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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 무슈 보바리(Monsieur Bovary)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작성일: 2023.11.09

히든북 요약

1. 통속에 반하는 ‘기혼자의 불륜’이라는 소재

2. 현실과 이상의 모순이 불러온 일탈

3. 다윗 이야기의 우리야와 샤를르 보바리의 상관관계

통속을 거스르고 탄생한 소설

이 책의 출간이 순탄치 않았던 것은 헌사(獻辭)만 봐도 알 수 있다. 헌사에 나오는 쥘 세나르 국회의장은 사실 이 책으로 법정에 서야 했던 플로베르를 변호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냈던 변호사였다. 여전히 종교적 계율과 도덕이 사회를 지탱했던 시대, 배우자 있는 여인의 간통 이야기는 공중도덕 및 종교적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기소됐었다.

소설이 갖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등장인물의 상징적 의미, 나아가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진 플로베르의 탁월한 심리묘사와 극사실화와 같은 표현 기법에 대해서는 이미 나온 다른 서평에 양보하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번역자 김화영조차 작품해설에서, 주인공 엠마를 소개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으며 간혹 주체적 인물로 나와도 독자가 눈치 채기 힘들 만큼 잠깐이라고 평가한, 엠마의 남편 샤를르 보바리에 눈길을 보내려 한다.



#1 엠마의 샤를르

수도원이 운영하는 여학교에서 엠마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나중에는 귀족들의 삶과 화려한 도시, 파리를 꿈꾸게 된다(제1부 제6장).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심리상태’라로 일컬어지는 보바리즘은 소설 속에서 결혼하기 전 엠마에게 이미 태동되었다. 첫 번째 결혼이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을 맺은 샤를르의 외로움과 오로지 아버지와 살던 시골집을 벗어나려고 했던 엠마의 갈구는 혼인으로 채워졌으나, 그와 동시에 보바리 부부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샤를르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과 사랑스러운 아내, 음식 등 일상의 삶에 만족했지만, 샤를르의 무취미, 무개성, 무열정은 엠마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플로베르는 샤를르를 줄곧 ‘졸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만남과 결혼, 그리고 그 이후 엠마의 권태, 사랑, 배신, 죽음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긴 중반부에서 샤를르는 거의 잊힌 존재다. 반면 엠마는 이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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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샤를르가 마음만 기울였더라면, 그것을 짐작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만약 단 한 번이라도 그의 눈길이 엠마의 생각에 닿았더라면, 마치 손만 뻗치면 과수장에서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돌연 무진장으로 솟구치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으리라. 그러나 그들 생활의 친밀감이 더해질수록 내면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그녀를 남편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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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는 때로 남편의 성공 속에 자신을 드러내 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그런데 의학책만 펴놓고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인 샤를에 대해 그녀는 이제 자기의 것이기도 한 이 보바리라는 이름이 유명해져서 책방마다 진열되고 자꾸만 신문에 나면서 프랑스 전역에 널리 알려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샤를르는 야심이 없는 것이었다!
 

-93면

엠마의 뜻에 따라 보바리 부부는 용빌로 이사하여 새로운 이웃을 만난다. 그중에는 첫 번째 정부(情夫)가 될 레옹이 있다. 공증인 사무소의 젊은 서기 레옹은 엠마를 연모했으나,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 믿었던’ 엠마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플로베르는 이를 “집 안의 테라스에서 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148면)라고 그린다. 소설 전반부에 나오는 엠마의 권태의 나날과 샤를르와의 균열은 곧 이어질 로돌프, 레옹과의 외도의 예고편 내지 예열과정인 셈이다. 첫사랑이 떠난 빈자리에, 용빌 근처의 꽤 넓은 영지를 갖고 있으며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해 그 방면에 도통한 독신남 로돌프가 들어왔다.



