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북 요약
1. 배달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플랫폼 사업.
2. 도박에 가까운 배달노동의 불안정한 수익구조.
3. 배달노동자 보호책임에서 벗어나는 플랫폼의 교묘함.
도로 위의 공장을 알아차리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잠시 머리를 식히려 산책했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교차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두 대의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헬맷의 앞부분을 열고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도 배달통을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을 수많은 오토바이 라이더는 ‘도로가 공장’인
배달노동자란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로 들어왔다.
#1 배달노동자의 시선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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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것도 아니고 도로에 물이 뿌려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청소차가 물을 뿌린 상태)
- 6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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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맨홀 뚜껑은 빙판길인데 그땐 그걸 몰랐죠.
- 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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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면서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oo 씨는 염화칼슘이 뿌려진 바닥이 미끄러운 줄 몰랐다.
- 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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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폭우가 내리는 건 공장 천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 189면
도로가 공장인, 그래서 천장이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눈으로 본 노동 현장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공공이 이용하는 도로가 이들에게 공장이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배달노동자의
상당수는 특정 음식점, 슈퍼, 패스트푸드점의 점원이었다. 플랫폼과 배달 앱이 활성화된 후 외식을 위해 식당에 가야만 했던 소비자는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게 됐지만 이들은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오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통행하는 길이 배달노동자에게는 공장이 됐는데, 배달산업은 공공의 도로를 이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과속하면서 달리기만 하고 있다. 배달노동자의 산재사고를 해결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같다.(30-31면) 도로를 같이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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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는 배달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생산 활동을 하는 일터다. 오토바이와 택배차가 달리는 동선을 이어보면, 도시 전체를 돌리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드러난다. …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기계는 차량 운전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모, 꿀잠을 자고 싶은 주민 옆에서 돌아간다. 김용균이 죽은 석탄발전소가, 삼성 노동자가 죽은 반도체 공장이 내 집 앞 길거리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다만 시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배달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라이더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도시가 일터인 라이더와 도시가 생활공간인 시민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다.
42-43면
이어서 저자는 이른바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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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회사는 이 최고의 공장을 짓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 배달업으로 발생하는 위험과 비용을 시민과 노동자가 책임진다는 사실은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최근 합병과 상장에 성공한
배민과 쿠팡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투자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 투자자들은 도시와 시민을 사유화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플랫폼에 열광했다.
43-44면
#2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세상
플랫폼에게 배달노동자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고객과 자영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배달노동자의 동선은 고스란히 플랫폼의 최적화된 시스템(AI,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되고(154면), 프로그램은 인간을 활용한다(148면). 배민, 요기요익스프레스,
쿠팡이츠처럼 주문과 배달을 동시에 해주는 앱에서는 배달노동자의 실시간 위치가 손님에게 제공된다(155-156면). 회사가 CCTV를 이용해 목적과 상관없이 노동자의 작업 과정을 감시하거나 관리 감독하는 데 사용하면 불법이지만,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에 가려 논란이 되지 않는다. 플랫폼은 위험과 비용을 라이더에게 외주화한 것을 넘어 노무관리조차 손님에게 외주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156면)
간혹 배달노동자 중에 월 소득이 천만 원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보도가 있다. 저자는 이론상 가능하며 실제로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데 “열에 하나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박이야말로 임금의 도박적 성격을 강화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플랫폼에 중독된다.”고 한다. (135-137면)
이처럼 플랫폼 생태계 안에서 배달노동자는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데이터로 기능하게 된다.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면, 산업화가 낳은 인간 소외를 비판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처럼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돌아가는 배달노동자는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라고 부르짖고 있다(192-195면). 노동과 인간의 물화(物化) 현상은 고급 아파트에서 배달노동자의 입주자용 엘리베이터 이용 금지로 나타난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강제하는 아파트에서 배달노동자들은
“우리는 화물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205-209면) 경비노동자 중에는 배달노동자에게 입주자용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허용하는, 일종의 ‘약자 연대’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배달노동자와 아파트 경비원, 주민과의 싸움 속에 플랫폼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뒤에 숨어 있다.(205-210면)
#3 법의 문제
플랫폼 생태계에 들어 있는 배달노동자, 자영업자, 고객은 모두 각기 법률관계를 맺고 있다. 형식적으로 보면 배달노동자는 자신이 선택한 자발적 노동을 하고 있고,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효율을 최대치로 올리는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겉으로면 보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초보 라이더의 오토바이 무면허 문제, 자영업자와 플랫폼의 배달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지우기’, 고객과 자영업자의 배달노동자에 대한 갑질 등은 모두 ‘법의 공백’ 속에 들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질적인 법률관계를
따져 현행법을 적극 해석하여 배달노동자를 보호하고, 부족하면 관련 입법을 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입법자와 법률가(대형 로펌)는 형식 논리로 접근한다.
과거 자영업자가 부담했던 각종 사용자로서의 비용(산재보험금 등)은 모두 배달노동자의 자기 부담으로 전가하고, 근로기준법상 각종 의무와 부담에서 면하다 보니 플랫폼 경제가 마치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그 숨겨진 비용은 고스란히
배달노동자와 사회로 전가되고, 혁신기업이란 기치를 내 건 플랫폼 기업의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되고 있다.
법의 그물이 정치(精緻)하다고 하지만, 플랫폼과 같은 큰 고기는 빠져나가는 ‘성근 그물’이 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법률가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법 기술자들의 잔꾀가 들어 있다. 이 책은 법률의 미비와 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4 구조의 문제
그렇다면 플랫폼 기업과 그들을 조력하는 법률가들이 악용하는 법의 빈틈을 메우면 해결될 것인가? 저자는 모든 문제를 플랫폼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한다. 배달 수익을 위해 무리하게 배달하는 배달노동자 개인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한다.(91면) 타당한 지적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소 흥분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니 법을 포함한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노동자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주면서 시간이 지체된다면 다음 배달지에 늦게 도착하게 되는 이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저자의 코멘트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배달노동자의 현실을 알게 한다. 그렇다. 구조의 문제이다. 고객 개인의 선행,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눈치를 보며 주민용 엘리베이터를 태우는 선의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 ‘빵집 주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자유주의 경제이론, 나아가 그것이 더욱 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플랫폼과 만난 오늘날, 법의 공백을 채우는 것으로는 해결이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배달노동자의 시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매우 실증적 연구 자료와 함께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책은 플랫폼 생태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독서 Guide
1. 편리함에 가려진 배달노동자의 열약한 현실에 주목하며 읽어 보자.
2. 플랫폼의 책임을 전면에 내세워 배달노동자 처우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해 보자.
책정보
마담 보바리
저자박정훈
출판사한겨레출판
발행일2023.03.22
ISBN9791160409574
KDC321.535
서평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