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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통사를 읽는 아쉬움

- 최태성, 《최소한의 한국사》

작성일: 2023.12.07

PICK1 요약

1. 통사에는 역사가의 평생 공부가 온축되어 있다.

2. 평이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요소가 잘 정리된 책이다.

3. 역사관이 보다 전진적 포괄적이지 못 한 아쉬움이 있다.

‘통사’에 대한 한 기억

통사(通史)로 쓴 한국사의 계보가 있다. 이병도, 한우근, 변태섭 같은 분들에 이어 아마도 그 정점에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또래의 대학 학부생은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수강하였는데, 그 교재로 가장 많이 채택되었고,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이들도 이 책을 교과서처럼 여겼다. 대중서 아닌데 거의 대중서에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나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통사류의 역사서가 얼마나 달라서 어느 한 권이 그렇게 인기를 독점하고 많이 팔린단 말인가? 거기서 거기인 내용을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사신론》은 여느 통사와 비교해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학부 시절 인근 사학과의 젊은 교수 한 분이, 그는 이기백 선생의 제자였는데, 자신이 원생 시절 그 책을 거의 쓰다시피 했다고 고백한 여파도 있다. 그의 말은 다소 과장이 섞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기백 선생의 애독자이다. 그의 《신라사상사연구》는 나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었다. 깔끔한 문장에 먼저 이끌리고, 잘 설계된 역사 망(網)에 매료되고, 입체적으로 시대를 읽는 집이 지어져 있었다. 나는 저 책의 구석구석을 외우다시피 했으니, 책 뒤에 따라 붙는 ‘색인’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런 다음 《한국사신론》을 다시 보니 심심한 통사가 아니었다.



평이하면서 핵심을 잘 정리한 책

최태성의 《최소한의 한국사》는 제목 앞에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이라 캐치프레이즈를 달았다. 통사이면서 실은 그다지 무게감 나가는 통사는 아니다.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에 필적할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주업에 연결되는 바,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쉽게 잘 요약하여 공부하기 좋은 책이다.

예를 들어 “저는 소수림왕이 있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시대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28면) 같은 대목을 보자. 요점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 왕 때에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율령 도입, 사회적으로 태학 설립, 문화적으로 불교 수용이란 표를 그려주고 설명한다. 평이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설명이 요소 요소에 박혀 있다.

물론 최태성의 이 책이 지금 많은 이의 호응을 받는 까닭은 그간 저자가 쌓아온 공력과도 연관된다. 그가 냈던 여러 시리즈는 이미 수험생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텔레비전이나 여러 SNS 같은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부가적인 신뢰도를 높인 덕도 있으리라. 어쨌건 우리 시대의 한 축을 장식하는 역사 관련 저자이며 서적임이 틀림없다.



전진적이고 포괄적이지 못 한 아쉬움

그러나 지난 시절의 통사와 다르자면 좀 더 정확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해석이나 중요한 이설을 다루었어야 했다. 수험 대비용이라는 한계를 감안하였겠지만, 이 한 권의 전체에서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그래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 기술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기존의 설명을 무리 없이 반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 나라가 고구려이고, 주몽이 바로 고구려 제1대 왕인 동명왕입니다.”(26면)에서 동명왕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부여의 여러 나라에서 그 왕의 이름을 동명왕이라 썼고, 정작 주몽은 스스로 그렇게 부르지 않다가, 후손 대에 고구려가 강성해지자 추존하듯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둘째 아들 온조’(45면)에서는 그 계보를 달리 보는, 곧 온조는 주몽에게 의붓아들이었다는 주장도 감안해야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만든 조치에 대한 해석은 다소 아쉬움을 덜어준다. ‘소경’을 ‘작은 경주’라 정의하고, “경주가 한반도 동쪽에 치우쳐 있으니까 이전에 고구려나 백제에 속해 있던 땅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라고 설명한 대목이다. 다만 신문왕 무렵 아예 천도론이 대두되었다는 점도 부가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기왕 통사로 한가락 하자면

우리의 통사에서 가장 아쉬운 것 하나만 적시하고 맺으려 한다. 흩어진 나라를 모아 통일 국가를 만들고, 다시 분열을 거듭하다 통일되는 역사의 흐름이 몇 차례 반복되었건만, 이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웃 중국과 아주 확연히 비교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한 대목을 발견하고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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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세 나라를 통일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데 가장 작은 신라가 삼국 통일의 꿈을 이뤘죠. 왕건 역시 후삼국시대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궁예 아래 부하였거든요. 어찌 보면 의외의 인물이 후삼국을 통일한 거예요.
 

112면

신라의 삼국 통일을 놓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통일 역사 두 장면을 제시하고, “앞서 가는 사람은 항상 자만을 경계할 것, 그리고 뒤에 가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갈 것. 후삼국시대의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라는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것이 다소 ‘범생’ 같아 아쉽다.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왕조는 그 앞 왕조 때보다 훨씬 커져 있는 중국의 예와 대비해 볼 생각은 왜 못 했을까.

독서 Guide

1. 통사를 통해 한국사 전체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 보자.

2. 한국사의 통사가 지닌 약점을 찾아 토론해 보자.

3. 저자의 역사관이 잘 드러난 대목을 지적하고 그 까닭을 말해 보자.

책정보

최소한의 한국사

저자최태성

출판사프런트페이지

발행일2023.10.05

ISBN9791198243430

KDC911

서평자정보

고운기 ㅣ 시인·한양대 교수

고운기 시인 한양대 교수 이미지

‘삼국유사’와 관련된 고전문학의 다양한 면면을 연구하면서 이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 30여 권의 저서와, 시집으로 『구름의 이동속도』 등 1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