#2 문제적 장면과 법적 재단

풍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기소까지 됐던 이 소설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로돌프와의 산책 중(233-235면), 그리고 훗날 파리에서 재회한 레옹과의 마차 안에서(354-356면)의 정사 장면일 것이다. 문학적 표현에 법이 개입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십 대의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동경하는 내용이 모티프로 되어 있는 나부코프의 소설 《롤리타》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한때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 《마담 보바리》나 《롤리타》는 고전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외설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한 요즘 음란물에 비하면, 주변의 숲과 마차 밖의 파리 시내를 통해 간접적 또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대신한 《마담 보바리》의 문제 장면은 문학적 묘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나는 오래 전에 〈법과 문학, 오만과 편견을 넘어〉(《문학과 법–여섯 개의 시선》 , 사회평론아카데미 2018)에서 문학을 법으로 단죄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3 성당지기와 마부

두 번째 정부 로돌프와의 뜨거운 사랑은 그의 배신으로 막을 내렸고, 첫 번째 연인 레옹과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은 깊은 잔상을 남겼기에, 자유가 넘치는 ‘파리에서’ 레옹과의 재회는 더 이상의 과정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한때 연인이었던 남녀의 해후 장소로서 파리는 불륜조차 낭만으로 포장하는 마법의 도시로 나온다. 그런데 종이에 불이 붙어 삽시간에 타오를 상황에서 그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두 개의 장치가 나온다. 성당지기와 마부이다. 하필 밀회 직전 만남의 장소로 성당을 택했을까? 성당지기의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를 견디기 어려웠던 엠마와 레옹은 성당지기를 떨쳐내려고 했고, 이를 눈치 챈 성당지기와의 대화가 독자들을 숨 가쁘게 만든다.(351-3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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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옹은 재빨리 은화 한 닢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고는 엠마의 팔을 잡았다. 성당지기는 외지 사람에게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아 있는데 때 아닌 사례를 받고 보니 이해가 가질 않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래서 그를 다시 불러 세우며, “아니, 손님, 첨탑을! 첨탑을 봐야지요!” “그만 됐어요.”라고 레옹은 말했다. ……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 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굵은 글씨는 소설에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임 : 서평자 주) “나리, 어디로 모실깝쇼?” 하고 마부가 물었다. “아무 데라도 좋아!” 하고 레옹은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무거운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는 그랑 퐁 거리를 내려가 아르 광장과 나폴레옹 강둑, 뇌프 다리를 건너질러 피에르 코르네이유 동상 앞에서 딱 멈추었다. “계속 가요!” 하는 소리가 마차 안에서 들려왔다.
 

성당 관람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호텔로 바로 가기 뭣해서 잠시 성당에 들렀을 뿐인 엠마와 레옹의 뒤통수에 대고 한 성당지기의 외침은 이들에겐 그저 바람 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성당지기를 통해 플로베르는 엠마와 레옹의 비극적 결말을 예언하는 듯, ‘최후의 심판’, ‘지옥 불 속 저주받은 자들’ 등의 성화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다윗 왕’은 아주 교묘하게 설계된 장치이다.



#4 다윗이란 장치

다윗이 누구인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은 모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인물로서 예수의 혈통이기도 한 성군(聖君)이다. 마태(Matthew)가 기록한 복음서(마태복음) 첫머리 예수의 족보에서 다윗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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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1장 6절)

