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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세계사

- 김병연,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작성일: 2024.01.14.

히든북 요약

1. 문화유산의 개념과 기원.

2. 예술품의 역사와 맥락, 출처를 살피는 것의 중요성.

3. 문화유산 약탈과 환수 과정에서의 논쟁.

#1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세계사’로서 약탈문화재에 관련한 국제법과 문화 관련 법 분야 전문가들이 오래 기다려온 귀한 책이다. 그런데 책 출간 1주일 전 내려진 고려 불상 반환의 대법원 판결이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기막힌 타이밍, 이 책은 일간지의 북 섹션을 도배했고 일반인의 관심을 크게 모았다.



#2

2012년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금동불상을 절도하여 국내에 들여온 절도범들이 붙잡혔고 불상은 압수되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됐다. 서산 부석사는 이 불상이 본래 부석사에 있었는데 고려 말경 왜구가 약탈해 그간 일본에 있었던 것이었다면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불상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방법원은 원고 주장을 받아들여 불상을 부석사에 인도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항소한 2심에 일본 관음사가 피고 대한민국의 승소를 위해 보조참가했는데, 대전고등법원은 1심을 깨고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어서 대법원은 2023년 10월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23다215590 판결). 조만간 일본 관음사가 요구하면 대한민국은 이 불상을 일본에 반환할 것으로 보인다.

외규장각의 조선왕조 의궤는 프랑스 도서관에 있어 그 반환을 둘러싼 한불 간 외교 마찰이 있은 지 오래됐는데, 부석사 불상은 경위야 어찌 됐건 현물이 국내로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판결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논란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벌써부터 대법원판결을 비판하는 한 외국변호사와 옹호하는 서울대 명예교수 간 찬반 논전이 크게 붙어 법률신문에 지상 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www.lawtimes.co.kr).



#3

유럽의 전쟁사는 곧 예술품 약탈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예술품 보호의 역사이기도 하다(46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은 예술품에 관한 양면성을 지닌다. 구체제(앙시앙 레짐) 파괴라는 점에서 봉건성을 지닌 예술품은 폭정시대의 산물이므로 파괴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는 한편, 일반 대중의 문화 향유를 위해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해 보호의 필요성이 있기도 하다. 예술 관점에서 보면 예술품의 ‘해방’이 되는 동시에, 루브르 박물관으로서는 혁명 정신의 선전장(場)이 되는 것이다(46-47면). 이 점에서 전쟁 중 약탈과 프랑스로의 이전이 정당화됐다. 나폴레옹 정복기에 파리로 이전된 유명한 예술품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가나의 혼인 잔치〉(파올로 베로네세, 1563), 로마에서 약탈한 〈라오콘 군상〉(BC 150 ~ BC 50, 로도스섬), 바티칸 소장 〈하이델베르크 장서〉를 들 수 있다. 이 중 〈라오콘 군상〉은 나폴레옹 이후 왕정복고를 위한 이른바 ‘빈(Vienna) 체제’에 따라 로마로 되돌려졌고, 〈하이델베르크 장서〉는 약탈지인 바티칸과 원소재지인 하이델베르크를 놓고 논란 끝에 하이델베르크로 반환되었다. 약탈 문화유산의 원소재지 반환을 뜻하는 ‘하이델베르크 원칙’이 탄생한 순간이다(50-54면).

세계 1, 2차 대전은 문화재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히틀러는 이른바 ‘네로 명령’이라 불리는 점령지 내 문화재 파괴 명령을 내린 것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이런 일은 연합국에 의해서도 자행됐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드레스덴 성모 성당을 비롯한 문화유산에 대한 연합국의 대폭격이 말해준다(69면). 이와 같은 잔인한 세계 대전 이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문화유산’이란 용어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4년 헤이그 협약이다. 전쟁으로부터 희생을 방지하고 최소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국제인도법의 영역으로 취급된다(73면).



#4 우티무트 원칙 – 식민지 문화유산의 해법

동토의 섬, 그린란드로 알려진 칼라알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는 덴마크가 오랜 기간 지배해온 식민지였다. 원주민 이누이트(Inuit)의 문화유산 환수에 대한 덴마크와 칼라알리트 누나트 간의 협약은 ‘환수’를 뜻하는 이누이트 언어 ‘우티무트(Utimut)’ 원칙으로 결실하였다. 협상 과정의 걸림돌은 덴마크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국외반출을 금하는 덴마크 법률과 칼라알리트 누나트가 이를 적절히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264면). 이는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일본의 황실박물관 등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 지배를 당했던 국가의 문화재 환수요구를 거절하는 공통된 사유이기도 하다.

식민 지배 기간 중 반출된 문화재는 식민지 국가의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으로서 반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모범을 확립한 것이 우티무트 원칙이라 할 수 있는데, 이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 덴마크 정부의 적극적 해결 의지, 둘째, 정치적 관점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겼다는 것, 셋째, 문화유산 반환에 원주민인 이누이트의 인권이 핵심 가치였다는 것이다(258-270면). 한일 간의 약탈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에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5 애국심으로 환수를 추진하는 〈모나리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모나리자〉를 둘러싼 반환 논의는 더욱 극적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그를 숭모한 프랑스 국왕 프랑수와 1세(재위 1515-1547)가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청해 완성한 것이다. 프랑수와 1세는 다빈치 사후 그의 상속인인 살라이에게 거액을 주고 〈모나리자〉를 구입하여 궁전에 있다가 오늘날과 같이 루브르에 전시된 것이다.

