눈빛을 떠올리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비애를 금할 수가 없다.
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의 씨앗은 바로 이스라엘의 강한 군사력에 바탕한 식민통”(200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마스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 민간인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전 손택은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이미지만 볼 뿐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의 고통은 잘 모른다”고 했지만, 예민한 감성을 지닌 이들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경험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이들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만 고대하는 것은 아니다. ‘배신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평화의 음악을 전달하려 애쓰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있고,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공존을 호소하는 작가 아모스 오즈가 있으며, 베냐민 네타냐후를 위시한 극우 정치 세력에 저항하는 이스라엘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있다. 유대계 미국인의 반이스라엘 시위도 기억해야 한다.
언제쯤이나 이곳에 평화의 햇살이 깃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답은 분명하다. “이스라엘군의 불법적 팔레스타인 점령이 끝나지 않는 한 중동 평화는 어렵다.”(354면) 미국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동시에’ 평화를 지향하는 중도적 정권이 들어서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숙의할 수 있다면 또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이 ‘숙명의 트라이앵글’(노엄 촘스키)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참담한 현장의 기록과 함께 세계사적 맥락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를 조감하고 있는 이 책은 그 향방을 가늠하면서 실낱같으나마 평화의 꿈을 함께하는 데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독서 Guide
1. 팔레스타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2. 미국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책정보
팔레스타인의 눈물
저자김재명
출판사미지북스
발행일2019.05.10.
ISBN9788994142968
KDC918.63
서평자정보
정선태 ㅣ 국민대 교수
대학에서 한국 현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 작품을 길잡이 삼아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읽고 전하는
일이 취미이자 직업이다.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쇼와
육군』,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권의 번역서를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