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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가 아니라 복수여야

- 정보라, 《저주토끼》

작성일: 2024.01.21.

PICK1 요약

1. 가진 자의 횡포

2. 꾸준한 그리고 잔인한

3. 저주냐 복수냐

저주용품을 만드는 집

미국 서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별별 책이 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부두교의 저주 키트였다. 흑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부두교 저주는 흑주술의 일종이다. 그 세트는 헝겊 인형에 저주하는 자의 이름을 써서 바늘로 찌를 수 있도록 앙증맞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버젓이 예쁜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어 팔리고 있었다. 과거 우리가 제웅에다 저주하는 자 이름을 쓰고 몰래 그의 집 주변에 숨겨 나쁜 일이 생기기를 기원했다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작품 《저주 토끼》는 집안 대대로 저주용품을 만드는 집에서 토끼를 이용해 보복한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다. 기괴하며 환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집안의 내력에는 항상 금기가 있는 법. 개인적인 용도로 저주할 수는 없지만 저주토끼 하나만은 할아버지의 친구를 위해 만든다. 그 토끼 모양의 전등은 장난감 같지만 결국은 양조장 부잣집을 망하게 했던 횡포를 부린 큰 회사 사장네 집을 파멸하게 만든다. 선물처럼 전달된 저주토끼는 창고로 옮겨지고 사람이 보지 않는 밤만 되면 종이와 서류 등 모든 기록을 갉아 먹었다. 역사가 사라짐은 곧 존재 이유의 소멸이기도 하다. 회사는 모든 근거자료가 사라지게 되니 큰 곤욕을 치르게 되고 이 토끼는 결국 그 집안 손자의 뇌까지 갉아 먹게 된다는 끔찍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인과응보에서 열외가 되는 강자

인간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회사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누구나 원하는 욕망의 기대치는 다르고 그것을 성사하기 위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다투게 되어 있다. 그 결과 강자는 대개 약자를 이긴다. 그러한 강자의 횡포에 의해 약자들은 먹힌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도 그런 것이다. 대개 그런 사건의 결말은 강자의 억압에 의한 억지 화해와 억지 평화로 귀결되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는 망각의 매커니즘이 철저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무기력한 약자가 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저주’이다. 상대방이 안 되기를, 그가 망하기를, 그가 크게 처벌받기를 기원하는 것이지만 기원은 힘이 약하다. 효력을 확인할 길도 없다. 공자 시절에 최고의 악인인 도척조차도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못된 짓을 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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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 훔치러 들어갈 때, 무얼 훔칠지 바로 아는 것이 성(聖), 앞장서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훔쳐도 안전한 곳을 터는 것이 지(智), 장물을 정당하게 분배하는 것이 인(仁) 이라 이것을 갖춰야만 큰 도적이 된다. 도척(盜跖).
 


오만 못된 짓 하는 자들이 계속 잘 사는 걸 보면 과연 이 땅에 정의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시대의 맥락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가해는 가능해도 보복은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보복하려 해도 용서하라든가 화해하라든가 일방적인 강자의 논리로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저주토끼의 복수인데 과정은 조용하며 결과는 잔인하다. 게다가 가장 귀여운 동물인 토끼가 가장 잔인하고 꾸준하게 저주의 대상을 파멸시키고 있다.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저주하는 약자

양극화가 가속하는 현시점에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것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범세계적이다. 이 갈등의 끝은 어디일지 두렵기 짝이 없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갈등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누군가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그것이 이 작품이 주는 어둡지만 부인할 수 없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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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산다면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죽어도 죽지 못한 채 달 없는 밤 어느 거실의 어둠 속에서 나를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이다.
 

- 37면


오히려 저주의 효능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닐까. 내가 그에게 저주했으니, 나의 억울한 마음과 한이 풀리는 선에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저주는 복수까지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와 저주는 다르다. 작품의 이름을 복수 토끼로 해야 했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강자들의 횡포가 횡행하고 있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미국에서 만난 그 부두교 저주키트를 재미 삼아 사려다 나는 그만두었다.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를 저주하는 용도로 쓰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미운 상대를 저주함으로써 자신의 눌렸던 마음을 푸는 용도가 아니었을까?


독서 Guide

1.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갈등 양상을 파악하며 읽어 봅시다.

2. 누군가를 저주하고자 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며 읽어 봅시다.

3. 복수와 저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생각하며 읽어 봅시다.

책정보

저주토끼

저자정보라

출판사래빗홀

발행일2023.04.13.

ISBN9791168340947

KDC813.7

저자정보

고정욱 ㅣ 동화작가·문학박사

고정욱 ㅣ  동화작가·문학박사 이미지

장애를 아동문학에 투영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을 포함, 총 340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과거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이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