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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편의 소설이 던지는 2023년판 노동의 질문들

- 김의경 외,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작성일: 2023.11.09

PICK1 요약

1. 오늘날의 노동 현실을 비추는 2023년 판 노동 문학 선집

2. 각 단편은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을 리얼하게 그려내어 질문하게 한다.

3. 소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노동 속에 존재하는 저마다의 슬픔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서 누구에게나 그만의 노동의 역사가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대학 졸업하고 곧장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십여 년, 그간 다양한 모습으로 꾸준히 노동하여 번 돈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렸다. 노동(Labor)의 그리스어 Ponos는 ‘슬픔’이란 뜻이라던가. 돌이켜보니 지난 십여 년의 어느 언저리에서 나도 일종의 ‘슬픔’을 깨달았던 것 같다.

마음이 빛날 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보람과 의미, 동료애, 정당한 대우 같은 것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일하는 이가 점점 더 그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이란 것을 경험하였다. 그 슬픔은 이러이러하다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꺼내기엔 알아채기조차 쉽지 않은, 미묘한 것이었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를 읽고 마음이 일렁였던 건 차마 말하지 못한 그 슬픔에 ‘마이크’를 대주어서가 아닐까.



2023년판 노동 문학 선집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가 이 책에 붙어 있다. 한마디로 책을 정의하자면, 2023년판 노동 문학 선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소설가 열한 명이 ‘먹고사니즘’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쓴 단편 열한 편을 묶었다.

동인(同人)이라는 기치 아래 작가들을 모아 이번 책을 기획한 기획자이자 그 자신 또한 참여 작가인 장강명은 노동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소설이나 르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속해서 써 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창작 궤적은 《산 자들》 등 장 작가의 작품 자체에도 선명하게 녹아 있지만, 또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과 협업하게 했다.

기획 면으로는 이번 책의 전신이라고도 부를 만한 《땀 흘리는 소설》을 보자. 젊은 세대(제자들)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마땅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70∼80년대의 노동 문학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던 현직 국어 교사들이 노동에 관한 최근의 단편 여덟 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한 개인이 살아가며 하게 되는 다양한 노동에 대해, 그 노동이 사회적·개인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 노동이 마땅히 받아야 하나 받지 못하는 어떤 보상에 대해…. 《땀 흘리는 소설》을 통해 스승이 제자에게 함께 묻자고 던지는 질문들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의 서문에서 장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이번 기획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라 그는 자신 외 열 명의 소설가에게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한 사실적인 글’을 요청했고,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2025’처럼, 앞으로 이 동인이 지속되며 당대의 노동을 조명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우리 시대 노동을 그대로 비추는 하이퍼리얼리티 노동 문학

동인으로 참여해 〈밤의 벤치〉를 선보인 서유미는, 서로 사전에 논의했던 것도 아닌데 열한 명의 소설가가 주목한 우리 시대의 노동이 다 달라서 내심 놀랐다는 후기를 전한다. 삼각김밥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휴학생과 노인 여성, 학습지 교사, 삼십대 군무원, IT회사 M세대 재무팀장, 초짜 현장소장,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행사 직원, 배달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스무 살 청년, 태국에 근무하는 한국어 교원 등…. 바로 내 주변에도 한 명쯤 있거나, 그렇지 않고서라도 한 다리 건너면 곧바로 찾을 수 있을 만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노동 현장에서 처한 문제와 갈등은 70∼80년대 노동 문학이 자주 그려냈듯 ‘노와 사’ ‘상사와 부하’로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장강명은 오늘날의 노동을, “갑과 을을 명확히 나누기 어렵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결국 주목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무엇이 이 학생의 집에서 저 학생의 집으로 바삐 걷는 학습지 교사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자투리 시간을 만들었나? 무엇이 M세대 재무팀장으로 하여금 Z세대 신입사원과 X세대 대표 사이에서 경멸과 회유를 오롯이 안으며 혼자만의 소중한 감정까지 담보 잡히게 하는가? 자기 손으로 살 집을 짓고 싶었던 한 젊은 건축사의 꿈과 자부심은 무엇 때문에 망그러졌나? 무엇이,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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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과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있고 이름만 들었을 때는 짐작하기 어려운 고충이 존재했다.
 

-〈밤의 벤치〉중에서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감정에 생채기를 내고 관계를 와해시키는 데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다름 아닌 시스템, 즉 자본주의가 있다. 그로 인한 불평등과 부조리는 직업은 각기 다르되 묘하게 닮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수십 집을 방문해야 하는 학습지 교사의 ‘젖은 발’처럼, 섬세하게 그려진 각 직업의 고충과 고민을 읽으며 독자는 그들 주변의 노동을 새로운 눈으로 감각하게 된다.



소설의 역할

《땀 흘리는 소설》 때부터 장 작가와 뜻을 모아 온 서 작가는 이 책이 ‘자칫 직업소개서로 읽히지 않길’, ‘11개 직업군의 고충 비교기로 그치지 않길’ 바랐다고 한다. 문학만이,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고. 작가는 왜 더 많이 ‘우리 시대의 노동을 말하는 작품’을 써야 하는가. 독자는 왜 그런 작품을 부러 찾아 읽어야 하는가.

소설가 귄터 그라스가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극찬한 독일 작가 잉고 슐체는 문학을 ‘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는 행위’에 비견했다. 투명하고 입체적인 물방울처럼, 인물이 처한 상황을 어떤 단면만이 아닌 다각도로 살펴보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물속에서 헤엄치면서도 물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물고기가 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 안의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그렇게 ‘물’을 인식하고 감각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죽어가는 노동’이 아닌 ‘삶의 노동’을 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롤로그에 담긴 장강명 작가의 마음도 그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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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중략)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중략)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중에서

독서 Guide

1. 책을 읽고 ‘노동’이라고 새롭게 인식하게 된 직업군이 있나요?

2. 다양한 직업의 생각지 못한 고충과 고민에 대해 나누어봅시다.

3. 왜 노동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토론해봅시다.

책정보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자김의경 외

출판사문학동네

발행일2023.08.30

ISBN9788954695176

KDC813.7

서평자정보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김소담 ㅣ 헬프엑스 여행작가 이미지

헬프엑스(HelpX)는 호스트를 찾아 일손과(Help) 숙식을 교환하며(Exchange) 전 세계를 여행하는 교환 여행 방식이다. 헬프엑스로 유럽과 남미를 여행하고 『모모야 어디 가?』, 『당신이 모르는 여행』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