생소한 이름, ‘우리야’는 다름 아닌 밧세바의 전남편이다. 다윗왕은 권력을 이용해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여 임신시켰다. 자신의 범죄를 가리기 위해 전장(戰場)에 나가 있던 우리야를 예루살렘 집으로 불러들였으나, 우직한 그는 동료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편히 쉴 수 없다며 밧세바에게 들어가지 않고 궁 주변에서 대기한다.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속이 탄 다윗은 더 큰 범죄를 기도한다. 우리야를 없애버릴 요량으로 그를 전쟁터 가장 깊숙한 곳에 홀로 남겨둔 후 모두 퇴각하라는 명령서를 총지휘관에게 전달한다. 다윗왕은 그 편지를 전장으로 복귀하는 우리야 편에 보냈으니, 불쌍한 우리야는 자신을 죽이라는 문서를 들고 다시 전장으로 달려간 것이다. 다윗 뜻대로 우리야는 전사했고 전쟁미망인 밧세바는 합법적으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법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간통, 청부살인을 범한 것인데, 그것도 전쟁터에 나가 있던 자기 부하에 대해 저질렀다는 점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죽었던 충신 우리야의 이야기는 잔인한 범죄의 피해자로 그렇게 묻혔던 것인데, 마태는 예수의 족보 중에 유대인이 흠모하는 다윗을 소개하면서 굳이 우리야를 소환했다. 그런 다윗을 플로베르가 자신이 창조한 엠마와 레옹이 폭주해 나가는 성당 출입문에 그려놓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인을 상대로 쓴 책(마태복음)에서, 예수를 미화하기 위해서라면 그저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하면 되었을 것을, 저자 마태는 굳이 그 앞에 다윗의 수치스러운 죄업을 기록했다. 그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세리(稅吏) 마태’라고 쓴다(10:3). 세리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인에게 결코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마태 스스로 자기가 쓴 책에서 제 이름 앞에 자신의 부끄러운 직업을 붙였기에 인간 예수의 조상인 다윗의 수식어로, 그의 치부이자 천국에서라도 만나면 고개를 숙여야 할 단 한 존재인, 우리야를 붙인 것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세리나 우리야라는 수식어와 설명어가 마태와 다윗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수 없다. 인간의 양면성,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신 앞에서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합쳐서 전인적으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5 무슈 보바리

김화영은 샤를르를 플로베르가 외면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졸고 있는 모습은 깊은 잠에 빠진 제2 제정기의 사회 분위기를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해설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샤를르는 플로베르가 외면하고 비판하고자 했던 상징이기만 한 것일까? 고개를 돌리지 말라고 하거나 시선이 가닿지 않게 흐리게 처리하면 할수록 그 뒤에,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관심이 더 가기 마련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샤를르에 좀 더 주목해 보자.

바람을 피운 엠마는 당대 법과 종교적 계율 그리고 윤리를 저버린 사람이지만, 소설에 몰입한 독자는 엠마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샤를르는 소설 중반부 이후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가―바람 난 아내의 배경일 뿐―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소설의 말미 엠마가 죽은 후 그녀가 쓰던 서랍 속 수많은 연서(戀書)를 다 읽고 난 샤를르는 넋이 빠져버린다.(500면) 끝내 자신의 사랑을 믿고 파산을 면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 했던 로돌프로부터 차갑게 거절당한 후 음독으로 생을 마감한 엠마, 그녀를 사랑했으나 죽는 순간조차 엠마로부터 사랑한다는 또는 사랑했다는 말이 아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샤를르. 플로베르는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그녀를 잃게 된다고 생각하자 자신의 전 존재가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458-459면)고 엠마와 샤를르의 심리를 전한다.

플로베르 자신이 창조했지만, 작가 자신도 엠마로 하여금 샤를르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할 수 없어 이렇게 작가의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대목에서 플로베르는 자신이 낳은 캐릭터와 이반하는 기법까지 보인다. 이토록 샤를르는 구원받지 못했다. 플로베르는 샤를르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오쟁이 진 남자, 샤를르는 상간남 로돌프 앞에서 “이젠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라고 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죽어간다.

이 대목에서 부인과 충성을 바친 왕에게 배신당하고 증거인멸의 대상으로 죽어간 우리야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신의 이름마저 부인에게 내어주고 상간남 앞에서 스러져간 샤를르에게 그의 이름을 되돌려주고 싶다. 무슈 보바리!

독서 Guide

1. 마담 보바리가 당시의 종교사회에 불러왔을 반향을 생각하며 읽어 봅시다.

2. 보바리즘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책정보

마담 보바리

저자플로베르

출판사민음사

발행일2000.02.25

ISBN9788937460364

KDC863

저자정보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형두 ㅣ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에서 저작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정직한 글쓰기’와 관련된 『표절론』, 문학·예술과 관련된 『문학과 법』(편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산업,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등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이 있다.