그런데 〈모나리자〉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11년 도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년 만에 잡힌 범인은 페루자라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 그는 도난 작품을 팔려다가 체포됐고, 작품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페루자는 재판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약탈한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고, 애국심에 감동한 이탈리아 배심원단은 페루자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했다. 이후 페루자는 이탈리아에서는 ‘고마운 이탈리아인’으로,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의 돈키호테’로 기억되고 있다 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우피치에서 2주 남짓 전시한 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려주기로 결정했고, 오늘날 〈모나리자〉가 루브르에 있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반환 결정은 〈모나리자〉가 프랑스에 있게 된 과정에 어떤 불법이나 부당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약탈문화재의 반환을 위해서는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하고, 반출 과정의 불법・부당성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271-286면).
부석사 고려 불상 사건에서도 고려 시대 때 왜구가 불법적으로 반출한 증거가 없다고 한 항소심 판결은 이런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6 도굴품 환수

도난과 도굴은 어떻게 다를까? 도난은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재물을 빼앗는 것으로서 개인 간 사법(私法)상 문제이며 형법의 절도죄로 규율한다. 도굴은 매장 문화유산을 사전에 허가 없이 절취하는 것으로서 국가와 개인 간 공법(公法)상 문제인데, 미발견 문화유산의 도굴을 방지하는 법제가 정립되지 않은 경우에 처벌할 수 없다는 논란이 있다. 매장문화유산의 국유화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은 법적 허점을 노린 도굴범들은 ‘누구도 소유한 적이 없기 때문에 도난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빠져나가려 한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관련 사건에서 채택한 이른바 ‘맥클레인 법리’는 해당 유산이 소재국 영토 내에서 발견되었고, 매장 상태에 있었으며, 해당 국가의 재산법이 미국 헌법의 ‘적법절차의 요건’(due process)에 위반하지 않을 정도로 분명해야 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287-301면).

나라의 주권이 흔들려 열강의 침탈 무대가 되었던 구한말, 강토에 매장된 수많은 문화유산이 도굴되어 국외 반출됐던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하겠다.



#7 기원국 논쟁

‘기원국’ 논쟁은 문화유산에 대한 국가 간 갈등 해결을 열린 결말로 만들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유네스코 협약(1970년)은 각국의 문화유산을 결정하는 요소로 창작 국가, 발견 국가, 획득 국가, 자유로이 합의된 교환, 증여 또는 합법적 구입 등 여러 요소에 의해 기원국이 복수로 인정될 수 있음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개 이상의 국가가 문화유산이 기원국이 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바빌론 유적에서 발견된 〈키루스 실린더〉, 〈함무라비 법전〉, ‘신라 황금 보검’으로 불리는 〈경주 계림로 보검〉 등이 그 예인데, 국제사회는 ‘기원국 기준의 명확한 설정’이 아니라 ‘분쟁의 관리’ 측면에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즉 기원국을 결정하는 우선순위가 없으며, 당사국간 협상을 하거나 외부 조력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상, 334-346면). 복잡한 법적 논리가 있는 것 같아도 결국 법(조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국제문화유산법을 발전시켜온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조약은 ‘조약 불소급원칙’이란 보호막 때문에 20세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작동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도 하다(230면).



#8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라고 하기에는 국제법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평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일반인도 정독하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 저자가 매우 공들여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환수’에 관한 국제법적 정의와 설명은 원상회복(restitution), 반환(return), 본국 귀환(repatriation), 동종물에 의한 원상회복(restitution in kind) 등으로 구분하여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해 놓고 있다(234-235면).

문화유산에 관한 국제분쟁의 많은 사례를 망라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이 책은 전문가들에게도 귀한 길잡이 또는 정보제공 자료로 환영받을 만하다. 다만, 전문가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참고문헌 제시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가독성을 위해 본문주 또는 각주(脚注)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선해할 수 있으나, 전문학술서로의 가치를 생각했다면 장별 미주(尾注) 정도는 붙이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다.



#9

이 책의 제19장(장소 특정적 미술과 창작자의 권리)은 저작권법을 전공하고 관련 논문을 써온 나의 눈을 크게 뜨게 했다. 대치동 포스코 빌딩 앞에 있는 조형물 〈아마벨〉을 둘러싼 논란(204-208면), 〈도라산역 벽화〉를 둘러싼 법적 분쟁(209-212면), 뉴욕 맨해튼의 세라의 조형물 〈기울어진 호〉를 둘러싼 분쟁(215-217면), 뱅크시 벽화 논란(220-222면),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있는 조형물 〈황소상〉과 한때 그 앞에 놓여 있었던 조형물 〈두려움 없는 소녀상〉을 둘러싼 논란(223-227면)은 모두 장소 특정적 예술(site specific arts)에 관한 저작권법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화유산에 관한 국제분쟁을 다룬 이 책과 다소 결이 다른 이 꼭지가 들어 있는 것은 저자의 풍부한 관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제19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저작권분쟁 사례는 내가 쓴 논문(〈소유는 예술가의 혼(魂)마저 지배할 수 있는가?-도라산역 벽화 판결의 여운〉, 《민사판례연구》39, 민사판례연구회, 2017; 〈저작권법에서 본 백남준 비디오 아트―작가의 동일성유지권과 소유자·큐레이터의 해석 간 충돌〉, 《계간 저작권》139, 한국저작권위원회, 2022)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오는데, 우연의 일치라 생각하고 싶다.


독서 Guide

1. 문화유산의 개념을 살펴보고, 그 범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2. 문화유산 약탈과 환수의 역사와 관련한 국내의 사례를 떠올리며 읽어 봅시다.

책정보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

저자김병연

출판사역사비평사

발행일2023.10.24.

ISBN9788976965820

KDC909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