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난’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 재활용‧미세플라스틱‧탈육식 등 다각도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텀블러 지참하고 비닐봉지 사용 줄이자는 말은 너무 들어서 이젠 외울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 옷, 그러니까 패션만큼은 상대적으로 열외다. ‘옷’과 ‘환경’이라는 단어를 묶어 당신은 얼마나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가? 패스트 패션이 문제라고 듣긴 했지만 자라(ZARA), H&M에서 옷 안 사니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을 당장 펼쳐보자. 소비지향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며 옷이란 걸 걸치고 있는 이상,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진실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책은 저자의 추억과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젊은 여성 직장인으로서 기쁠 때는 기뻐서 옷을 사고 슬플 때는 슬퍼서 옷을 샀던, 스스로 ‘맥시멀리스트’였다고 소개하는 저자이기에 탈쇼핑 선언한 지 5년 차란 말에 더 눈길이 간다. 한참 꾸미고 싶을 나이지만, ‘진실’을 알고 나서는 도저히 새 옷을 살 수 없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첫 장 ‘옷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부터 돌직구가 날아오는 것 같다. 저자는 다른 말 할 것 없다는 듯이 곧바로 의류산업이 유발하는 각종 환경오염 수치부터 짚는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섬유폐기물, 물 소비량, 탄소배출량…. 옷 하나하나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원체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의류 ‘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치가 주는 충격은 독자가 좁은 시야를 산업 단위로 확장시켜 사고하게 한다.
어마어마하게 커서 금방 무감해지기 쉬운 숫자를 머리에 쏙 박히게 비유 들어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글’을 고민한 결과이리라. 또한 훈련된 에디터답게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근거자료 또한 풍부하게 제시한다. 저자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뿐만 아니라, 초록수거함에 넣어진 옷들이 최종적으로 향하게 되는 개발도상국의 지옥도, 세탁 시 옷에서 떨어져 나가 바다로 흘러가는 미세플라스틱 등도 꼼꼼하게 짚는다. ‘패스트’한 속도에 맞추기 위해 착취당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맞이하는 개발도상국 사람들(특히 아동‧여성)은 말할 것도 없다. 각종 보고서와 논문, 신문 기사, 연구 결과와 인터뷰를 부지런히 훑어 찾아낸 ‘팩트’가 글 전체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옷의 물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심어준다는 점인데, 핵심은 옷 또한 각종 플라스틱의 혼합이라는 것이다. 단추 등 부속품만이 아니라 원단 자체가 석유에서 뽑아낸 화학섬유인 경우가 많아, 옷은 말 그대로 혼합 플라스틱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재활용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버려지면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어딘가를 떠돌 뿐이다. 그럼 순면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면 그게 왜 순진한 생각인지 책으로 확인하길.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을 생경하게 보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옷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마지막을 맞이할까. 내 옷장의, 당신 옷장의 수많은 옷은?
패션계의 진실의 빨간약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재점검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옷에는 그 청진기를 대기가 쉽지 않다. 옷을 사는 행위가 우리의 다양한 욕망, 그러니까 심리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옷을, 옷을 사는 행위를, 옷장을 들여다보는 건 어떤 면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어서 저자의 시도는 더욱 용감하고 치열하게 느껴진다. 2~3장에서 저자의 질문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 옷을 ‘정말’ ‘당신이’ 원해서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비판이 아닌 고백으로부터 시작되는 질문이다. ‘이성을 잃은 쇼핑좀비’는 저자 자신의 과거이기도 하다. 합리적 소비자라고 자위하며 싼 옷을 껌 한 통 사는 것만큼이나 쉽게 사들이고 입질 않아 처박아둔 생생한 경험담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는다.
저자는 강연에서 학생들과 5why 기법으로 쇼핑을 하는 심리적인 이유를 분석해 본 이야길 꺼내놓는데, 주목할 부분은 결국 욕구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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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사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따라가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욕구를 내재하고 있는데, 쇼핑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당초 우리가 해소하고자 한 욕구는 어떻게 됐을까? 옷이 정말로 우리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주는가?
- 90면
오히려 저자는 우리가 옷을 구매하는 이유가 ‘싼 가격’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냐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심지어 3장에서 폭로하는 것은 ‘유행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많이 사서 유행하고, 유행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사게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유행이라니?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이 장인데, 패션디자이너를 꿈꿨던 저자가 옷에 대한 진한 애정을 그만큼이나 진한 비판 정신으로 바꾸어 들여다본 패션산업의 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책은 패션은 점점 더 사라지고 산업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주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옷을 구매한다는 생각은 완전한 허위임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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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략) 유행은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다. 또 패션산업의 사이클은 소비자의 참여로 완성된다. (중략) 사서 팔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놨기 때문에 반드시 팔려야 하는 것이다.
- 125면
결론은 ‘사지 않아야 한다’
이 밖에도 옷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뒤집고 끌어올리고 확장시키는 진실들이 이 책에 가득하다. 그렇기에 결론은 ‘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국가지도자까지 나서서 소비를 장려하는 판국에 ‘탈소비’를 외치는 한 젊은이의 외침이 가냘프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건강한 상태로 지속되지 않으면 패션산업도 건재할 수 없다.”는 대전제에 누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친 듯 돌아가는 이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은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의류산업은 하루라도 빨리 대전환을 맞이해야 한다. ‘그렇다면 경제는?’이란 걱정이 여전히 남는다면 걱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어보자.
책에는 ‘스타일도 환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중고거래하기, 부모님 옷장 뒤지기, 옷장 정리하기 등 실용적인 노하우(9장)도 담겼다. 책의 서두에 실린 실물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더 이상 옷을 사지 않는 저자의 스타일은 누구보다 ‘힙’하다(진짜 옷 잘 입는다). 무엇보다 그 ‘힙스러움’은 옷과 멋을 사랑했던 저자가 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진정한 나만의 멋을 찾는 가슴 두근거리는 여정을 시작해보자.
독서 Guide
1. ‘옷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나누어 봅시다. KBS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를 없다〉를 함께 감상하면 좋아요.
2. ‘유행은 만들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봅시다.
3. 의류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상상해봅시다.
책정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이소연
출판사돌고래
발행일2023.11.01.
ISBN9791198380920
KDC539.98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과(Help) 숙식을 교환하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