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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편의 기묘한 임상 사례를 통해 인간다움과 삶을 사유하다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작성일: 2016.08.17

PICK1 요약

1. 고전적 신경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례와 주제 선정으로 새로운 과학의 지평을 제시함

2. 개별 환자의 서사에 주목하는, 병에 대한 내러톨로지적 접근

3. 병과 장애를 사유하며 얻을 수 있는, 인간다움과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환자를 이해하던 의사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지만 묘하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이 몇 있는데, 8년 전 세상을 떠난 영국 작가 올리버 색스가 그중 하나다. 책에 드러난 그의 생각과 관점에 매료되었고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고 나선 더욱 그랬다. ‘불완전성으로부터 오는 편안함’ 때문일까. 스스로 불완전성을 경험했기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환자들을 바라보았던,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 거구의 신경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병을 통해 인간다움과 삶을 질문하고 탐구한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이다.



새로운 과학의 지평을 제시하는 주제와 독특한 사례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선‧후천적으로 뇌신경에 이상이 생겨 독특한 증상을 갖게 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령 표제작의 주인공인 P선생은 눈이나 시력에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인지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P선생은 아내를 집어 들고 (모자로 생각하여) 머리에 쓰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처럼 기묘한 24편의 이야기, 다시 말해 임상 사례들이 이 책을 구성하는 뼈대다.

저자는 이 이야기들을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라는 네 개의 범주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 ‘상실’은 ‘잃어버림’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기 몸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리고, 왼쪽이라는 개념, 수평 감각, 언어를 상실한 사람들. 과잉은 상실(결손)의 반대 개념이다. 도파민 과잉으로 감정과 충동과 강박이 넘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 이 챕터에 등장한다. ‘이행’은 사람을 과거로 이행시키는 심상과 기억, 꿈과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삶에 있어 (많은 경우 지적장애인이 잘 보여주는) ‘구체성’의 의미에 대해 숙고한다.

이중에서도 ‘과잉’과 ‘이행’은 주제 자체로 상징적이다. 뇌를 하나의 기계이자 컴퓨터로 보고, 그렇기에 기능이라는 것은 정상 아니면 비정상의 범주로만 나누었던 고전적(기계론적) 신경학에서는 과잉 혹은 과거로의 이행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과잉’과 ‘이행’은 고전적인 신경학이 한정 짓거나 도외시하는 범주를 넘어서서 인간을 탐구하고자 한 올리버 색스의 신념을 대변하는 주제라는 점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병과 장애에 대한 신선한 사유

장애, 소위 말해 ‘정상’이라고 규정지은 상태가 아닌 ‘다른 어떤 상태’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사고를 한 걸음 더 확장하고 깊은 깨달음을 준다. 그중에서도 올리버 색스가 선보이는 사유는 사례의 독창성이 담보하듯, 신선하기 그지없다.

‘길 잃은 뱃사람’에 나오는 지미를 보자. 알코올 때문에 뇌신경세포 일부가 파괴된 중증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는 지미의 기억은 1945년에서 싹둑 잘렸고, 조금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순간만을 사는’ 지미를 보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연속적인 기억 없이 ‘거품처럼’ 떠도는 그를 과연 ‘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비록 기억은 온전하지 않지만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정원에서 꽃을 가꿀 때 정신을 집중해 몰두하며 누구보다 그 순간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지미를 보며, 기억 외에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무엇’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감정과 의지와 감수성 등에 대해서…. 또한 독자는 돌아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이 ‘순간 속의 존재’보다 순간에 충실히 머무르고 있는가? 우리는 그보다 더 인간으로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고유 감각*을 상실해 자기 몸을 자기 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 몸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깨닫게 한다. 결핍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던가를, 혹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현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환자들은 병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그로부터 배우고 거기에 반발하며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은 개개인의 삶의 무늬가 되고, 심지어 ‘과잉’과 ‘회상’의 환자들의 경우 병은 그를 그 자신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방점은 병과 상호작용하는 환자의 서사, 환자의 인생에 찍혀 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병으로 인한 결핍과 불완전성이 도리어 충만한 세계를 여는 열쇠라고 한다면, 병이란 다만 ‘비정상’(기준을 ‘정상’에 둔)의 상태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상태를 미루어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병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병원이 아닌 거리에서 ‘생활인으로서의 환자’를 편견 없이 관찰하고자 했던 태도, 그리고 병의 치유에 있어 환자의 개인적 서사에 귀를 기울이는 ‘내러톨로지’적 접근으로 이어진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더 무브》를 보면, 의사였던 그의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부모는 환자 또한 ‘사람’이며, 개인마다 특별한 가치와 용기를 발휘한 서사가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병과 환자에 대한 임상사례이지만 ‘사람’을 중심에 둔 이 책은 문학처럼 아름다운 의학서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을 더하는 다정한 책이다.

‘정체성의 문제’라는 단편에서 저자가 말하듯, ‘역사적으로, 그리고 이야기의 화자로서 우리는 각기 고유한 존재’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서사가 있다. 24편의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가 하고픈 말은 무엇이었을까. 굳이 하나 꼽자면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하며 구체적인 서사를 창조하며 ‘엄연한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경이로움이 아니었을까.

*고유 감각 : 제6감이라고도 한다. 근육, 힘줄, 관절 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 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말한다. 우리 몸의 위치, 긴장, 움직임은 이 제육감을 통해서 끊임없이 감지되고 수정된다.

독서 Guide

1. 24편의 사례 중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부분이 그랬나요?

2. 병과 장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책을 읽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책정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저자올리버 색스

출판사알마

발행일2016.08.17

ISBN9791159920257

KDC513.8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과(Help) 숙식을 교환하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